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넘버는 Against Nature, 그리고 언제나처럼 도리안 그레이.
 
어제에 이어 또, 사랑해 마지않는 10월 8일의 고조. 울음으로 웃음하는 소절에는 오늘은 웃음보다 울음이 컸다. 나 싱그러웠던 나 밝게 빛나던ㅡ은 울음 탓에 싱그럽지도 맑지도 못했다. 울음 번진 음성에는 더는 싱그럽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만이 가득 묻어났다.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아ㅡ끝내 상실을 인정한 음성이 급격하게 뛰어오르며 크레센도로 번져갔다. '예뻤겠지'를 딛고 더욱 도약하는 고조된 감정은 모두가 사랑했던 '도리안'에서 평소보다 들끓었다. 탁한 긁음성까지 깃든 오늘의 '도리안'은 마치.. 추락한 현재의 그를 고스란히 담아낸 것만 같았다. 그을려 거친 음성이 그래서 더욱 사무쳤다.
 
또다시 칼날면으로 생을 그어낸 얼굴에서 생명수가 조명 사이로 흩뿌려졌다. 쨍그랑, 칼날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무너지는 순간 짚을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허공을 헤집는 양팔이 두 눈을 아프게 두드렸다.
 
푸른 핏줄 심장을 뚫고 날 '깨운다'
스러져 한없이 가녀린 음성의 끝에서, 마지막 어절이 몽환적으로 번져갔다. 울음에 먹힌 마이크를 타고 흐른 물에 잠긴 소리였다. 이것이 바로 날개 잃고 침습한 영혼의 소리인가 싶게 먹먹한 음성이었다.
탁, 손이 바닥을 짚었다. 평소보다 크게 울린 소리로부터 그의 음성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붉은 피'가 내 몸을 다시 나를 일으킨다
울컥. 최후의 발작처럼 내뱉어진 감정의 덩어리가 소리에 묻어났다. 죽음을 앞에 두고 불현듯 치밀어 오른 감정마냥 쏟아져 나온 그것도, 그러나 금세 잦아들었다.
 
안식의 빛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는 오늘의 육신은 그 지탱하는 팔조차 온전치 못했다. 무너지는 무릎에 이어 자꾸만 후들거리는 팔 탓에 고작 한 발치를 기어오는 그의 상체가 이리 흔들리고 저리 고꾸라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저 먼 어딘가로 시선을 박은 두 눈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어 보였다. 만신창이 된 몸을 어떻게든 질질 끌고 와, 기어코 빛 속에 안겼다.
 
황금 빛깔 천국이
빛 받아 맑게 웃는 우는 얼굴이 바라보았다.
내게 펼쳐진다
조심스럽게 뻗은 한 손이 매만졌다.
아름다운 소년이
조금씩 서글프게 번져가는 최후의 얼굴이,
나를 부른다
웃다 울었다.
 
 
*
 
1. 등장
오늘의 아름다움은 건반 위의 손. 음을 두드리는 손가락 끝에 달렸던 아름다운 미소.
 
2.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오늘은, 그를 부추기는 헨리 워튼의 목소리보다 배경에 드리워진 찬란한 아름다움이 더 가까이 들렸다. 요사스럽다 싶을 만큼 간악한 멜로디가 귀를 간질였다. 그 소리의 사이사이에서 꾐의 언어가 띄엄띄엄 들려왔다. 이 젊음이 사라지면, 너의 이 아름다움도,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의 눈동자가 상실을 입고 한 꺼풀 접히고 마는 모습을 보았다. 아름다운 동공에 사무쳤던 그 상실감은 노래 말미의 '변함이 없을 나'의' 얼굴'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일순 울컥, 짙게 번진 음성에서 그를 사로잡은 상념이 그대로 비추어졌다.
 
그리고 역시 배질을 마주할 때의 소절이 좋다. 오늘은 특히 두 번째의 '사라져가는'이. 음을 퍼트려내는 그 결이 정말이지 아름다워서..
 
3. 당신은 누구일까
오늘의 소리는 감'각'의 파동, 시빌 베인과 마주한 순간의 '날- 위해'. 무대로 되돌아올 적의 운명 같은 사'람'에서 차츰차츰 더해진 아름다운 강세. 그리고 후반의 솔로 파트 전부. 후반의 솔로는 전부가 아름다웠다. 음을 휘젓는 팔 동작이 만개한 사랑의 음성에 생기를 더해주었다.
 
4. 최악의 줄리엣
'그런데, 그런데 오늘 내가 본 여자는 누구지?' 의 억양이 좋았다. 격해진 감정으로 후반의 말을 더듬기까지 하는 오늘의 격정이 좋았다.
 
5. 찬란한 아름다움 reprise
오랜만에 헨리 워튼에게로 꽂히는 눈동자를 보았다. '제가, 시빌 베인을 죽였어요.'
 
