이것은 굉장히 느리고 더딘 글. 시간과 기억을 기워가며 오래도록 쓴 글. 한 번에 쓰지 못하였으니 단번에 읽히지 않을 것이고 시간으로 얽은 만큼 지루할 글. 그러나 기운 나날의 수만큼의 사랑으로 견뎌낼 글. 감히 비견될 수는 없을 400년의 당신처럼.
이 글의 마침표는 사랑의 4집, 예뻐와 함께하였습니다.
*
수미상관의 그답게 2막의 깐샤큘.
그리고 붉은 귀걸이. 마지막까지 빨강과 아름다운 사랑하신 시아준수, 만세.
1. Fresh Blood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는 모든 것이 있을 자리에 있는 노래였다. 5월 19일의 타란탈레그라에서 느꼈던 완벽한 균형. 파워와 절도, 패기와 젊음, 분노와 열정, 억눌러야만 했던 갈증, 작열하는 욕망. 이 모든 것이 맹포한 기세로 충돌하면서도 제각각의 영역을 분명하게 고수하며 빚어낸 노래.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가 그랬다.
가로횡단의 파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니, ‘나를 의심하지 마’의 가장 처음부터. 나직한 위압감이 그가 계단의 한칸 한칸을 내려디딜 때마다 부피를 키워갔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듯 요동치기 시작한 건 간단한 요기를 마치 종자루 내려놓듯 툭 떨어트렸을 때. 뱀처럼 연기처럼 스르르 걸음을 옮긴 그가 침대를 마치 단상처럼 밟고 올라섰을 때. 눈부신 조명이 그림자처럼 그를 좇아, 마침내 그와 한몸이 되었을 때. 어둠의 빛을 받아 반짝반짝한 붉은 존재의 그가 두 팔을 벌려내며 의식의 시작을 알렸을 때.
그렇게 시작을 알린 오늘의 흡혈 의식이 얼마나 장중하고도 아름다웠는지. 사랑해 마지않는 가로횡단은 신성할 정도였다. 횡단의 극점에 이르러 눈가로 드리워진 머리칼을 살짝 쳐내는 찰나의 파워까지 아름답도록 짜릿했다. 정점은 나의 여왕 다시 찾!겠어. 오늘 최고치의 강함을 경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이 파열음의 카타르시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파열음하면 탄성의 피를 또한 빼놓을 수 없지. 되찾은 젊음이 끓어올라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이, 수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해ㅡ에서의 과격한 점프! (세상에 점프라니. 그 순간 객석의 모든 숨결이 지진을 일으키듯 경련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끝에서부터 심장까지, 그의 차오르는 힘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어. 프름..프름..점프.. 프름..)을 선보인 그가 성큼성큼 날듯이 걸어 오른 날개의 슬레이브의 얼굴을 두 손으로 화악 감싸 쥐어 끌어당겼다. 서로의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까지 끌어당긴 피조물의 얼굴을 내려다본 그가 탄식하듯 뱉어낸 감탄사. 탄성의 ‘피.’ 바이올린의 줄 하나가 끊어지며 잘못 그어진 악보의 음처럼 높고도 거세게 갈라지며 내뱉어진 그 음성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렇게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는 전설이 되었다. 드라큘라라 쓰고 김준수가 읽는다 하였지.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되찾은 이 젊음 속에서 영원을 살 것이다.
2. 윗비
빨간 귀걸이 만세. 그의 귓불에서 붉은빛을 발견할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생명력으로 뭉친 심장의 작은 조각을 보는 것 같기에.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어울림은 덤이고.
가슴 저렸던 그림은 마지막 순간. 미나의 다시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에 대한 대답.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침묵이 길었다. 입술을 닫아 문 채 그녀를 바라보는 고요한 얼굴로 서서히 따듯하고도 자신 있는 확신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한 음절 한 음절 꼭꼭 찍어누르듯 발음했다.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참 기묘하지. 꼭 나에게, 무대를 향한 관객에게 시아준수로서 말을 건네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멀어져가는 그를 보노라니 심량하기 어려운 기분이 남겨진 마음을 휘감아 왔다. 막공의 환상이었을까, 그렇다면 참 달콤한 감각이 아닌가.
참 오늘은 ‘과연 그런 것 같군요’가 아닌 ‘과연 정말 아름답군요.’ 미나를 가리키듯 두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내는, 여전한 너스레와 함께.
