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린 토드.
뿌리염색으로 샛노랗게 물든 금발이 반짝반짝하여 너무도 아름다운 죽음. 살짝 가다듬은 머리칼은 가지런히 층을 내어 차분한 분위기의 얼굴이 아주 귀하고도 예뻤다.
마지막 춤-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는 12월 24일과 같은 노선을 이어갔다. 마지막 춤에서는 그녀의 선택을 웃어넘기는 여유와 자신감이, 침대씬 재차의 거절엔 당혹감 서린 정색이 차례로 다녀갔다.
이런 감정선에서는 〈전염병〉이 참 즐겁다. 죽음의 차가운 얼굴에 화색이 감도는 순간이기 때문에. 남편의 배신을 알고 무너지고, 또 일어서는 그녀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얼굴이 이렇게 읽혔다.
‘계획대로.’
뜻대로 되어가고 있노라는 회심의 빛을 머금은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가더니, 비웃음처럼 미끄러지며 돌연 사라졌다. 언제 일말의 웃음기라도 내보였던 적이 있었냐는 듯, 성큼성큼 올라선 브릿지에선 무척이나 도도하고도 오만한 눈을 하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가 있었다. 멋있는데, 어쩐지 조금 새침하게 느껴져서 귀엽기도 했어. ㅎ
베일의 그는 어린아이 같았다. 슬픔이란 감정을 처음 배운 눈동자가 어리둥절했다가, 점차로 슬픔이 주는 감각에 침식되어갔다.
정면을 향하여 천천히 돌아보는 눈은 차갑지도, 오만하지도 않았다. 어떤 얼굴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면 좋을지 몰라 하는, 아주 낯선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오블에서는 역시 〈전염병〉의 모자 아래 진찰하는 얼굴이 선명히 보여 좋다. 나른하고도 음습한 탐미의 눈빛이 얼마나 형형한지 몰라. 한쪽 입꼬리만을 올린 채로 번뜩이는 듯하다, 어느 순간에는 또 사르륵 사라지고 없는 미소는 알쏭달쏭할 정도로 유혹적이고.
무엇보다 오블의 각도가 되었을 때 만날 수 있는 그림자의 마지막 장면이 진정 영화의 그것이다. 발각당한 황태자가 목석이 되어 망연한 너머로, 고개만 빼꼼히 기울여 내민 죽음의 얼굴에서 웃음이 점차 폭소로 일그러져가는 과정이 일직선으로 고스란히 담기는 시야. 절망한 사람 너머에 그 절망을 선사한 이가 군림하는 기가 막힌 배치. 오늘의 그림 같은 장면상을 드립니다.
참, 마이크가 늦게 켜지는 바람에 마지막의 웃음은 생목소리로 울려 퍼졌는데 나지막하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가 날 것으로 다가오는 생생한 느낌이 좋았다.
마지막 춤 고개 돌리며 하아아 숨소리 내쉴 때도 마이크가 좀 나간 느낌이었는데. 생목소리로는 분명 한숨을 내쉬었는데 마이크를 통해 들리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음향팀 힘내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