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물은 시빌 베인과의 재회에서 섧은 숨을 그리도 잘게 토해내던 그가, 배질과 마주하고서는 그 어떤 울음도 쉬이 내쉬지 못하는 얼굴을 목격하였을 때. 마치 울음 할 자격조차 없어 그저 삭이기만 하는 것 같은 그 얼굴이 너무도 서러웠다. 그런 그를 안다는 듯이, 자신이 죽어가던 순간과 같이 또 그를 토닥여주는 배질의 손이 또 너무 서글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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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질의 화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 친구거든ㅡ의 소개말. '쓸데없는'이라는 수식어에 오히려 반짝이는 얼굴을 보았다. 역시 역효과라니까. 배질은 차라리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어야 한다. 헨리 워튼을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사람으로 뒀어야 해.
 
그리고 '저게 바로 나쁜 영향이라는 거야'라면서, 잔뜩 묻어나던 배질의 웃음(오늘 유난히). 평화롭게 도란도란한 음성. 이 문장에 웃음이 스민 이후로는 들을 때마다 싱숭생숭하다. 그들 중 누구도 몰랐겠지. 아, 헨리 워튼만은 직감하였으려나. 그의 비범하게 변화하는 눈동자를 똑바로 인지하고 그것을 더욱 끌어내고자 하였으니.
 
2.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오늘의 구심점. 오늘의 진폭. 충격과 상실의 혼돈이 섬세하게 고여 들고, 번져가는 노래였다. 잔잔한 호숫가에 일어난 파동처럼, 젊음을 향한 그의 욕망이 회오리쳤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엔 차라리 이 아름다움을 몰랐더라면ㅡ하는 원망까지도 언뜻언뜻 비추어졌다. 깨우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욕망을 알아버린 얼굴에서 이미 보이는 것 같았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수했던 시절의 그가 사라진 눈동자가.
 
피-할↗거↗야↗!의 약 스타카토적 강세 또한 더욱 섬세해진다. 결심을 다지는 것처럼 다부진 음성을 온몸에서 끌어내.
 
3. 당신은 누구일까
헨리 워튼의 책에 슬며시 손을 얹고는, 살짝만 힘주어 끌어내리며 주의를 끄는 사랑스러운 소년이 돌아왔다. 헨리, 내 말에 집중해주세요. 앙큼한 사랑스러움이 퐁퐁. 아무리 생각해도 헨리 워튼은 그의 반응을 보려고 일부러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거지? 금세 시무룩해져서는 '일생일대의 로맨스라구요오!' 토라지는 뒤통수까지 전부 다 사랑이니까.
배드보이, 하면서 오늘은 자켓의 양 깃을 툭툭 팔랑이며 질색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도 잔뜩 토라져서 통, 통, 통. 씩씩이며 허공을 헤집는 팔꿈치까지도 귀여워서 어쩐담.
 
4. 최악의 줄리엣
평소 난간을 세게 탁! 내려치고 팽~ 의자에 몸을 묻어버리곤 했다면, 오늘은 탁!! 내려치고 팽!! 묻었다. 세상에 팽!! 이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건가. 그래서인지 오늘은 그의 엎어진 등에 얹어지는 헨리 워튼의 토닥임도 평소보다 빨랐다. 비련하여 서글픈 등으로 곧장 툭툭.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왜 어제 배질에게 기대어 선 울먹울먹한 눈을 처음 본다고 느꼈는지 알았다. 배질에게 의지해서 겨우 가누던 몸이 어제부터 조금 더 빨리 고개 들기 시작해. 여기, 배질에게로 향하였다가 헨리 워튼으로 옮겨가는 시선 처리가 섬세해졌다. 배질에게서, 허공으로, 허공에서 다시 더듬더듬 헨리 워튼의 궤변으로. 중간의 '거쳐 가는' 단계가 생겼어.
 
신선한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어요ㅡ의 목소리 평소와 살짝 달랐는데. 다시 들어보아야지.
 
6. Against Nature 시퀀스
1막 또 다른 나에서 새로운 강약 조절. 모든 가사를 거칠고 강렬하게 긁어냈던 기존과는 달리, 초반의 끝음에 가성을 섞어 흘려내는 부분이 생겼다. 마치 연기처럼, 신기루처럼.
 
그리고 패션쇼에서는 찡그리며 '웃는' 얼굴.
 
7. Against Nature
1막의 음향 오늘 조금 섭섭할 뻔했는데, 역시 어겐스트 네이처♡
 
죄-악의 황홀한 절!정!은 어제의 변화를 이어갔다. 만세! 갈퀴 박힌 날개를 차르륵 펼쳐내는 것만 같은 할큄음의 '죄-악'이 주는 타격감이 황홀했고 절!정!에서 음의 멱살을 틀어쥐고 끌어 올리는 악력이 아름다웠다. 아, 그건 마치 죄악에서 황홀경을 애써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정신을 형상화해낸 것만 같은 소리였다. 너무 좋았어.
 
8. 넌 누구
난 인정 못 해 이것은 결코 현실이 아냐! 의 강세가 더욱 또렷해진다. 왈칵 토해내는 것 같던 문장들. 정신의 혼란들.
 
9. 무엇이 기다릴까
'보여드릴 수 없어요.' 두 손바닥을 꼭 항복하듯이 배질을 향하여 곧게 펴보이면서 좌우로 흔드는 움직임이 너무도 악동의 것이었다. 그렇게 놀리기 있나요. 그 짓궂게 어그러진 모습에 살짝 울컥했어. 찬란하였던 여름의 순수가 이렇게나 변해버렸나 싶어서.
 
