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장
별무리를 헤아리는 얼굴은 나날이 아름다움과 선함을 더해간다. 쓸어담은 별들을 바닥으로 우수수 흩뿌려 그려낸 후, 피아노 앞에 이르러서는 그야말로 '꽃이 활짝 핀' 얼굴. 음에 맡긴 얼굴이 정말로 아름답다. 들어는 보았는가. 아름다움을 위한 아름다움.
 
2. 찬란한 아름다움
쇼팽 좋아해요? 네, 하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하며 코를 찡긋이던 얼굴이 오늘의 시작. 누구 보라고 그렇게 예뻤나 싶게 예뻤다. 눈동자 속의 빛이 사랑스럽게 반짝반짝.
 
3.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배(묵음), 배질.. 이게 나에요? 여기서 배질을 부름한 건 처음. 이어 초상화 속 얼굴을 보고 경탄에 젖었던 얼굴이 사르르 굳어가는 찰나의 표정 변화가 분명하고도 섬세했다. 명료한 동시에 섬세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치 경탄의 표정을 붓으로 그려 넣었다가 지우개로 스윽 지워나가는 것처럼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아름답기까지.
 
4. 당신은 누구일까
헨리도 분명 좋아할 거예요. 발동동하는 모습이 꼭 선생님에게 숙제 검사를 받는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태연히 멀어져가는 헨리 워튼의 뒷모습을 시무룩하게 보던 얼굴이 금세 결의를 다지고는 흠! 목청을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총총총 딛는 발걸음이 날개가 달린 듯 가볍고도 사랑스러웠다.
 
'활짝 피었네'에서 두 주먹을 콩! 쥐며 허공을 두드리던 사랑스러움은 대체 뭐였지. 동시에 얼굴로는 코끝을 찡긋였던 역대급 사랑스러움은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잔망잔망 사랑스럽기 있나요?
계단에서 무대로 돌아오며 날아오는 모습은 또 왜 그리 예쁜지. 새삼 프리뷰의 감격이 되살아났다. 행복 만발한 얼굴로 사랑을 노래하는 그가 너무나 좋았어. 후반 솔로파트에서 꿈결을 거닐듯 당신은 누구일까, 부드러이 속삭이다 날아오면서 사랑이 몰아치듯 강해지는 그 소리가 너무나도 좋았다.
 
애드립은 어제와 같이 '아, 이게 그 배질이 말한 나쁜 영향인가..? 쓰레기.' 였는데 오늘은 매우 각을 잡고 경멸조로 발음했다. 쓰레기. 그 어조가 굉장히 듣기 좋았다.
 
그나저나 '꿈틀대는 푸른 핏줄' 도입부에서 헨리 워튼의 얼굴 좀 안 보고 싶다.. 그 시선이 너무 괴로워.
 
5. 최악의 줄리엣
제 연기 이상했죠? 묻는 시빌 베인을 향하여 '연기가 아니라 웅변하는 줄 알았어요.' ㅋㅋ
만약 오빠가 오늘 공연 어땠어요? 묻는다면, '애드립 경연대회인 줄 알았어요.' 라고 대답하고 싶어졌다.
 
6.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신선한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어요, 에서 웃는 얼굴을 만났다. 별안간에 스며들어 헛바람처럼 새는 웃음이었다. 그 아래로 떨리는 손이 주먹을 쥐었다 사르르 풀었다 다시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시빌 베인의 죽음이 남긴 잔상과 헨리 워튼의 찬란한 아름다움 양자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휩쓸려 버릴 것만 같은 그였다.
 
7. Against Nature
오늘의 귀여움 여기서 다했잖아요. 글쎄, 백점프 후 코트 자락에 파묻혀버렸다. 세상에. 한쪽 무릎은 세우고, 한쪽 무릎으로 꿇은 자세가 기막히게 멋진 와중에 코트 자락에 함뿍 싸인 웅크린 몸이 말도 못하게 귀여워서 세상에. 귀엽고 멋있기 동시에 하기 있나요?
코트 자락에 파묻혀 있다가 두 팔로 촤르륵 걷어내며 짠 일어설 때는 꼭 봉우리가 피는 모양 같았어서 극적으로 아름답기까지♡
 
8. 무엇이 기다릴까
찬란한 아름다움의 동작이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어제가 기이한 날갯짓이었다면 오늘은 아지랑이였다. 두 팔을 아지랑이처럼 부드러이 흘려내며 배질에게로 날아들었다. 검은 연기처럼 위험하고 고혹적이었다.
 
가질 수만 있다면ㅡ에서는 오늘의 표정을 만났지. 번득이는 눈이 살포시 모종의 빛을 머금었다. 정복감? 승리감? 다소간의 희열? 말려 올라간 입꼬리 역시 의기양양하여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침실로 이끌려가는 배질의 표정 오늘에서야 처음 보았는데.. 거의 울먹울먹하는 얼굴이었구나.. 그랬구나..
 
9. 넌 어디로
요즘 연기가 너무 짙어져서 그의 다리 자세를 신경 쓰지 못했는데, 오늘 보니 데빌의 차례에 가지런히 모으곤 하던 무릎을 모으지 않았다. 원래의 앉은 자세 그대로 벌려진 두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 데빌을 보고 어라, 바뀌었구나 했넹.
그리고 데빌의 헤어스타일 오늘이 제일 마음에 든당.
 
