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머리를 전부 왼쪽으로 가지런히 빗어 내린, 내린 토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베일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기다려왔던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손을 내민 그가, 다가오는 그녀를 두 눈에 가득 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은 고갯짓이었다. 꾹 다문 입술에는 소금기를 머금고, 두 눈은 그렁그렁하여서.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는 말은 분명한 진실이다. 더없이 갈망하는 눈동자를 하고 브릿지 위에 선 얼굴이 그렇게 말한다. 세상의 가장 촉촉한 얼굴로, 무엇보다 갈구하는 눈으로.

 

삼연의 그는 어느 때보다도 명료하게 ‘사랑’을 한다. 적어도 베일에서는 그렇다. 다가오는 엘리자벳을 바라보는 눈에 담긴 감정은 소유욕 같은 것이 아니다. 갈망과 슬픔이 혼탁하게 뒤섞인 촉촉한 눈은 아파하고 있다. 찰나에 그칠 수밖에 없는 완전한 만남을, 뒤따를 영원한 이별을. 

 

*

 

첫 오블. 오른 각도로 보는 극이 이랬었나 싶게 새로운 시야의 연속이었다. 오블에서 보니 비로소 그동안 보아온 얼굴이 뒷얼굴, 혹은 측면의 얼굴이었음을 알았다. 오블의 각도일 때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표정이 기억 이상으로 많았다. 

 

〈마지막 춤〉부터. 엘리자벳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교적 흡사한 각도였고, 그 덕에 죽음을 마주 대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그의 손끝과 그 손길에 의하여 의지를 조종당하는 엘리자벳이 일직선의 시야에 들어와 죽음의 위압을 실감하기에 좋았다. 후반부에 그녀를 움켜쥐고 고개를 좌우로 털 때에는 짜릿함마저!

 

〈마이얼링〉의 박자를 노니는 순간이 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건 오늘의 발견이었다. 한 폭의 그림이었다. 쇼팽의 녹턴에 맞추어 별을 그리는 도리안의 눈망울을 닮은,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올려다볼 수 있었다. 흑요석처럼 커다란 눈이 죽음의 무도를 추는 손가락을 따라 찰랑찰랑 반짝였다. 그 눈을 목격한 어느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들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박자를 노닐 때는 그렇게나 세상 아름다웠으면서, 죽음을 선사하고는 섬뜩한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외로이 떨구어진 총을 수거하여 방아쇠 당기는 시늉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하더니, 슈우우우우, 뱀의 쇳소리를 닮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작게 빵!
숨 막히는 고요가 그에게 완전히 지배당한 순간이었다. 

 

〈전염병〉. 오블의 각도에서야 비로소 그늘 드리워진 얼굴을 보다 세밀히 관찰할 수 있었다. 엘리자벳을 진찰하는 눈동자가 모자 아래에서 형형한 빛으로 반짝였다. 사냥감 포획을 앞두고 자신만만하면서도 섬뜩한 눈이었다. 그늘진 탓에 육안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얼굴로 연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 멋지게 모자를 벗어 던졌는데 오늘따라 한 가닥 살짝 삐쳐나온 머리칼 덕에 내내 귀여웠던 건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