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보랏빛 섀도우. 


감히 말해본다. 오늘, 12월 29일의 시도가 포텐을 터트린 삼연의 첫 레전드 공연이었다고. 
죽음은 물론 거의 모든 캐스트가 역량을 발휘한 공연이었다. 특히 〈행복은 멀리에〉는 신선할 정도로 좋았다. 


*


역대급 〈마지막 춤〉이었다. 다 끝나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길이 회자될 오늘이 되리라. 역시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합에선 더없이 강하다. 강에는 강으로 응해온 현재까지 가장 강력한 마지막 춤이었다. 동작도 컸지만 소리가 압도적이었다. 건강하고 단단한 음이 안무를 따라 탄력적으로 공간을 지배했다.
더불어 처음 목격하는 광경까지. 마무리의 ‘마! 지막 춤!’에서 브릿지로 돌아가는 걸음걸음마다 목과 다리로 격하게 음을 탔는데, 그 바람에 내린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한 가닥 흐드러진 머리칼로 브릿지 위에서 몸 사라지 않고 절정을 박아 넣는데, 와아.. 이런 마지막 춤은 세상 처음이었다. 
강에는, 더한 강으로.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준 마지막 춤이었다.
넘버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한번 결심했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모든 마지막 춤을 보고 싶다고. 시아준수의 마지막 춤을 이토록 강력하게 이끌어내는 조커를 삼연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내가 춤추고 싶을 때〉도 강했지만, 마지막 춤과는 결이 살짝 달랐다. 마지막 춤이 죽음의 본성 그대로를 보여준 강함이었다면, 내가 춤추고 싶을 때는 엘리자벳의 생명력을 흡수하여 되받아치는 카운터펀치였다. 네가 아무리 날고뛰어도 결국엔 내 시선 안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이.


그리고 시종일관 웃었다. 


일단 삼중창에서, 씨이익. 그동안의 공연에서 주로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합일 때, 더욱 강한 느낌을 주기 위해 웃음을 그려 넣는다는 인상을 받았었는데 오늘 아니나 다를까. 막이 닫히기 직전 엘리자벳을 향해 웃음을 씩 그려 넣는 얼굴을 보았다.


또 〈전염병〉에서도! 여유로운 얼굴로 괴로워하는 그녀를 지켜보다가, 성큼 다가서면서, 회심의 얼굴로 웃었다. 전염병의 이 대목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웃어 보인 적은 여지껏 없었는데.. 글쎄, 웃었다! 남편을 떠나가겠노라며 이를 가는 그녀를 보며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하는 것처럼. 음모가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음을 확인한 얼굴로.


그랬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기를 계획했는데.. 그래서 그녀의 차가운 생명이 아니라 따스한 사랑을 얻기를 바랐는데, 〈추도곡〉에서 싸늘하게 식어버린 그녀의 생명을 목격한 죽음은 더는 웃을 수 없었다. 오랜 기다림을 배신당한 얼굴은 꼭 상처받은 것 같았다.


침몰하는 배 위에서 결심을 굳힌 오늘의 〈베일은 떨어지고〉는 역시 위로였다.
어느 때보다 강한 죽음이었기에, 시종일관 비웃음 가득했던 죽음이었기에 베일의 젖은 눈이 더 크게 다가왔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이 그녀의 일생을 도닥여주었다. 그녀를 향하여 정중하게 내민 손이 다정했다. 
삶과 사의 경계에서 ‘죽음’이란 현상은 스쳐 지나가는 소나기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신만의 여인을 위해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녀가 곧 얻게 될 자유를 위한 관문이 되어주기로.
그녀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선 찰나. 그와 그녀가 마주 보고 선 그 순간. 누구보다 시간을 멈추어두고 싶은 이는 죽음이었겠지.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두 잠재우고 찰나를 영원에 멈추어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그리하지 않았다. 기꺼이 자신을 선사했다. 그녀를 위해. 


생명이 꺼진 채 톡 떨어진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듯한 소용돌이가 그의 시선 안에서 회오리쳤다. 망울망울해진 두 눈이 더듬더듬 정면을 찾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어둠으로. 그의 앞에 말없이 펼쳐진 공허에게로.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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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3

침몰씬, 아예 칼을 들고나오는 것으로 바뀐 날. 10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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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3

그렇지 않아도 죽음이 강해지는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공연에서 칼을 직접 들고 나오는 것으로 바뀌어서 얼마나 놀랬던지.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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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7

10-11일의 공연이 하나의 물결로 이루어진 거센 협곡이었다면 12일 밤공은 협곡의 물살이 흘러흘러 만나는 바다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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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19.01.17

10,11,12. 다시 떠올려도 놀라운 맵순맵순의 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