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 성당에서 하는 작은 라이브 콘서트였다. 7시부터 8시 반까지 한 시간 반 남짓. 참여인원은 30-50명의 상당한 소수였다. 성당 의자를 빽빽하게 채운 정예의 인원을 향하여 오빠는 앙코르 콘서트를 대신한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노라 했다.

은회색의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story로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는 차곡차곡 타란탈레그라, 인크레더블, 언커미레를 노래했다. 댄스가 가미된 곡에서도 특유한 연말의 분위기가 흘렀다. 약간의 반주와 더불어 그가 자신의 무릎을 토닥이며 박자를 이끌어가는 음악은 고즈넉한 평화의 정점이었다. 본당은 어느 성스러운 쟈-즈-바가 되어 있었다. 행복하다ㅡ고 생각한 즈음 그는 회장을 한 바퀴 돌았고, 모두와 손끝을 스친 후 돌출이라 생각되는 지점에 멈추어섰다.

그때까지 분명 기다란 성당 의자들로 빼곡하게 차있던 공간이 홀변히 갈라지며 평평한 바닥에서 폭이 좁지만 높고 가파른 계단이 딸린 동그란 무대가 솟아났다. 무대 저 위에서는 그가 앉으리라 예상되는 하얀 의자가 갓 태어난 듯 반짝거렸다. 모세의 바다인 양 의자의 숲을 가르고 나타난 돌출에 갸웃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꽤 먼 거리의 의자를 향하여 원형 돌출을 오르던 그는 돌연 멈추어 돌아섰다. 잠시 한참 아래를 굽어보다 아무 계단에나 분방하게 털썩 내려앉고는,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생긋 웃었다.

그즈음에는 ..is you의 눈이었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저런 많은 것들. 소년만화처럼 유쾌하고 발랄하다가도 성숙한 속마음을 머금은 문장이 대화가 되어 흘렀다. 평화의 시대에 난롯불이 타닥이듯 도란도란한 말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이 노래가 좋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개와 함께 앵콜곡을 시작했다.

미간을 보드랍고도 섬세하게 그어낸 채 적막할 정도의 고요함ㅡ얼핏 손끝의 긴장까지 생생하게 튕겨낼 정도로 고스란히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그는 아주 신중하고 배려 있게, 깊고도 그윽하게, 그 안의 사랑을 담아 노래를 시작했다.

그 노래였다.

그 노래의 첫음절에 그의 목소리가 입혀지는 순간 꿈인 것을 알았다. 꿈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조합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인지, 그가 초대한 기적인지 모를 모호한 경계에서 시간이 멈춘 것이 보였다. 그를 보았고, 그를 보는 사람들을 보았고, 그를 보는 나를 보았다. 그의 노래로 가득한 공간이 품은 것들을 하나하나 보았다. 공간 자체가 그인 듯한 풍경을 보았다. 어디 하나 사랑이지 않은 구석이 없는 꿈을.
그래서 그저 흐르도록 두었다. 나를 향하여 찾아온 꿈이 맞다면 기꺼이 의식을 맡기고 싶었다.
생각의 귀결만을 기다렸다는 듯 다시 흐르기 시작한 시간과 함께 찰나의 자각 또한 지워졌다.
오로지 그 노래를 시작하는 그의 얼굴만이 조각조각 각인되었다. 누가 내 안에 그 얼굴을 공들여 새겨넣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심장을 도화지 삼고 음표를 붓 삼아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눈 하나, 입술 하나가 피어날 때마다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랑의 얼굴이 되었다. 아, 이건 그 노래와 그의 만남이 빚은 감격일까. 원래부터 그의 것이었던 감격이 그 노래를 타고 발현된 감격일까. 알 수 없어도 좋았다. 단단한 콧등과 섬세한 미간에서 흐르는 사랑을 하염없이 보았다. 상상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었다. 그즈음 다시 이것이 꿈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행복한 건 꿈이 아닐 리 없다고. 이 순간을 선사하기 위해 나에게 찾아온 꿈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꿈이라는 자각이라기보다 꿈이어야만 한다는 확신이었다.

끝음절의 긴 호흡과 함께 은회색 옷이 하얗게 물들어가는 그를 바라보며 소리죽인 박수를 보냈다. 손뼉 치는 손가락 마디에서 형형하게 뭉쳐나는 것이 보였다. 
사랑, 그 이상.
그가 준 것인지 내가 보낸 것인지 모를 감각이었다.

 

7월에서 8월로 흐르는 새벽 다섯 시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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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내 꿈의 사랑으로 피어났던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