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카나데와 그를 비추는 달, 그리고 눈물벽으로 쌓아 올린 락더월드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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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보답을 말한다.
그런 그에게 나는 항상 반문하게 된다. 우리의 관계에서 보답이 과연 적절한 표현일까. 받은 마음을 갚아주는 행위를 보답이라 한다면, 먼저 주는 이는 언제나 그였지 않은가.
마지막 날만 해도 그렇다.
생각지도 못한 더블 앵콜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청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었다. 8대 2의 비율로 월등한 댄스곡의 비중을 모두 알았다. 본인 스스로 이르기를 ‘가장 체력적인 소모가 큰’ 락더월드를 완주한 후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무언가를 더 바란다는 감히 마음이 품어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불쑥 회장이 어두워졌다. 이어지는 비트에 마음이 얼얼해졌다. 청하기도 전이었다. 한 번도 백 퍼센트를 이끌어낸 적이 없다던 락더월드의 직후였다. 훠이훠이조차도 이런 속도인 적이 없었다. 사흘 동안 점차로 단축되었던 앵콜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무대 아래에서의 그가 얼마나 바쁘게 움직일지 하염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처럼 굴었다. 언제나 트리플을 청하니 아예 더블 앵콜을 정식 세트리스트로 준비해왔던 기억 속 겨울을 기어이 재현해냈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왜 안 나간 고야~”라면서. ‘어차피 할 거니까 빼버린다던’ 인크레더블은 그렇게 두 번이나 강림해주었다.
뿐인가. F.L.P.로 2층 관객석을 향해 가면서도 ‘으레 하던 대로’에 그치지 않았다. 무수한 사람 속을 헤치면서도 거리낌이 없는 전진에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보였다. 얼마나 자신의 관객을 믿고 있는지, 얼마나 더 다가와 주고 싶어 하는지 걸음걸음에서 마음이 똑똑히 보였다.
복무 이전에는 곧잘 볼 수 있었던 밀고 당기기는 전무했다. 그가 얼마나 지니타임의 소원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대하는지 실로폰 소원을 덧칠해가는 광경 앞에서 절실히 느꼈다. 처음의 연주에서 그쳤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여러분들에게 서운하다며, 쥰쮸별로의 앵콜을 재차 청하는 그로 인하여 동화 같은 시간이 만들어졌다. 생전 처음 접했을 리듬체조도, 느닷없었을 판소리 소원도 그를 통하여 활짝 피어났다.
이쯤만 해도 명백해진다. 우리의 관계에서 주는 이가 누구인지.
보답할 길 없는 사랑이 우수수 쏟아지는 틈새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서 있는 건 나였다.
“여러분들만 저를 보는 게 아니라, 저도 여러분들을 본다”고 했지.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은 즉각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듯이 그 역시 사흘 내내 회장 안의 여러 얼굴을 향하여 진실되이 반응했으므로.
우리가 ‘소통’이라 여기는 교류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우리의 사랑이 양방향일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그 안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랑이 저를 위해 싸우지 말라 한다.
자신을 좋아하게 되어 아프게 되는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가장 힘든 부분이라며, 여러분이 그러면 제가 더 힘들다고 말한다. 결국 울음기 묻어버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그의 울먹임 위로 눈물이 겹겹이 쌓였다. 눈앞의 울먹이는 그와 사방에서 들려오는 훌쩍임 속에서 나는 숨죽인 채 두 눈을 깜빡였다.
누군가 내 감정의 댐을 무너뜨릴 요량으로 머릿속의 끈을 팅 잡아당긴 것만 같았다.
나, 이렇게까지 사랑받고 있구나.
가장 먼저 밀려든 생각이었다.
타인ㅡ정확히는 팬으로 인하여 눈물짓는 그가 아프면서도 사랑스러운 가시가 되어 눈에 박혔다. 사랑하기에 염려된다며 온 마음으로 말하는 그를 보며 모종의 결심 같은 것이 피어났다가 맹세가 되어 뭉치고, 산산이 흩어져 눈물로 바스러졌다가 다짐이 되기를 반복했다.
온갖 마음이 교차하는 가운데 하나만은 분명했다.
나는 이 사람을 외면하는 법을 모른다.