(유달리 귀여웠던 건 너스레로 펄쳐지는 팔이 평소에는 미나를 '가리키는 듯이'였다면, 오늘은 너무도 확연하게 미나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
3. Lucy & Dracula 1
초연 재연을 통틀어 너무도 아름답도록 섬세하였던 오늘. 물 흐르듯 유려한 서사였다. 그것도 오직 손짓과 표정으로만 빚어낸.
이리 와요, 이리 와요 내 사랑. 다가올 미나의 숨결을 기대하듯, 부드럽게 닫아걸었던 미간이 다른 존재의 기척에 언짢은 낭패감으로 물들어가는 찰나에 또렷한 기승전결이 있었다. 미나가 아니라 루시임을 알았을 때 그의 얼굴 가득 번진 당혹감(못마땅함)이 특히나 인상적. 앙다문 입술에서는 불쾌함이, 찡그린 미간에서는 의문을 품은 역정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결의 루시가 맨어깨를 드러내며 먹잇감을 자처하는 순간이었다. 삽시에 여타의 목적이ㅡ미나랄지, 미나랄지, 미나랄지ㅡ 페이드아웃 되고 오로지 흡혈에 대한 본능만 남은 얼굴의 그가 루시의 어깨를 턱 잡아 쥐었다. 치솟는 욕망이 두 눈에 이글이글했다.
그러나. 루시를 찾아 헤매는 미나의 기척을 느꼈던 걸까. 돌연히 그가 돌아섰다. 간헐적으로 뱉어지는 옅은 호흡에서 가까스로 잠재운 욕망의 잔여감이 부유했다. ‘그냥 잠든 것뿐이에요.’ 억눌려 있음이 명백한 음성이 그것을 증명했다.
여기까지의 이 단계 단계가 얼마나 섬세하였는지 몰라. 파도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분명하게 표현했고, 또렷하게 전달받았다. 그가 연기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직접 설명하여 주는 것만 같은 전달력이었어.
미나와의 대화로 달뜨기 시작하는 음성에서도 단계 단계의 변화가 또렷했다. 열정, 사로잡힌 충동, 열망.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로 도약하여 ‘내 혈관의 모든 피’에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답게 흥분했다. 마무리는 스타카토의 선/택/했/어.
퇴장은 흡혈의 감각에 몽-롱하게 취한 얼굴로 뒷걸음질. 미나와, 찰나 간의 정확한 눈맞춤을 뒤로한 채.
4. 삼연곡
She Intro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사과할 때의 그는 너무도 신사여서 역시 좋다. 인간이었을 때를 자꾸만 상상하게 해.
그리고 회심의 애드립. ‘저스트 조킹.’ 왼손 검지와 중지만을 펴서 관자놀이에 이케, 살짝 대면서.
웃음기 전무한 뻔뻔한 얼굴에 드디어 그녀가 웃었다. 드디어! 썰렁하다며 애써 수습하는 미나를 향하여 시무룩하지만 지지 않는 듯이 ‘다 웃어놓고..’ 덧붙이는 모습은 나를 웃게 했다. 귀여워서.. 동시에 그 찰나,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드는 편안한 기운과 일상적인 분위기에는 애틋해지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였던 두 사람의 행복한 데이트 한때를 이렇게나마 보는 것 같아서.
‘더 늙고, 더 외롭고, 더 못돼졌죠’의 삼단 변화는 오늘 역시 분명할 정도로 가시적이라 애틋함을 키웠다.
아, 여담으로. 그가 그녀를 향하여 경보할 때마다(미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 이런 이야기 속에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공주님) 윗머리가 살짝 들려 흩날리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콘셉트 사진 속의 헤어 같아서 어쩐지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투디 쓰리디의 구분이 없는 존재 같았달까.
She
내 사랑의 노래. 이제 마지막이라니, 하염없이 몰아치는 개인적인 소회가 오늘의 she를 더 애달프게 만들었다.
결국 재연의 그는 단 한 번도 엘리자벳사가 칼에 맞는 순간의 소절ㅡ사랑하는 그 사람을 제발 지켜주소‘서’의 마지막 음절을 끝맺지 못했다. 단 한 차례도. 첫공 때 비명처럼 끊기고 마는 그 소리가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는데. 결국 내내. 칼에 찔린 사람이 꼭 그 자신인 것처럼 똑 끊기고 마는 음성이 미어지는 그의 심장 같아서 늘 보듬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정면으로 목격해야만 했던 두 눈이 아프지 않게 감겨주고 싶었어.
