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내린토드에서 변화하여, 반깐토드.
도련님미를 한껏 뽐내면서도 성숙한 아우라의 죽음이었다. 역시 초연과 같은 장난기는 거의 없다. 사냥감에게 가차없는 건 물론, 깔깔깔 웃을 때조차도 서늘하게 차갑다. 하지만 그의 냉랭함은 재연의 죽음과 같은 무자비한 파괴력보다는 무정함에서 비롯되는 한기에 가깝다. 삼연의 죽음은 그야말로 ‘얼어붙은 심장’이다.
〈마이얼링〉에서도 어찌나 세상 냉랭한지. 초연에서는 언뜻언뜻 즐거워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는데, 돌아온 그는 어떤 의식을 거행하는 이처럼 엄숙하리만치 기품있다. 춤추는 발끝은 우아하지만 차갑다. 박자를 콕, 콕 찍어가는 구두코에서 얼음이 쪼개어지는 환각이 비추어질 정도로. 발끝에서 피어나는 눈의 결정은 아름다웠지만 그만큼 싸늘하고 아슬아슬했다.
〈프롤로그〉에서는 개인적인 의문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꼈다.
‘천사에겐 환희, 악마에겐 고통. 세상에서 이것은 사랑.’
천사, 악마, 세상 사람들의 감각은 정의 내리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감정은 정의 내리지 못하는 채로 얼마나 오랜 시간을 지내왔던 걸까 싶어서. 〈베일은 떨어지고〉에서 마주한 찰나의 감정을 몇 번이고 되새겼을 그가.. '천사에게는 환희, 악마에게는 고통, 사람에게는 사랑, 그렇다면 나에게는..?' 하고 수백 수천 번을 자문했을 그가 눈앞에 그려져서.
〈말라디〉는 오늘의 가장 아찔한 순간이었다. 동시에 경탄의 대목이기도 했다.
소파 위로 훌쩍 날아오르는 순간에 이미 휘청했다. 뒤쪽으로 기울어 미끄러지려는 몸을 다리의 힘으로 버텨낸 후, 곧장 회전축을 뒤틀어 그 반동으로 도리어 소파 앞으로 사뿐히 뛰어내렸다. 그 일련의 동작이 조금의 끊김도 없이 자연스러워 마치 일부러 연출한 안무처럼 보였다.
실수를 연출처럼 기막히게 재구성해내는 능력,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순발력. 곧장 12년 3월 25일의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가 떠올랐다. 그때에는 찰나의 음이탈을 몸을 이용한 반동으로 되돌려놓았었지. 기어코 살려낸 음정은 그날만의 레어로 탈바꿈했다. 이런 순발력과 위기대처능력은 타고난 것일까. 무수한 무대 경험에서 비롯한 것일까. 아마 둘 다겠지. 감탄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넘버는 〈마지막 춤〉. 이미 물이 가득 오른, 완연한 마지막 춤이었다. 첫공을 예고편에 불과하게 만들었을 정도로. 하지만 솔직하게도 애석하게도 잘생김만 기억에 남는다. ㅎ
아 그런데 시아준수, 종 치면서 너무 발로 줄을 차는 것 아닌가요. 그러면 줄이 탄력을 받아 더욱 흔들흔들하던데.. 무척 멋있긴 하지만 줄이 튕길 때마다 흠칫흠칫해..
참, 〈볼프살롱〉. 어제는 정면의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는데 오늘은 구조물이 정면까지 빙그르르 돌아와 그의 얼굴이 모두 보였다. 인간사 모든 음모의 배후에 선 존재가 씨이익 웃음을 그리는 얼굴 위로 검은 막이 닫혔다. 사악하고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
1. 박태양 루돌프의 “제발요!” 는 획기적인 귀여움이었다.
2. 그런데 왼손 검지에 리안이 반지인 건가요?..
리안이 반지 아니구나. 우리 리안이 죽음님께 냠냠 삼켜진 거 아니었구나. ಢ_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