그리고 오늘의 대사. 전부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울음에 먹혀 처음으로 어미가 흐려진ㅡ노래하고 있'어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절규했던 '그녀가 자살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마지막의 '신선한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싶어요'까지. 특히 이 마지막 문장은 뭐랄까.. 오필리어의 죽음에 경도되어 그 자신도 소스라칠 정도로 사로잡혀 있던 의식이, 가까스로 한숨을 돌리면서, 원래의 말투로 돌아와 애써 침착을 가장하는 것 같았던, 이 전부가 섬세하고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오늘 이 문장에 제2의 별을 달고 싶을 만큼이나 좋았어.
꼭 다시 전부를 편집하여 들을 것.
 
6. Against Nature
아, 오늘의 사운드 최고. 죄-악-의 황홀한 절!정! 은 물론 그 앞, '사라져가는 속박'에서부터 심장을 타격했다. 더불어 내 눈 안에서 이글거리는 그의 살얼음 같은 눈동자가 황홀감을 증폭시켰어. 놀랍게도 눈물이 났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단지 그가 '멋있어서' 눈물이 났다. 감격 그 이상의 감각이 선사한 희열을 도무지 가눌 수가 없었다.
 
끝까지 모조리 황홀했는데, '붉은 내 심장'에서 두 팔로 허공을 어루어만지던 손이, 양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양팔을 활짝 펼쳐내며 '아~름다운' 나의 영혼!을 외치는 얼굴이, 그리고 감'각'을 펼쳐내던 파동과 함께 씨익 웃던 입술이!
 
그가 아름다워서, 그가 사무쳐서, 그가 아려서 눈물을 삼킨 적은 많아도 그가 오로지 '멋있어서' 울먹울먹한 적은 드문데. 오늘의 against nature가 그것을 이끌어냈다. 마치 또 한 번 알을 깨고 나오는 경험이었어.
아, 어쩌지. 오늘의 against nature라면 '신이시여'를 물려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어쩌지요, 백작님?
 
(+) 스모그 오늘도 잘했어!
 
7. 넌 누구
거대한 액자의 런웨이 끝에서 발끝으로 도약하는 그를 보았다. 자신에게로 건네어진 초상화 틀에 두 팔을 부르르 떨며 경련하듯 점프했어. 이것, 곧 영원히 되돌려주지. 온몸으로 그렇게 말했다.
격리에 성공한 후, 계단을 내려오며 타이를 고쳐매는 순간에는 고개를 탁! 추켜올렸다. 이 정도쯤 가뿐하다는 듯이, 그렇게 멋있게, 아름답게.
 
문닫힘의 소리는 오늘도 깔끔하게 아름다웠다. 짝짝.
 
8. 무엇이 기다릴까
제게 주신 거니까아~ 말끝을 늘려 약 올리는 얼굴 아래로 소맷단에 폭 파묻혀 사라진 손이 느닷없는 귀여움을 뽐냈다. 끙. 이러면 너무도 큐티섹시잖아요. 게다가 오늘 유독 헤쳐진 가운 탓에 기웃기웃 드러나는 다리라인이 어쩜 그리도 아름다운지 자꾸만 시선을 빼앗겨 혼났다. ㅎ
 
무엇이 두려워'서'에는 한숨결을,
날 사랑했던ㅡ은 오랜만에 배질을 향해 시선을 내던지며 말했다. 그것도 고개를 뒤로 반 바퀴 비잉 돌려가며, 사르르 웃음을 섞어서, 한껏 고혹적인 자태를 뽐내면서.
 
오늘의 소리는 모든 끝음들에 있었다. 내 영혼의 비'밀'을 길게 늘어트려 말뚝박는 듯한 강세를 심어 넣는 것을 시작으로. 무엇이 기다릴'까'에서 튀어 오른 어미, 가질 수 있다'면'의 그물망 같던 끝음이 무척 아름답고 강했다.
 
9. Life of Joy
인간을 매혹하는 건 불확실성이에요! 깔깔깔 웃음을 퍼트려내는 그에게서 오늘도 찰나의 손가락질을 보았다. 이런 한심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듯한 핀잔 어린 손끝이 배질을 콕 찍고는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 치솟은 손가락만큼이나 붕 솟아올랐던 두 다리도 보았지. 실랑이 끝에 꼭 도약하는 것처럼 허공으로 붕 날아오른 다리에는 무게감이 전혀 없었다.
 
그나저나 오늘 새삼 그의 등에 달린 작고 가느다란 술들이 눈에 콕 박혔는데 그것들이 꼭 악마의 작은 날개처럼 보이는 착시를 경험했다. 의도한 디자인일까. 너무도 절묘하게 아름다웠다.
 
