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토드.
〈마지막 춤〉에서 그의 움직임이 과격해질 때마다 살짝씩 나폴대는 앞머리가 너무 예뻤다. 오늘 왜 이렇게 살랑살랑 청순하였나요?
청순미와 함께 여유도 돌아왔다. 그녀의 선택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과연 진심일까’, 웃음으로 피식 허물어버리며 의문을 던지는 모습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22일 낮공에서 보았던 불같은 분노 대신 마지막 춤은 결국 나와 함께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공긴 습하고 탁해’의 제스처는 어쩜 그리 아름다운지. 두 팔 벌려, 손가락을 차르륵 펼쳐내어 공기를 어루만지는 나긋나긋함이 그 자체로 습한 공기가 된다. 죽음이 아름다워요.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오늘의 ‘사랑해’에서는 조금의 진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침몰씬의 아릿한 ‘내 사랑’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오늘의 죽음은 그녀를 시험하고 있었다. 너의 선택이 과연 진심일까, 자신을 벗어나려 하는 그녀를 어렴풋이 비웃는 얼굴로. 그래서일까. 그녀의 거부에 부딪혔을 때의 동요는 컸다. 네가 나를? 또다시? 믿을 수 없어 하는 기색이 커다란 동공 가득 들어찼다. 괘씸한 듯이 이를 앙 다물고는 고개를 홱 돌려버린 뒷모습에서 모종의 결의가 느껴졌다.
그래서였는지. 말라디로 진단 내리면서도, 루돌프를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썩 즐거워 보였다. 무심하고 냉랭했던 첫공의 그와는 달랐다.
특히 〈전염병〉. ‘혈색은 창백해’에 곁들여진 소리 죽인 웃음에는 소름이 끼쳤다. 그녀에게 찰싹 붙어서, 명색이 진료를 보고 있는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운 향기를 맡듯이 은밀하게 숨결을 들이마시는 얼굴과 자제 없이 새어 나오는 웃음이 주는 배덕함에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짜릿했다.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까지 더하여 더더욱.
하지만 자신의 한 치 앞을 모르는 건 죽음 또한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순리일까.
침몰씬의 의기양양한 그의 얼굴은 도리어 내 마음을 가라앉게 한다. 곧장 뒤따를 이별을 예감치 못하고, 갈망해왔던 순간이 목전에 있음을 기뻐하는 얼굴이라니. 확신에 차서, 아련하고도 분명하게 그녀를 일러 ‘내 사랑’이라는 그 순간의 그는 모른다. 갈망해왔던 찰나의 만남은 곧 영원한 이별의 다른 이름이란 것을.
그래서 삼연의 베일이 이토록 슬픈 걸까.
글썽글썽한 눈으로 일생 처음 자신을 향하여 스스로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그토록 바라왔던 순간인데, 온전히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걸 마침내 깨달아버린 눈이었다. 삶과 죽음은 스쳐 가기만 할 뿐, 무엇도 죽음 곁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잔인한 섭리를.
허망하게 젖어 드는 눈동자가 싸늘해진 그녀에게서 천천히 정면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사랑을 얻었으나 동시에 잃어버린 이의, 말 잃은 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