끝맺음하지 못한 소절과는 반대로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엘리자벳사에게 애원하는 아이 같은 목소리는 오늘따라 처연히 늘어졌다. 비극의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그 언젠가의 일어나, 일어나까지 돌아와 아픔을 더했다.
그리고 세 단계의 절정.
악마에게 팔아서라도.
지상에서의 포효.
마지막의 절규ㅡ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 차라리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나를 하염없이 잡아 흔드는 그의 삼색 비명. 비명할 때의 모습이 아름답다 하면 그는 어떤 얼굴이 될까. 하지만 정말이다. 온몸으로 노래가, 장면 그 자체가 되는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어. 그래서 이 노래를 사랑했다. 그의 she에는 온몸으로 희로애락이 되는 그 전부가 있으므로.
At Last
‘순결한 사랑 영원토록 맹세했죠.’ 문득 she의 가사가 오버랩되었다. 앳 라스트에서 마침내 다시 만난 그들 역시 눈 시릴 정도로 순결하여서. 차마 그를 보지 못하고 고개 숙인 그녀가, 그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엎어지다시피 하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가. 그들 사이에서 감도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부시도록 예뻐서. 어여쁜 만큼 아려서.
'당신은! 결혼했어..'
오늘의 그는 심장을 차마 부여잡지도 못했다. 그녀를 향하여 뻗은 다른 손도 힘없이 허공에서 맴돌기만 했다. 울먹임조차도 힘겨워 보여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짊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의 우는 얼굴에서 끝끝내 고개 돌려버린 건.
Loving You Keeps Me Alive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모든 게 변해버렸어’는 자꾸만 노백작님을 불러온다. 미스 미나 머레이와 다시 만난 순간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렸음을 증명하는 듯하였던 노백작님의 음성, ‘엘리자벳사..?’를.
시리도록 좋았던 소리는 2절의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숨조차!’ 차르륵 펼쳐지는 날개 같은 소리에서 진득하게 묻어나는 애절함이, 그 표현법이 너무나도 그여서 좋았다. 파편처럼 흩트러지는 결 많은 소리가 조각조각 귀에 박혀 들었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소리에 담은 그의 마음이어서, 꽂혀들 때마다 아팠다.
그리고, 뭐라 해야 할까. 러빙유의.. 재연 러빙유의 그는 언제나, 너무도 지친 얼굴이어서. 길고도 먼 시간을 돌아와 마침내 마주하게 된 그녀인데, 떠나는 등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무력감에 처절하게 휩싸인 모습이라.. 분위기 자체가 항상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오늘 역시 그랬다. 오랜 기다림으로 빚은 눈물의 세레나데 안에 모든 생명을 소진해 넣으며, 소절이 진행될수록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더 애처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부케. 쓸어넘긴 오늘의 머리가 진짜 멋있었다. 이대로 2막이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어. 무척이나 아름답게 뻗친 머리. 상처 나서 모서리진 마음처럼 마구잡이로 솟아 뻗친 듯한. 시아준수는 왜 이런 찰나의 동작마저도, 연기가 빚는 찰나의 모습마저도 전부 그림인 거지요?
5. Life After Life
요즘 계속 좋아하는 부분은 ‘끝이라 생각 마 이제 시작일 뿐’의 오르내리는 소리. 진짜 비인간적이야. 비슷한 느낌으로 ‘런던을 삼킨 뒤’에서 부드럽게 능선을 타듯이 넘나드는 목소리도 좋다. 능선을 그리는 소리가 좋아. 소리 안에서 박자를 쪼개었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자유자재인 그가 느껴져서도 좋고.
‘너의 세상, 찾아서 파-괴하거라.’ 에서 박자를 쪼갬과 동시에 루시를 쳐내는 동작은 역시 합이 맞는다. 세트 같은 느낌?
6. The Master’s Song (Reprise)
하얀 종이를 구기는 것처럼, 렌필드의 콧등으로 덕지덕지 떨어진 핏물을 뭉개듯이 비비는 손길을 보았다. 얼핏 부드러운 듯하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박정한 손길이었다. 특유의 우아함은 있지만 배려가 없어 따가운. 데일 것만 같은 그 손길과 숨을 조르는 정적의 끝에 그가 말했다. 한숨을 내뱉는 것처럼, ‘멍청한 놈.’
7. Mina’s Seduction
자신감의 발현이었을까. 유독 웃음이 많았다. 이렇게까지 웃음기 자욱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가득하다’ 느껴질 정도로. 도입부에서 특히.
