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보랏빛 섀도우. 
앞머리를 한 가닥은 왼쪽으로, 나머지는 오른쪽으로 컬을 타서 마치 웨이브를 넣은 듯이 예뻤다. 오늘의 얼굴이 와서 기뻐요♡


좋은 공연이었다. 음향이 좋았고, 배우들도 이제 막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한 것처럼 활기찼다. 밀크, 행복한 종말을 비롯하여 앙상블이 주축이 되는 넘버 모두 훌륭했다. 나 역시 아무런 방해 없이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즐거운 공연이었다. 

 

객석의 집중도도 좋았다.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에서 그가 엘리자벳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일 때의 고요하고도 팽팽한 긴장감이 숨죽여 귀를 기울이는 객석과 만나 짜릿함까지 주었다. 

 

신영숙 엘리자벳과의 〈마지막 춤〉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신영숙 엘리자벳이 과도한 힘을 빼고 안정되어가고 있기 때문일까? 12월 29일을 시작으로 하여 1월 17일에 절정을 이루었던, 여타를 압도할 정도의 폭발력과 엄청난 증폭은 잦아들었다. 대신 예열을 거쳐 서서히 터트려가는 (다른 엘리자벳과의 조화일 때 보여주는) 예의 마지막 춤으로 회귀하였다. 
마지막 춤에서 빙그르르 돌 때 축이 되는 왼쪽 다리 말고, 오른쪽 다리는 붕 띄우거나, 축이 되는 왼쪽 다리에 가까이 붙이거나 하는데 오늘은 바닥에 구두코를 붙여 컴퍼스처럼 바닥에 원을 그렸다. 멋있었어. 


공연의 절정은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였다. 멱살잡이와 끄덕끄덕은 없이 베이직했음에도 엄청난 그림자였다. 쇳소리로 엮어가는 소절들이(세상의 종말 그 끝에 서 있다) 유난히 탄탄하고 건강했다. 음향이 뒷받침된 소릿결이 올올히 전해지며 사슬로 엮는 듯한 오묘한 음색이 고스란히 들렸다.
브릿지가 회전할 때의 절정ㅡ‘지금이야, 그것이 운명’에서부터 시작하는 하이라이트에도 자그마한 디테일이 덧붙여졌다. ‘세상을!’ 구원해. 기습적으로 상체를 정면으로 틀어 외쳤다. 인간은 절대 ‘볼 수 없지’. 루돌프에게 얼굴을 바싹 붙여 귓가에 속삭이듯이 일갈했다. 문장을 반으로 갈라 성큼성큼 이루어진 동작들이 절정의 드라마틱함을 더해주었다.


〈전염병〉. 진찰할 때의 목소리가 ‘공긴 습하고 탁해’를 그대로 소리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나직하고 음습한 소리였다. 스산한 공기로만 이루어진 듯한 소리가 짙은 안개 같았다. 또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이얼링 왈츠〉. 살랑살랑 후의 런웨이를 마치고 사선 끝에 섰을 때. 총을 줄 듯 말 듯 루돌프를 약 올리는 얼굴이 너무 예쁘고도 곱게 웃었다. 입매가 예뻐서 입꼬리를 올려 웃으면, 너무 예쁜 죽음이 되어버린다.
슈우우우, 팡! 은 삼연 처음으로 오블을 향했다.


어린 루돌프의 침대에 걸터앉은 죽음은 역시 중앙에서 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 침대 뒤편으로 드리워진 죽음의 날개가 그의 등에서 돋아난 것처럼 보이는 각도이기에, 어른어른 대는 죽음의 그림자를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다.


삼중창에서는 눈을 빛내며 웃었다. 엘리자벳을 향한 손이 일순간 벅찬 듯이 들썩이면서 만면으로 반짝이는 웃음이 번졌다.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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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준수 이외의 이야기:

 

신영숙 엘리자벳의 〈추도곡〉은 매번 아픈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지만, 눈물이 난 것은 처음이었다. 정말로, 좋았다. 
신영숙 엘리자벳의 〈아무것도〉. 마지막 소절,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다 살짝 휘청하였는데 대단히 절묘한 그림이 되었다. 휘청거림이 꼭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녀에게 이제 디딜 땅조차 없어진 느낌으로 와닿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