10. 또 다른 나
오늘의 음은 끝음절ㅡ숨겨진 '나'. 얼핏, 갈라져 이탈할 법하였던 소리를 기어코 원래의 음계로 되돌려 놓았다. 더하여 어느 때보다 거세게 음을 닫아무는 쐐기까지, 완벽했다. 심지어 오늘은 끝음을 닫아물며 문을 향하여 도는 순간, 몸에 실린 힘의 반동에 의해 크게 휘청이며 한쪽 무릎이 접히기까지. 이 이상 극적일 수 있을까.
 
11. Life of Joy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두 팔을 차례차례 배질의 어깨에 올려놓으며 넌지시 던진 말. 그리고는 어깨를 두 번 톡톡. 배질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도 서슴없고, 또 무례했다. 하지만 그를 탓할 순 없다. 또 다른 나 직후 초상화의 얼굴을 보고 이미 제정신이 아닐 테니까. 이런 타이밍에 그를 몰아가는 배질이 나빴다.
 
오늘의 소리는 배질의 호소와 찬란한 아름다움의 이중창이 만나는 지점에서. 너의 말은 논리 없는 궤변일 뿐ㅡ위태로이 갈라지는 배질의 목소리가 꼭 한계에 다다른 배질의 호소처럼 들려왔다. 한계에 이르러 호소력을 잃은 배질의 목소리 대신, 치고 들어오는 헨리 워튼의 찬란한 아름다움에 반응하는 그. 서글프게 아름다운 타이밍이자, 운명의 장난 같았던 오늘의 Life of Joy.
 
12. 천사의 추락
천사의 추락은 헨리 워튼과의 만남에서 이미 비롯되었건만. 헨리 워튼에게 천사의 추락을 애도할 자격이나 있는가?
 
13. 너를 보낸다 reprise
난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ㅡ배질에게 한껏 밀착한 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속삭였다. 여기, 밀착도와 목소리가 점점 은밀해진다.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 역시 나날이 변해간다. 28일과 같은 고혹적인 한숨은 돌아오지 않지만, 이전처럼 힘이 실린 스타카토 대신 나른한 어조로 새 노선을 정한 듯해. 네가 정말로 나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해? 되묻는 것 같은 나긋한 음성이었다.
 
넌 내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돼! 순간의 점프도 점점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 역시 28일이 시작이었지. 배질에게 달려들기 위해 공중으로 도약하는 몸이 너무나 한 줌인 것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14. 사라진 아름다움
햄릿의 대사는 또 변화했다. 어제는 감정을 울컥 토해냈다면 오늘의 첫 문장ㅡ난 그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아요ㅡ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이어 다다다다 혼망한 얼굴이 쏟아놓는 호소는 다급하기 그지없어, 누구라도 그가 바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다독임이든 위로든. 헨리 워튼 역시 모를 수 없었는데.
그의 기대와 거꾸로만 가는 헨리 워튼이 원망스러웠다.
심장이 없는 얼굴도, 조여오던 심장의 호소도, 울음을 삼키는 그를 보고도 외면하는 헨리 워튼이 증오스러웠어. 그로부터 멀어져가는 모습에, 그가 울음하다가 문득 그 울음을 삭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목격한 후에는 증오를 가눌 길이 없었다.
 
회한의 듀엣ㅡ남겨진 추함, 공허한 쾌락, 사라진 아름다움ㅡ은 늘 이렇게나 쓰리다. 그가 끝내 자신의 진실된 얼굴을 노래하는 순간이므로. '넌 누구'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가두어버렸던 자신을 스스로 읊조리는 것이므로.
 
영혼의 비밀이 들추어진 후 오늘은, 엎어진 채 울음하는 오늘의 얼굴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흑흑흑 흐르는 울음이 아니라 내지르는 울음이었어.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얼굴이 두 눈에 못처럼 박혀 들었다.
 
15. 도리안 그레이
그리고 도리안 그레이. 골자는 27일에서 보여준 변화와 28-29일을 그대로 이어온 9월의 마지막 도리안 그레이.
 
몇 번을 보아도 울음으로 웃음하는 얼굴은 심장을 틀어쥔다. 나 싱그러웠던 나 밝게 빛나던. 꺼져가는 불빛처럼 아스라한 목소리까지 숨을 막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모든 것이 심장을 버겁게 한다. 두 눈이 뜨겁고 심장이 아파서 눈앞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어.
 
그 가녀린 얼굴이, 초상화를 돌아보는 순간 회한으로 사무치는 모습은.. 한 없이 여리고 여리던 목소리가 자신이 망가트린 영혼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끝 모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그 나락에서 건져낸 출구가 죽음뿐인 그 얼굴은..
 
아,
어떻게 말로 이를 수 있을까.
 
엉금엉금 기는 걸음으로 내 심장을 산산조각내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눈앞의 구원을, 닿을 듯 닿지 않는 구원을 움켜쥐려는 그 모습을 위해 기도했다.
당신이 노래하는 그것이 당신의 구원이기를. 망각의 꿈도, 죽음의 환영도 아닌 당신의 현실이기를.
 
 
(+)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의 '난 도리안 그레이를 응원할 거야!'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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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10.01

아, 본문에 빼먹은 것. 또 다른 나에서 도리안 니가 나라면ㅡ의 소절. 오빠가 영혼이자 분신들을 한 명 한 명 응시하는 것이 맞았다. 그리고 오빠의 시선이 닿는 차례대로 영혼들은 그의 곁을 떠나. 도리안 니가 나라면 주제를 마무리하기 전에 그는 혼자 되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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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6.10.02

헨리 워튼은 30일부터 사라진 아름다움에서 마리화나를 피웠다고 한다.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1일에 보아버렸다.. 밤공에선 못볼 수가 없는 시야였고,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