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반깐 토드.
낮공의 〈마지막 춤〉은 무척 묘했다. 마지막 춤에서만큼은 늘 여유로운 죽음이라 여겼는데, 오늘은 억누른 화가 느껴졌다. 엘리자벳을 위협하고 조종하는 손길의 분노를 똑똑히 보았다. 낯선 광경이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한 그녀에게, 자기 자신도 모르게 화를 내고 있는 죽음이라니. 그것도 항상 여유 넘쳤던 마지막 춤에서.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역시. 그간은 죽음이 그녀를 시험에 들게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오늘의 그는 사력을 다하여 그녀를 회유하고 있었다. 내게로 와, 위로를 줄게, 나를 선택해, 스산하고도 아름다워 거부하기 어려운 음성을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면서.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가 되었을 무렵에는 그의 여유가 돌아왔다. 자신이 깔아놓은 세트 위에서 자유를 외치는 그녀를 귀엽게도 보고, 또 뿌듯해도 한다. 삶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그녀를 몰아가며 틈틈이 입맞춤의 시도도 잊지 않지만, 어김없이 돌아오는 거부에 이번에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다. 이미 죽음은 더 멀리 보고, 그녀를 얻기 위한 판을 널리 짜두었으므로.
그래서 오늘의 전염병과 그림자는 그의 경고이자 절절한 고백이었다. 차갑고 냉혹한 그가 한낱 인간사를 뒤틀어가면서까지 그녀를 원한다는.
그 와중에 밤공에선 지나치게 잘생긴 순간이 있었다. 전염병에서 그를 뿌리치는 엘리자벳에게 말을 거는 눈썹이. 오른 눈썹을 힐긋 치켜올리며 홱 돌아서는 맵시가. 이것으로도 아직 부족해? 그렇다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하는 얼굴이.
〈추도곡〉은 마침내의 임계점이다. 비로소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감정의 정체를. 그토록 갈망해온 마음의 이름을. 침몰하는 배 위에서 일갈하며 엄포하는 그것, ‘내 사랑’이었음을.
베일. 일생 처음으로 자신의 손짓을 순순히 따라오는 엘리자벳을 애틋하게 바라보는 눈이 나를 슬프게 했다. 처음으로, 그의 바람과 그녀의 의지가 만나 그녀 스스로 그에게로 걸음하는 기념비적인 순간. 다가오는 그녀를 향해 천천히 내미는 손에서 그의 벅참이 느껴졌다.
마침내의 만남.
그리고 남겨진 이의 마음.
백 년 후에까지도 그의 심장을 뜨겁게 하는 환희 혹은 고통. 그것은 사랑.
첫공의 차갑도록 무심하였던 죽음에서 이렇게 달라지다니. 놀랍고도 마음이 아파 매번 엔딩에서 깊이 가라앉고 만다. 이렇게 절절한 죽음은 처음이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만큼.
(+)
마이얼링. 오늘도 슈우우우 빵!
혼란한 시절들. 자신의 손이 닿은 어깨를 경기하며 털어내는 추기경을 흘긋 보고, 자기 손으로 시선이 스르륵 옮길 때 입가에 피어나는 비웃음이 너무나 멋진 순간.
22일의 마지막 춤이 오늘도 이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