도리안, 네 주위를 봐. 너의 영혼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어! 노래로 이어지기 전, 배질의 최후의 호소. 돌아서려는 그를 두 손으로 그를 붙드는 배질은, 오늘은 거의 매달리다시피 했다. 멀어지려는 그를 한사코 붙든 두 손이 애원하듯 끌어당겼다. 그 바람에 스르르 딸려온 그의 상체가 아름답게 휘어지며 배질과 도로 마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로 스며든 비웃음이 이 순간의 절정이었다. 마지막 기대를 안고 마주한 그의 얼굴에서 모든 기대를 깨트리는 비웃음을 목격한 배질의 마음이 산산이 깨지는 것이 보였고, 배질의 조각난 낯빛을 확인한 그의 얼굴에 새롭게 스미는 비릿한 웃음이 보였다. 아, 정말이지 엄청난 호흡이었다. 이런 연기의 핑퐁이라니.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ㅡ대사의 억양 이상으로 배질을 부라리는 시선이 아름다웠다. 살짝 접어 뜬 눈이 흐릿했다가 날카로워졌다가의 명멸을 거듭했다. 오락가락하는 그 눈의 빛으로도 배질을 조롱하는 것 같은 그였다.
 
찬란한 아름다움 말미의 어그러진 미소는 오늘도 보여주었다. 심장이 좋아서 그리고 버거워서 산산조각 나는 느낌이었다. 이 미소 끝에 주먹을 움켜쥐고 배질에게로 돌진하는 타락 충만한 그는, 이제 (나에게) 이 넘버의 최절정.
완전히 타락 충만하여서는, 이제는 '행복과 불행'에 이어 '성공과 실패'에서도 두 팔을 휘젓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어제부터. 그의 격정을 따라 착란의 팔짓이 늘어나고 있다.
 
10. 너를 보낸다 reprise
그녀를 용서해주었'어요'의 부드럽게 속살거리는 마무리. 잘라서 들을 것.
 
다신 날 보지 않겠다고?의 얼굴에서는 오늘도 부릅뜬 웃음을 보았다. 치켜뜬 눈으로는 정색하고, 입술로만 비릿한 미소를 그리는 얼굴이 고요했다. 그 얼굴로 빤-히 배질을 보다가ㅡ떠난다는 말에 잠자코 배질을 응시하다가, '초상화'가 화두로 오르자 곧장 어그러지며 잠기고 마는 표정 변화는 또 얼마나 섬세한지. 입술을 깨물며 내뱉은 '난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는 이 섬세함의 종지부이자 새로운 시작.
 
'여전히 젊고, 여전히 아름다워!'
배질의 절규가 '네 영혼은!' 에 이르기도 전에, 그가 먼저 뒷걸음질 쳤다. 직감이 그를 물러서게 한 걸까. 터덜터덜 뒤로 곤드라지는 걸음에 몸이 휘청휘청했다.
 
11. 앨런의 죽음
'계약서를 경찰에게 넘길 거예요'가 이렇게 숨넘어간 적이 없었는데. 어느 때보다 평정을 잃은 어조였다. 조여오는 양심 앞에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그의 인간성이 보였다. 기뻤어.
 
12. 사라진 아름다움
햄릿의 대사가 정제되었다. 평정을 잃은 이후 계속하여 쫓기고 쫓겨온 햄릿이었는데, 오늘은 쫓기는 감정은 유지한 채 문장의 전개에는 쉼표가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좋았다. 연기적으로 테크닉적으로 이룩한 진일보에 깜짝!
 
너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살인을 하지 않아. 살인은 진정한 쾌락이 될 수 없거든.
일말의 기대가 깨진 육신이 휘청. 잠시 균형을 잃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자신이 들은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황망하게 비척인 걸음이었다. 늘어진 어깨가 말을 잇지 못한 채 고요했다. 멍해진 얼굴이 그저 상대를 보기만 했다. 자신이 끝내 모든 선을 넘어버렸음을 확인받았노라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는 얼굴로 좌절의 울음이 번져갔다.
 
나약한 인간 조여오던 내 심장. 얼굴이 발갛게 번지도록 절절한 호소. 최후의 가사ㅡ깊은 고'통'의 파열음은 점점 음색을 잃고 온통 고통이 되어간다. 헨리 워튼의 어깨를 거듭 움켜쥐는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넌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아.
헨리..
흘러넘치는 울음을 훌쩍여 삼키고, 손등으로 훔치는 뒷모습이 통, 통 뛰어가 보았지만 잡지 못했다.
헨리, 헨리..
마지막 발걸음 끝에 완전히 혼자된 어깨가 잔뜩 떨구어졌다.
 
 
 
(+)
헨리, 정말 그렇게 안 봤는데 (울먹울먹) 노코멘트!
배질. 안 웃긴데 억지로 웃는 거 아니야.
세상이 바뀐 시간. 브랜든 부인은 오늘 앨런에게 약을 먹여주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