‘그댈 처음 본 그 순간’. 바람에 이는 마른잎소리 같은 음성에 스며든 부드러운 미소가 시작이었다. 그의 세계를 ‘어둠’이라 일컫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웃었다. 빙그레. 빛의 세상 잊어야 하나 거듭된 망설임에 살짝 정색으로 굳는가 하더니, 그녀의 팔을 홱 낚아채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결국 네가 오게 될 것임을 안다는 듯이.
마침표는 마침내의 입맞춤 후 일그러진 미소. 너무나 많은 감정과 감각을 내포한 얼굴의 끝자락에 스쳐 간 찰나의 선명한 웃음이 말해주었다. at last 라고. 마침내 나의 너,라고.
그 마침내의 감회를 품은 것만 같은 의식은 장중하고도 맹렬했다. 그는 포효하는 듯한 크르렁거림으로 그녀에게 돌진했고, 또 자신을 내어주었다.
8. The Longer I Live
단언컨대 오늘 최고의 넘버. 무엇보다도 그 아름다움이. 시작부의 옆모습은 가히 천상의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럴 수 있나 싶게 아름다웠으니까.
소리는 또 어땠고. 한 소절 한 소절 그의 마음이 조각나는 시청각적 경험을 해버렸다. 장미꽃잎이 한 잎씩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의 한 겹 한 겹을 타고 그의 마음이 나락으로 내리박혔어.
침묵마저도 그의 노래였다. 시작하기 전의 침묵에는 깊은 자조, 망설임, 고독이. 관으로 다가서면서는 눈물을 대신한 침묵이. 전부가 그의 노래였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정적에는 관객조차도 그 순간 그의 노래로 만들어버린 그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스모그.. 왜..? 마지막을 기념하여 아낌없이 내보낸 건가. 어울리긴 하였는데 유난히 자욱하여 살짝 당황.)
9. Loving You Keeps Me Alive reprise
‘아니야, 난 단지 미나를 지켜주려는 것뿐이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것뿐이었다. 그와 그녀가 영원을 나눌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아버린 얼굴이ㅡ자신의 사랑이 그녀를 줄리아와 같이 만들어버릴 것임을 이미 알아버린 얼굴이 끝내 눈물을 떨구었다.
그러므로 리프라이즈는 체념이었다. 숨겨지지 않는 흐느낌. 울음이 노래가 되면 이런 소리겠지.
10. At Last
그는 체념의 이별을 고했고 그녀는 사랑을 애원했다. 그녀는 다가왔고 그는 뒷걸음쳤다. 다가오는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얼굴을 하고, 자기 자신이 상처받는 얼굴이 되어서.
사랑의 만류가 거듭될수록 체념의 얼굴이 아프게 굳어갔다. 급기야 싹싹 비는 듯이 두 손을 곱게 모은 그녀 앞에서는 굳을 대로 굳은 그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빛을 띠었다.
사랑의 대치 끝에 두 사람은 함께 울음했다. 한 사람은 사랑해서 다가오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해서 물러나는 외줄 위에서 서로의 존재를 포옹으로 확인한 채 아직 함께 있음에 울었고, 더는 그러할 수 없으리란 직감에 다시 울었다.
사랑과 죽음을 교차하여 담는 눈물에 젖은 입술을 그녀가 보았다. 그을리고 긁힌 소리로 끊임없이 애틋해지는 입술이 말했다.
사랑이여, 내게 밤을 허락해요.
사랑이 한 번 그녀를 울렸고, 밤을 지배하였으나 누려본 적은 없는 저주받은 생명의 애원이 두 번 그녀를 울렸다.
사랑으로 떠나는 남자를 여자는 더는 사랑으로 붙잡지 못했다. 다만 사랑으로 지킬 뿐이었다.
사랑으로 선사 받은 구원. 마지막 입맞춤은 짧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죽음이 너무도 빨랐다.
죽음에 잠겨 든 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 안에서 그는 사랑을 보았고, 죽음을 보았으며, 그것으로 구원을 보았다. 그녀는 사랑이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구원이었다. 그러하므로 그는 그녀가 선사하여 준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가 담은 마지막이었다.
이 글의 마침표는 사랑의 4집, 예뻐와 함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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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상관의 그답게 2막의 깐샤큘.
그리고 붉은 귀걸이. 마지막까지 빨강과 아름다운 사랑하신 시아준수, 만세.
