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현 엘리자벳과의 서울 막공. 곧 두 사람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베일. 

 

엘리자벳을 향하여 손을 내밀며 팔자로 미끄러지는 눈썹을 보았다. 눅신하게 잠겨 드는 죽음의 표정이 하나.
입맞춤과 함께 죽음의 머리칼, 관자놀이, 뺨을 차례로 헤집는 엘리자벳의 손길ㅡ꼭 마침내 다가온 죽음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듯이 연거푸 어루만지는 손길의 애틋함이 또 하나.
그런 그녀에게 자신을 확인시켜주려는 듯이, 몇 번이고 오가는 손길에 잠자코 자신을 맡기는 죽음의 모습이 또 다른 하나.
커튼콜, 나란히 뒷걸음하기 전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손을 꼭 잡던 순간과 최후의 포옹이 마지막 하나.
하나하나 스틸 컷으로 남겨 간직하고 싶었다.
막이 닫히기 직전, 나의 시야에 남은 최후의 인물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죽음ㅡ아니 시아준수 자신이었던 것까지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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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토드, 보랏빛 섀도우.
볼륨이 있는 올백에 가까운 깐토드. 올백토드일 때는 각도에 따라 불쑥 귀여워질 때가 있다. 얼굴선 자체가 원체 부드러운 곡선으로 그려진 탓에, 깐토드인데도 위협적이지 않을 때가 있어. 귀여워서..

 

하지만 깐토드답게 잘생김으로 비범할 때가 대부분인데, 오늘은 〈음모〉에서 특히. 브릿지 아래 인간들의 세상은 짙은 어둠 속에서도 색색의 빛깔이 존재하는 데 반해 브릿지 위 죽음의 공간은 색이 없이 사느랗다. 하얗고, 까맣고, 창백한 음영만이 존재할 뿐. 그 무채색의 온기 없는 공간에서 우뚝 선 모습이 어찌나 기기하던지. 잔상을 남기는 나른한 고갯짓과 미소에서 뚝뚝 흐르는 몰인정함, 냉혹함.. 눈을 뗄 수 없었다.

 

〈전염병〉의 브릿지 위는 이미 여러 차례 말했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죽음의 미모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해. 심지어 오늘은 오랜만에 웃음을 보여 주었다. 한쪽 얼굴만 일그러트린 미소를.

 

김소현 엘리자벳과 가장 좋았던 오늘의 넘버는 〈내가 춤추고 싶을 때〉. 확실히 안무의 합은 김소현 엘리자벳과의 공연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된다. 죽음의 V자 대형에서 삼삼삼 후퇴로 바뀌기 직전. 죽음이 턱과 발끝을 나란히 세웠다가, 신사 자세로 물러날 동작을 취하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는 이도 김소현 엘리자벳 뿐이다. 오늘의 타이밍도 정확하게 맞물려 물 흐르듯 유려한 주고받기가 되었다.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에서는 요즘 들어 살짝 싱숭해지곤 한다. 루돌프의 방문인 줄 알고 반색하였다가, 이내 실망하며 표정을 굳히는 엘리자벳도 요제프의 지친 목소리(나는 오늘 힘든 하루를 보냈어, 헝가리는 독립하길 원해…)에는 잠시 흔들린다. 순간 지나쳐가는 염려의 빛에 그래도 아직까지는 엘리자벳이 요제프를 사랑하고 있음이 느껴지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기분이 이상해진다.
병풍만 걷으면, 뒤편의 그늘에선 죽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데.. 죽음을 등 뒤에 둔 채 다른 남자를 염려하는 엘리자벳이라니..

죽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죽음은 어떤 기분일까. 짚어보게 된다.

 

침몰하는 배 위. 근래 들어 화가 난 듯한 모습의 죽음을 자주 보곤 하는데 오늘은 특히. 다른 누구도 아닌 프란츠 요제프에게 화가 난 것 같은 죽음을 보았다. 이렇게 대상을 특정한 분노는 또 처음 느껴보는 것.

그리고 오늘의 포인트. ‘헤이 루케니!’ 에 운율이 생겼다. 루!케~니! 한 번 꺾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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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의 마무리가 단정해진 대신, 혀의 빼꼼하는 활약은 침몰하는 배 위로 옮겨갔다. 엘리자벳을 엄포하듯이 부르는 음성 위로 붉은 혀가 잠시 얼굴을 비추었어.
오늘도 부분 부분의 음향이 참 좋았다. 특히 행복한 종말. 또렷한 소리와 기복 없는 음량, 오케스트라와의 균형. 듣기에 무척이나 좋았다.
마지막. 베일의 입술색이 너무 예뻐요. 톤다운된 투명한 분홍빛이 무척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