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밤 모두 내린 반깐토드. 

 

밤공. 처음으로 음향이 좋았다. 또랑또랑하여 선명하면서도 화음은 풍부하게 살아있었다. 심지어는 1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에서도 훨씬 선명해졌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낮밤의 음향 차가 이렇게 극단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도 이런 음향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낮공의 〈추도곡〉. 가장 극적인 표정 변화를 목격했다. 평온하던 입술이 지그시 깨물리더니 소리 없이 그르렁 대기 시작했다. 분노가 스며든 뺨은 어둡게 그림자 져서 더욱 드라마틱해보였다. 화를 억누르고자 질끈 눈을 감아보아도 소용없었다. 결국 파들파들 떨던 손가락으로 꽉 주먹을 쥐고, 모든 분노를 응축하여 소리쳤다. 이렇게는 니가, 필요 없어.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얼굴에 표정이 많이 생겼다. 만면에 비웃음 같은 미소가 베이스로 옅게 묻어있었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에서도,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에서도. 하지만 초연과 같은 장난꾸러기의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인간사를 발치 아래에 두고 생과 사를 하찮게 여기는 이의 냉랭한 미소였다. 커튼을 걷는 것처럼 언제든지 걷어버릴 수 있는, 안개처럼 그곳에 존재는 하지만 머무르지는 않는 그런. 

 

〈마이얼링〉에서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연기가 있었다. 다소 멀리 떨구어진 총을 향하여 팔을 뻗은 그가, 총구로 바닥을 긁으며 서서히 끌어올렸다. 짓눌리는 정적 속에 끼이익, 마른 땅이 끌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때의 소름은 말로는 다 못할 것이다. 

 

베일에서는 또 슬픈 얼굴을 한다.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얼굴이 이미 촉촉했다. 오도카니 서서 엘리자벳을 기다리며 천천히 손을 내미는 얼굴에 금방이라도 새어나갈 듯한 물기가 가득했다. 


베일의 슬픈 얼굴은 언제나 프롤로그의 무료하게 잠든 눈으로 이어진다. 베일에서 프롤로그로, 프롤로그에서 베일로 무한한 시간을 오가며 출구 없는 이별 속으로 그를 가두어버린다. 삼연의 베일은 끝나지 않은 비극을 남기고 간다. 


(+)

 

〈전염병〉에서는 낮밤 모두 깔끔하게 균형을 잡아 소파 위로 올라탔다. 아무래도 의도한 ‘휘청거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부디 공연 내내 별 탈이 없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