1. Fresh Blood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는 모든 것이 있을 자리에 있는 노래였다. 5월 19일의 타란탈레그라에서 느꼈던 완벽한 균형. 파워와 절도, 패기와 젊음, 분노와 열정, 억눌러야만 했던 갈증, 작열하는 욕망. 이 모든 것이 맹포한 기세로 충돌하면서도 제각각의 영역을 분명하게 고수하며 빚어낸 노래.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가 그랬다.
가로횡단의 파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아니, ‘나를 의심하지 마’의 가장 처음부터. 나직한 위압감이 그가 계단의 한칸 한칸을 내려디딜 때마다 부피를 키워갔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듯 요동치기 시작한 건 간단한 요기를 마치 종자루 내려놓듯 툭 떨어트렸을 때. 뱀처럼 연기처럼 스르르 걸음을 옮긴 그가 침대를 마치 단상처럼 밟고 올라섰을 때. 눈부신 조명이 그림자처럼 그를 좇아, 마침내 그와 한몸이 되었을 때. 어둠의 빛을 받아 반짝반짝한 붉은 존재의 그가 두 팔을 벌려내며 의식의 시작을 알렸을 때.
그렇게 시작을 알린 오늘의 흡혈 의식이 얼마나 장중하고도 아름다웠는지. 사랑해 마지않는 가로횡단은 신성할 정도였다. 횡단의 극점에 이르러 눈가로 드리워진 머리칼을 살짝 쳐내는 찰나의 파워까지 아름답도록 짜릿했다. 정점은 나의 여왕 다시 찾!겠어. 오늘 최고치의 강함을 경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이 파열음의 카타르시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파열음하면 탄성의 피를 또한 빼놓을 수 없지. 되찾은 젊음이 끓어올라 생명력을 주체하지 못하는 듯이, 수많은 새 생명 날 거부 못해ㅡ에서의 과격한 점프! (세상에 점프라니. 그 순간 객석의 모든 숨결이 지진을 일으키듯 경련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손끝에서부터 심장까지, 그의 차오르는 힘이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어. 프름..프름..점프.. 프름..)을 선보인 그가 성큼성큼 날듯이 걸어 오른 날개의 슬레이브의 얼굴을 두 손으로 화악 감싸 쥐어 끌어당겼다. 서로의 코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까지 끌어당긴 피조물의 얼굴을 내려다본 그가 탄식하듯 뱉어낸 감탄사. 탄성의 ‘피.’ 바이올린의 줄 하나가 끊어지며 잘못 그어진 악보의 음처럼 높고도 거세게 갈라지며 내뱉어진 그 음성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렇게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는 전설이 되었다. 드라큘라라 쓰고 김준수가 읽는다 하였지.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되찾은 이 젊음 속에서 영원을 살 것이다.
2. 윗비
빨간 귀걸이 만세. 그의 귓불에서 붉은빛을 발견할 때마다 두근두근하다. 생명력으로 뭉친 심장의 작은 조각을 보는 것 같기에.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어울림은 덤이고.
가슴 저렸던 그림은 마지막 순간. 미나의 다시 만날 수 있을진 모르겠네요..에 대한 대답.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침묵이 길었다. 입술을 닫아 문 채 그녀를 바라보는 고요한 얼굴로 서서히 따듯하고도 자신 있는 확신이 스며드는가 싶더니, 한 음절 한 음절 꼭꼭 찍어누르듯 발음했다.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 그런데 참 기묘하지. 꼭 나에게, 무대를 향한 관객에게 시아준수로서 말을 건네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와 함께 멀어져가는 그를 보노라니 심량하기 어려운 기분이 남겨진 마음을 휘감아 왔다. 막공의 환상이었을까, 그렇다면 참 달콤한 감각이 아닌가.
참 오늘은 ‘과연 그런 것 같군요’가 아닌 ‘과연 정말 아름답군요.’ 미나를 가리키듯 두 손을 앞으로 길게 뻗어내는, 여전한 너스레와 함께.
(유달리 귀여웠던 건 너스레로 펄쳐지는 팔이 평소에는 미나를 '가리키는 듯이'였다면, 오늘은 너무도 확연하게 미나를 가리키고 있었다는 점.)
3. Lucy & Dracula 1
초연 재연을 통틀어 너무도 아름답도록 섬세하였던 오늘. 물 흐르듯 유려한 서사였다. 그것도 오직 손짓과 표정으로만 빚어낸.