배질의 고해이자 고백에는 오늘도 낄낄, 소리 낸 웃음을 뱉어냈고 곧장 책망했다. 당신이 만든 '나'. 요즘 계속 강해서 좋아. 더 더 강해주세요♡
 
오늘의 섬세한 아름다움은 '누구도 알 수가 없는 삶-이-여-'. 자신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서는 배질에 일순 움찔이며 굳었던 얼굴이 금세 예의 페이스를 되찾고는 더욱 강해진 소리ㅡ삶-이-여ㅡ로 배질을 몰아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빠져나갈 틈도 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숨조차 쉴 수 없게끔 마구잡이로. 더욱 필사의 혼신을 가하는 노래로 배질의 주위에서 반원을 그리며 독나비처럼 핑그르르 움직이는 그가 눈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늘의 잊을 수 없는 표정. 입맞춤 후 코가 닿을 거리에서 배질을 바라보던 알 수 없는 그 표정. 이글거리는 것도 같고 당장 잡아먹겠노라 위협하는 것도 같고, 또 필사적인 만큼이나 애달팠던 그 얼굴.
 
유혹에 굴복하는 거예요, '배질.'에는 으르렁거림이 섞였다. 이런 나지막한 부름은 처음. 경고하듯 한껏 낮아진 음성이 배질을 답삭 그러쥐었다.
 
가운은 오늘도 빨랐당. 어쩐지 목격할 때마다 적고 싶네.
 
10. Life of Joy
행복하라의 강세는 어제만의 것이었을까. 오늘은 정석으로 되돌아갔다. 다만 삶의 두-얼-굴-에서는 못 박아 내리찍는 강세를 이어갔어. 어디까지 강해질지, 그래서 어디까지 어긋날지 두근두근해.
 
11. 천사의 추락
아무리 봐도 헨리 워튼과 마주 보는 것 같은데. 찢긴 눈동자, 천사의 추락ㅡ이라며 그를 애도하는 헨리 워튼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웃는 것 같은데. 맞다면, 그건 비웃음인가. 혹은 자조인가. 아니면 둘 다일까.
 
12. 너를 보낸다 reprise
진-정-한 선행의 웃음소리는 나날이 고통스러워진다. 숨넘어갈 듯 웃는 어깨가 한없이 여리고 고독해 보여. 이 순간에는 배질조차도 그를 텅 빈 공허한 눈으로 바라만 볼 뿐이어서 더욱.
 
'하아,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는 여전히 변화 중이다. 돌아온 한숨결(하아)엔 다소간의 웃음이 묻어있었고 나지막한 되물음(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에도 언뜻 비웃음이 스쳤다. 삐뚜름하게 배질을 올려다보는 어깨가 비웃음 담긴 확신으로 물었다. 네가 나를 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아는데?
 
'난 그렇게 살지 못했어! 그렇게 살지 못했다고!' 숨 넘어갈 듯한 절규였다. 그건 비명이었어. 뼈아픈 고통의.
 
'어때, 아름답지 않아?' 미끄러지듯 계단을 타고 내려와 배질을 조르는 질문 역시 비통함 가득했다. 한가득 일그러진 얼굴이 겨우겨우 웃음을 짜냈다. 그건 배질을 향했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조소였다. 괴로움으로 뭉친.
 
13. 사라진 아름다움
자신의 손 틈 사이에서 빠져나가는 헨리 워튼을 보는 그가 아팠다. 외면당하는 순간의 그를 보는 건 매번 그런다.
직전까지 '피할 수 없는 숙-명'을 호소하며 한없이 여리고 나약하였던, 헨리 워튼에게 고이 매달려있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면서 굳어갔다. 흔들리던 목울대의 떨림도 잦아들었다. 숨조차 잊은 채 그 모습 그대로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이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를 시험한 이의 위선을.
이 대목에서 그가 더 토해내주기를 바랐다. 그의 울분이 배질을 찔렀을 때의 격정을 웃돌기를 바랐다. 헨리 워튼에게는 왜 그러지 못해. 깨질 듯 나약하여 그대로 무너지기만 하는 그가 슬펐다.
 
14. 도리안 그레이
오늘의 감정은 '그림 속 저 사람 도대체 누군가'에서 밀물처럼. 고조되는 감정이 한때는 예'뻤겠'지의 진성에 이르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저 사무치는 회한 앞에서는 어떤 도닥임도 떠오르지 않아. 그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이 망쳐버린 순수를 되돌릴 방법도, 그럴 자격도 없다는 걸.
 
그래서 오늘도 눈앞에서 삶의 종지부를 결정짓는 그를 바라만 보았다. 다시금 내 눈을 찾아와, '더 이상 기억이 안 나'노라며 두 눈을 질끈 감는 그 얼굴을 보았다.
 
스스로 구원을 청할 자격조차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아는 눈이 그저 울었다. '아름다운 소년'으로 에둘러 구하는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겨진 존재. 용서를 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은 영혼은, 오늘도 고독할 뿐이었다.
 
 
(+)
오늘은 다시 칼날면으로 목을 그었다.
악의 꽃. 오늘따라 문 뒤에서 왜 그리 분주했지. 인영이 꼭 두 사람이 속닥거리는 모습이었고, 언뜻 부리를 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등장, 별무리를 헤아리며 오늘은 평소처럼 웃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