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내린 토드, 보랏빛 섀도우

 

침몰하는 배 위에서 ‘난 자유 줄 거야’ 할 때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늘 옆얼굴이나 뒷얼굴을 바라보곤 하였는데, 오늘 처음으로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각도였다. 정면으로 훤히 보이는 얼굴은 꽤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갈망해왔던 순간’에 걸맞을 법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득한 꿈을 꾸는 것도 같은 복합적인 감회의 얼굴이었다.

 

〈프롤로그〉의 강약이 여러 곳에서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엘리-자벳을 비롯하여 소절 사이의 부분부분이 평소와는 다른 박자를 따랐다. 인터뷰에서 그가 말한 것처럼 프롤로그에 따라 그날의 극을 관통하는 분위기가 결정되곤 하는데, 덕분에 신선한 부분을 이곳저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마지막 춤〉에서 오늘도 웃음을 지었다. 엘리자벳을 향하여 손을 내밀며 사르륵.
특이한 점은 오늘따라 동선이 컸다는 것. 옥주현 엘리자벳의 움직임이 예상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꽤 있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죽음이 바빠져야 했다. ‘착각일 뿐’에서 평소보다 넓게 팔을 썼고, ‘나는 알고 있어’에서의 손목 웨이브도 커다랗고 분주했다. 엘리자벳을 손짓으로 조종하며 합을 맞추는 안무에서는 여러 차례, 옥주현 엘리자벳을 팔힘으로 끌어당기곤 했다. 브릿지를 타기 직전의 마지막 소절에서 엘리자벳에게 다가서면서도 반걸음을 더 썼다.

 

〈행복한 종말〉에서는 어제처럼 설핏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고, 〈볼프살롱〉의 정색으로 굳힌 얼굴도 여전했다. 

다만 삼중창에서는 처음부터 웃고 있었다. 엘리자벳을 가상하게 여기는 얼굴로 반짝반짝하게. 말미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웃음기 잦아든 얼굴로 눈동자만을 빛내어 엘리자벳을 바라보았다.

 

〈전염병〉의 도약은 오늘도 이어졌다. 공중으로 도약하는 발끝을 목격하는 건 역시 좋다. 경쾌하게 도약한 구두코에서 죽음의 흥분이 느껴지기에.

혈색은 창백’해’의 끝음이 어제와 같이 길고도 나직하게 이어지는 소리를 오늘도 들을 수 있어 기뻤다. 

 

〈그림자는 길어지고 reprise〉. ‘세상을’ 구원해에서 오늘도 정면의 객석을 향하여, ‘인간은 절대 볼 수 없지’에서는 루돌프에게 얼굴을 붙여 소리쳤다.


마이얼링의 빵야는 중앙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오늘의 기뻤던 것. 1막 〈그림자는 길어지고〉와 〈추도곡〉에서 계단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둠 속의 숨겨진 모습에 두 눈이 반짝 뜨였다. 관객은 알 수 없는 무대 뒤, 그림자 속에서까지 죽음의 걸음걸이었다.

 

*

 

무대인사 이야기:

1. 무대인사가 이어지는 내내 시목 루돌프의 솟은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이정화 소피가 당첨자를 뽑기 위하여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시목 루돌프와 한몸이 되다시피 밀착했을 때는 정말이지 귀여웠다. 

2. ‘채움데이, 맞데이’를 듣지 못하여 옥주현 엘리자벳에게 물어보고 아아~ 끄덕이며 입 모양으로 ‘채움, 채움’을 따라하는 얼굴이 귀여웠다. 

3. 이정화 소피와 한참이나 얼굴을 맞대고 속닥속닥하는데 극에서는 마주칠 일 없는 두 사람의 담소가 진귀하게 느껴질 정도로 새삼스러웠다. 

3. 럭키드로우 첫 번째 당첨자(1층 16열)을 찾아 이마 위로 손그늘을 만들어가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얼굴로 열심히 찾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시아준수 이외의 이야기:

옥주현 엘리자벳의 시씨에 깜짝 놀랐다. 재평가는 없었던 일로 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