이리 와요, 이리 와요 내 사랑. 다가올 미나의 숨결을 기대하듯, 부드럽게 닫아걸었던 미간이 다른 존재의 기척에 언짢은 낭패감으로 물들어가는 찰나에 또렷한 기승전결이 있었다. 미나가 아니라 루시임을 알았을 때 그의 얼굴 가득 번진 당혹감(못마땅함)이 특히나 인상적. 앙다문 입술에서는 불쾌함이, 찡그린 미간에서는 의문을 품은 역정이 번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결의 루시가 맨어깨를 드러내며 먹잇감을 자처하는 순간이었다. 삽시에 여타의 목적이ㅡ미나랄지, 미나랄지, 미나랄지ㅡ 페이드아웃 되고 오로지 흡혈에 대한 본능만 남은 얼굴의 그가 루시의 어깨를 턱 잡아 쥐었다. 치솟는 욕망이 두 눈에 이글이글했다.
그러나. 루시를 찾아 헤매는 미나의 기척을 느꼈던 걸까. 돌연히 그가 돌아섰다. 간헐적으로 뱉어지는 옅은 호흡에서 가까스로 잠재운 욕망의 잔여감이 부유했다. ‘그냥 잠든 것뿐이에요.’ 억눌려 있음이 명백한 음성이 그것을 증명했다.
여기까지의 이 단계 단계가 얼마나 섬세하였는지 몰라. 파도치듯 끊임없이 변화하는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처럼 분명하게 표현했고, 또렷하게 전달받았다. 그가 연기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써 직접 설명하여 주는 것만 같은 전달력이었어.
미나와의 대화로 달뜨기 시작하는 음성에서도 단계 단계의 변화가 또렷했다. 열정, 사로잡힌 충동, 열망.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로 도약하여 ‘내 혈관의 모든 피’에서는 늘 그랬던 것처럼 아름답게 흥분했다. 마무리는 스타카토의 선/택/했/어.
퇴장은 흡혈의 감각에 몽-롱하게 취한 얼굴로 뒷걸음질. 미나와, 찰나 간의 정확한 눈맞춤을 뒤로한 채.
4. 삼연곡
She Intro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사과할 때의 그는 너무도 신사여서 역시 좋다. 인간이었을 때를 자꾸만 상상하게 해.
그리고 회심의 애드립. ‘저스트 조킹.’ 왼손 검지와 중지만을 펴서 관자놀이에 이케, 살짝 대면서.
웃음기 전무한 뻔뻔한 얼굴에 드디어 그녀가 웃었다. 드디어! 썰렁하다며 애써 수습하는 미나를 향하여 시무룩하지만 지지 않는 듯이 ‘다 웃어놓고..’ 덧붙이는 모습은 나를 웃게 했다. 귀여워서.. 동시에 그 찰나, 두 사람 사이에 스며드는 편안한 기운과 일상적인 분위기에는 애틋해지고 말았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였던 두 사람의 행복한 데이트 한때를 이렇게나마 보는 것 같아서.
‘더 늙고, 더 외롭고, 더 못돼졌죠’의 삼단 변화는 오늘 역시 분명할 정도로 가시적이라 애틋함을 키웠다.
아, 여담으로. 그가 그녀를 향하여 경보할 때마다(미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 이런 이야기 속에 빠질 수 없는~ 아름다운 공주님) 윗머리가 살짝 들려 흩날리곤 하였는데 그 모습이 정말 콘셉트 사진 속의 헤어 같아서 어쩐지 신비로운 기분이었다. 투디 쓰리디의 구분이 없는 존재 같았달까.
She
내 사랑의 노래. 이제 마지막이라니, 하염없이 몰아치는 개인적인 소회가 오늘의 she를 더 애달프게 만들었다.
결국 재연의 그는 단 한 번도 엘리자벳사가 칼에 맞는 순간의 소절ㅡ사랑하는 그 사람을 제발 지켜주소‘서’의 마지막 음절을 끝맺지 못했다. 단 한 차례도. 첫공 때 비명처럼 끊기고 마는 그 소리가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는데. 결국 내내. 칼에 찔린 사람이 꼭 그 자신인 것처럼 똑 끊기고 마는 음성이 미어지는 그의 심장 같아서 늘 보듬어주고 싶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정면으로 목격해야만 했던 두 눈이 아프지 않게 감겨주고 싶었어.
끝맺음하지 못한 소절과는 반대로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안 돼, 엘리자벳사에게 애원하는 아이 같은 목소리는 오늘따라 처연히 늘어졌다. 비극의 대칭을 이루는 것처럼. 그 언젠가의 일어나, 일어나까지 돌아와 아픔을 더했다.
그리고 세 단계의 절정.
악마에게 팔아서라도.
지상에서의 포효.
