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서 오늘 두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영원’ 속으로 안식과 자유를 향해ㅡ에서 가로로 한 번. 엘리자벳을 죽음의 다리로 이끌어 당기며 그녀의 걸음에 맞추어 또 한 번. 이미 초연 막공의 베일이 어른어른하여 눅진해진 마음이 그의 작은 고갯짓 앞에 그만 갈래갈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죽음은 그의 약속을 지켰다. 더 나은 현실로의 인도자가 되어주었고, 영원과 안식을 주었다. 찰나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인간의 일생을 고스란히 함께하는 대가 또한 치렀다. 그녀를 자신의 뜻대로 끌어당기려 하였으나, 결국에는 그녀를 위해 차갑고 냉혹한 본연의 모습까지 버렸다.
사랑에의 자격이 있다면 죽음에게는 모든 자격이 있었다.
엘리자벳이 떠나고 죽음만이 남은 자리에서, 정면을 바라보며 살짝 치켜올린 얼굴은 의연했다. 모든 자격을 갖추고도 사랑을 잃은 이의 덤덤한 얼굴이었다. 동시에 마침내 성사된 사랑 앞에서 경건하며, 사랑을 위한 희생 앞에 숭고하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애틋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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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토드, 보랏빛 섀도우
오늘의 〈프롤로그〉는 조금 달랐다. 심연 깊이 가라앉아있던 감정을 끌어올린 얼굴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백 년 내내 한시도 잊지 않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갈망과 뜨거움이 두 눈에서 비추어졌다. 삼중창의 부릅뜬 미소와도 이어지는 표정이었다. 눈 깜빡임조차 지운 채 엘리자벳에게로 곧게 멎어 있던 얼굴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한결같은 수미상관의 죽음이었다.
〈행복한 종말〉. 고요하면서도 흡입력 있던 무표정에서 사르륵 웃음이 깃들어가는 장면이 대단히 그림이었다. 웃음이 완전히 피어났을 때는 꽃처럼 환하여 무해하게 보일 정도였다. 얼굴의 한쪽만을 써서 그린 반쪽짜리 웃음이었는데도.
평소보다 멀리에서, 생눈으로 바라본 1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가 무척 좋았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득한 공간감에 감싸인 기분이.
〈마지막 춤〉. ‘오직 나만의 것’으로 찡긋하기 직전, 엘리자벳을 향하여 다가서다 제동을 걸어 제 자리에 멈추는 동작이 남달랐다. 급브레이크가 걸린 것처럼 한쪽 발을 구르듯이 높이 들었다가, 쾅 내려놓는 움직임이 크고 격정적이었다. 언젠가의 〈전염병〉에서도 보여준 적 있었던 그 동작이라 반갑기도.
〈추도곡〉에서는 점점 더 크게 화를 내는데, ‘가’의 일갈이 굉장했다. 질색한다 싶을 정도로 길게 끄는 긁는 음을 써서 온갖 감정을 표출했다.
종치기는 매일 진화한다. 종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몸에 반동을 넣는데, 누가 보면 날개 있는 줄 알겠어. 밧줄 하나에 의지한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보이지가 않아. 탄력적인 순발력과 운동신경이 감탄스럽다.
침몰하는 배 위, 헤이 루!케~니의 운율은 오늘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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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 소피와의 화목한 트리플 하트를 학습한 샤죽음님. 오늘은 샤죽음님이 먼저 이태원 소피에게 손하트를 권했다. 이태원 소피, 석호 루돌프와 함께 오늘도 화목한 황실의 큰 왕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