이 무대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면서, 헤어지기 전과 똑같은 머리와 똑같이 촉촉한 눈을 하고 돌아온 사람이다. 서럽게 피는 울음들을 보고는 울리면 안 되었는데.. 하며 말문을 흐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디 갈 일 없으니 울지 말라며 다독여주는 사람이다.
목소리로 사랑을 지키겠다던 사람이 사실은 온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런 사랑을 목격해버렸다. 그런 사랑을 지나치는 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자연의 법칙과도 같다. 나의 세계가 그를 만난 이후부터 사랑은 불가피한 현상이었다. 당신이 있어서 이유가 생긴 것들이 너무도 많다. 너를 만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카나데의 가삿말 그대로다.
이 귀하디귀한 사랑을 나는 오직 아름답고 선한 것들과만 동치하고 싶다. 설령 이 사랑에 동반되는 아픔이 있더라도, 그것을 굳이 ‘아프다’ 명명하고 싶지 않다. 울면 지는 것 같다는 당신의 말처럼, 아프다 칭하는 자체가 내 사랑 앞에 실례인 것만 같아서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단단해졌다는 당신은 시아준수로서의 삶을 계속하기를 선택해주었다. 지난 시간을 겪었기에 더욱 쉽지 않았을 결단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려주었다. 앞으로 몇 년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는 당신을 향해 나는 마주 결심한다. 그 결정의 무게를 당신 혼자 짊어지게 두지 않겠다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하겠노라 하는 당신을 두고 나만이 퇴로를 열어둔 채 사랑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사랑은 이어질 것이다. 사랑에 투쟁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감내해가면서, 이런저런 굴곡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사랑으로 내가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의 말대로 우리가 함께 이어져 있는다면 누구보다 행복하리란 확신이 이미 우리 사이에 있지 않은가. 시아준수로서의 삶을 살아오는 내내 당신이 그렇게 알려주었지 않나.
그러니 당신, 내내 시아준수이기만 하소서.
그 하나면
내 사랑은 울지 않을 것이니.
샤이샤
샤노니무스
안녕하세요 연꽃님. 처음으로 댓글 남겨요.. 그치만 항상 제가 미처 언어화하지 못하는 감정들, 섬세함이 부족해 놓친 순간들을 어쩌면 그렇게 정성스럽게 짚어주시고 기록해주시는지 감탄해왔고 감사했습니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에겐 생생하고 거의 날 것 그대로의 그날을 선사하는 글들, 현장에 없었던 이들에게도 무척 소중할 것 같아요. 그리고 이미 한 분이 같은 청을 드린 후라 저도 용기 내어봅니다. 저는 영문번역입니다만.. 이걸 볼 이들이 아마 한국이나 일본팬분들과 같은 팬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아닐 거란 게 마음에 좀 걸립니다. 그럼에도 소수지만 같은 마음으로 아끼는 사람들이 있고, 후에라도 이런 기록을 찾아 사랑을 키워가실 분들을 위해 공유하고 싶은 맘에 여쭤봐요. 괜찮으시면 허락해주시고, 조금이라도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후자라면 그냥 점 하나 찍어주세요 ㅎㅎ 한파에 몸 조심하시고 항상 평안하시길 빕니다.
샤노니무스님 안녕하세요. 남겨주신 댓글 중 '후에라도 사랑을 키워가실 분들을 위해' 공유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이 너무나 와닿아 거듭 읽게 되었어요. 같은 마음으로 아티스트님을 아껴주시는 분들, 그리고 나중에라도 같은 감정을 나누시게 될 분들께 이 글이 약소하나마 way back xia concert의 서글프도록 아름답고 벅찬 사랑들을 전해드릴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면, 제가 더욱 영광입니다. 샤노니무스님을 통하여 이 글을 접하게 되실 분들의 사랑, 그리고 그분들의 사랑까지 보듬어주시는 샤노니무스님의 사랑이 늘 오빠의 안에서 편안하시기 바랄게요.
너무 마음에 와닿네요..
진실로 좋아하면서 힘든적없다.라고 꼭집어 말할수없지만...그 힘듬의 순간은 잠시일뿐 받은사랑.기쁨.행복이 너무커서 이루말할수없이 행복할뿐이라고...그에게 진심을 전하고싶네요...우리모두 오래오래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