마지막의 절규ㅡ아파하고 아파해도 그녀에게 갈 수 없죠, 차라리 이 고통의 삶 끝내주소서.
나를 하염없이 잡아 흔드는 그의 삼색 비명. 비명할 때의 모습이 아름답다 하면 그는 어떤 얼굴이 될까. 하지만 정말이다. 온몸으로 노래가, 장면 그 자체가 되는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어. 그래서 이 노래를 사랑했다. 그의 she에는 온몸으로 희로애락이 되는 그 전부가 있으므로.
At Last
‘순결한 사랑 영원토록 맹세했죠.’ 문득 she의 가사가 오버랩되었다. 앳 라스트에서 마침내 다시 만난 그들 역시 눈 시릴 정도로 순결하여서. 차마 그를 보지 못하고 고개 숙인 그녀가, 그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엎어지다시피 하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가. 그들 사이에서 감도는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부시도록 예뻐서. 어여쁜 만큼 아려서.
'당신은! 결혼했어..'
오늘의 그는 심장을 차마 부여잡지도 못했다. 그녀를 향하여 뻗은 다른 손도 힘없이 허공에서 맴돌기만 했다. 울먹임조차도 힘겨워 보여서,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짊어진 얼굴이 안쓰러웠다.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의 우는 얼굴에서 끝끝내 고개 돌려버린 건.
Loving You Keeps Me Alive
‘그대를 처음 본 순간 모든 게 변해버렸어’는 자꾸만 노백작님을 불러온다. 미스 미나 머레이와 다시 만난 순간 모든 것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렸음을 증명하는 듯하였던 노백작님의 음성, ‘엘리자벳사..?’를.
시리도록 좋았던 소리는 2절의 ‘그대를 처!음 본 순간 숨조차!’ 차르륵 펼쳐지는 날개 같은 소리에서 진득하게 묻어나는 애절함이, 그 표현법이 너무나도 그여서 좋았다. 파편처럼 흩트러지는 결 많은 소리가 조각조각 귀에 박혀 들었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소리에 담은 그의 마음이어서, 꽂혀들 때마다 아팠다.
그리고, 뭐라 해야 할까. 러빙유의.. 재연 러빙유의 그는 언제나, 너무도 지친 얼굴이어서. 길고도 먼 시간을 돌아와 마침내 마주하게 된 그녀인데, 떠나는 등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무력감에 처절하게 휩싸인 모습이라.. 분위기 자체가 항상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오늘 역시 그랬다. 오랜 기다림으로 빚은 눈물의 세레나데 안에 모든 생명을 소진해 넣으며, 소절이 진행될수록 더 아프고, 더 외롭고, 더 애처로워지는 그를 보았다.
부케. 쓸어넘긴 오늘의 머리가 진짜 멋있었다. 이대로 2막이어도 좋겠다 싶을 정도였어. 무척이나 아름답게 뻗친 머리. 상처 나서 모서리진 마음처럼 마구잡이로 솟아 뻗친 듯한. 시아준수는 왜 이런 찰나의 동작마저도, 연기가 빚는 찰나의 모습마저도 전부 그림인 거지요?
5. Life After Life
요즘 계속 좋아하는 부분은 ‘끝이라 생각 마 이제 시작일 뿐’의 오르내리는 소리. 진짜 비인간적이야. 비슷한 느낌으로 ‘런던을 삼킨 뒤’에서 부드럽게 능선을 타듯이 넘나드는 목소리도 좋다. 능선을 그리는 소리가 좋아. 소리 안에서 박자를 쪼개었다가, 밀었다가, 당겼다가. 자유자재인 그가 느껴져서도 좋고.
‘너의 세상, 찾아서 파-괴하거라.’ 에서 박자를 쪼갬과 동시에 루시를 쳐내는 동작은 역시 합이 맞는다. 세트 같은 느낌?
6. The Master’s Song (Reprise)
하얀 종이를 구기는 것처럼, 렌필드의 콧등으로 덕지덕지 떨어진 핏물을 뭉개듯이 비비는 손길을 보았다. 얼핏 부드러운 듯하나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박정한 손길이었다. 특유의 우아함은 있지만 배려가 없어 따가운. 데일 것만 같은 그 손길과 숨을 조르는 정적의 끝에 그가 말했다. 한숨을 내뱉는 것처럼, ‘멍청한 놈.’
7. Mina’s Seduction
자신감의 발현이었을까. 유독 웃음이 많았다. 이렇게까지 웃음기 자욱한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가득하다’ 느껴질 정도로. 도입부에서 특히.
‘그댈 처음 본 그 순간’. 바람에 이는 마른잎소리 같은 음성에 스며든 부드러운 미소가 시작이었다. 그의 세계를 ‘어둠’이라 일컫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웃었다. 빙그레. 빛의 세상 잊어야 하나 거듭된 망설임에 살짝 정색으로 굳는가 하더니, 그녀의 팔을 홱 낚아채면서도 비릿하게 웃었다. 결국 네가 오게 될 것임을 안다는 듯이.
마침표는 마침내의 입맞춤 후 일그러진 미소. 너무나 많은 감정과 감각을 내포한 얼굴의 끝자락에 스쳐 간 찰나의 선명한 웃음이 말해주었다. at last 라고. 마침내 나의 너,라고.
그 마침내의 감회를 품은 것만 같은 의식은 장중하고도 맹렬했다. 그는 포효하는 듯한 크르렁거림으로 그녀에게 돌진했고, 또 자신을 내어주었다.
8. The Longer I Live
단언컨대 오늘 최고의 넘버. 무엇보다도 그 아름다움이. 시작부의 옆모습은 가히 천상의 것이었다. 정말이지 이럴 수 있나 싶게 아름다웠으니까.
소리는 또 어땠고. 한 소절 한 소절 그의 마음이 조각나는 시청각적 경험을 해버렸다. 장미꽃잎이 한 잎씩 떨어지는 것처럼, 소리의 한 겹 한 겹을 타고 그의 마음이 나락으로 내리박혔어.
침묵마저도 그의 노래였다. 시작하기 전의 침묵에는 깊은 자조, 망설임, 고독이. 관으로 다가서면서는 눈물을 대신한 침묵이. 전부가 그의 노래였다. 숨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정적에는 관객조차도 그 순간 그의 노래로 만들어버린 그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스모그.. 왜..? 마지막을 기념하여 아낌없이 내보낸 건가. 어울리긴 하였는데 유난히 자욱하여 살짝 당황.)
9. Loving You Keeps Me Alive reprise
‘아니야, 난 단지 미나를 지켜주려는 것뿐이야.’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려는 것뿐이었다. 그와 그녀가 영원을 나눌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아버린 얼굴이ㅡ자신의 사랑이 그녀를 줄리아와 같이 만들어버릴 것임을 이미 알아버린 얼굴이 끝내 눈물을 떨구었다.
그러므로 리프라이즈는 체념이었다. 숨겨지지 않는 흐느낌. 울음이 노래가 되면 이런 소리겠지.
10. At Last
그는 체념의 이별을 고했고 그녀는 사랑을 애원했다. 그녀는 다가왔고 그는 뒷걸음쳤다. 다가오는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얼굴을 하고, 자기 자신이 상처받는 얼굴이 되어서.
사랑의 만류가 거듭될수록 체념의 얼굴이 아프게 굳어갔다. 급기야 싹싹 비는 듯이 두 손을 곱게 모은 그녀 앞에서는 굳을 대로 굳은 그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 같은 위태로운 빛을 띠었다.
사랑의 대치 끝에 두 사람은 함께 울음했다. 한 사람은 사랑해서 다가오고 다른 한 사람은 사랑해서 물러나는 외줄 위에서 서로의 존재를 포옹으로 확인한 채 아직 함께 있음에 울었고, 더는 그러할 수 없으리란 직감에 다시 울었다.
사랑과 죽음을 교차하여 담는 눈물에 젖은 입술을 그녀가 보았다. 그을리고 긁힌 소리로 끊임없이 애틋해지는 입술이 말했다.
사랑이여, 내게 밤을 허락해요.
사랑이 한 번 그녀를 울렸고, 밤을 지배하였으나 누려본 적은 없는 저주받은 생명의 애원이 두 번 그녀를 울렸다.
사랑으로 떠나는 남자를 여자는 더는 사랑으로 붙잡지 못했다. 다만 사랑으로 지킬 뿐이었다.
사랑으로 선사 받은 구원. 마지막 입맞춤은 짧았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죽음이 너무도 빨랐다.
죽음에 잠겨 든 찰나,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가 그녀를 보았다. 그녀 안에서 그는 사랑을 보았고, 죽음을 보았으며, 그것으로 구원을 보았다. 그녀는 사랑이었으며 그녀의 존재는 구원이었다. 그러하므로 그는 그녀가 선사하여 준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가 담은 마지막이었다.
~ 2016. 6. 9. 2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