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의 베일. 49회의 사랑을 이루었고, 49차례나 그 사랑을 잃었던 그가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부르는 ‘엘..리자벳’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다가올 운명을 훤히 예감하고 있다는 듯이.
먹먹하여 꿈꾸는 것도 같은 음성과 달리 그녀를 향한 눈동자는 의연했다. 내 안에서 네 꿈을 찾아, 라 하였던 론도의 우주와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그 눈에서 알 수 있었다. 엘리자벳은 구원을 얻었겠지. 그리고 그녀가 얻은 구원은 그의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백 년이 지난 후까지도 그의 마음을 뜨겁게 할 잔상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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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린토드, 보랏빛 섀도우.
결을 살려 예쁘게 빗어 내린 앞머리. 볼륨을 살린 윗머리. 옆에서 보면 꼭 하트모양의 사과처럼 예쁘게 빚은 두상. 청초하고도 사랑스러웠다. 누구라도 죽음을 원하게 될 만큼.
〈프롤로그〉. 지상에서 엘리자벳을 부르는 소리에 그르렁거리는 얼굴은 살짝 심기 불편해 보였다. ‘엘리자벳, 나의 엘리자벳’을 감히 누가 부르냐는 듯이. 그녀를 찾는 지상의 소리에 ‘엘리자벳’으로 받아치며 엄포하는 그를 보았다. 나만이 부를 수 있는 나만의 이름이라고.
〈마지막 춤〉. 이를 드러내어 웃는 얼굴. 나직한 도입부에는 옅은 웃음기가 감돌고 있어 폭발부와의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리고 남달랐던 최후의 ‘우리 둘-이서.’ 짙고 굵은 떨림이 웨이브처럼 음절을 타고 흐드러졌다. 깜짝 놀랐지 뭐야. 잘라서 듣도록 하자.
1막의 〈그림자는 길어지고〉도 무척 특별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음성은 처음에 가깝다. 1월 초반의 공연에 한 번, 비슷한 소리가 있었을 뿐. 당장에라도 손을 잡고 싶어지는 음성이었다. 파삭파삭하고 엄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건조했던 평소의 소리와는 달랐다. 부드럽고, 나른하며, 유혹적이었다.
〈엘리자벳 문을 열어주오〉. (엘)리이↗︎자벳. ‘엘’의 음성이 깊이 가라앉은 탓에 잠긴 음절을 바로 끊어내고, 곧장 둘째 음절인 ‘리’를 평소보다 길게 늘어뜨려 새로운 포물선으로 노래하였다. 순발력이 빛나는 ‘엘리-자벳’이었다.
오늘의 아름다웠던 장면도 이 넘버에 있었는데, ‘널 사-랑-해’의 대목. 채도가 가신 죽음의 싸느란 빛으로 엘리자벳까지 잠겨 들었다가, 가까스로 세상의 색으로 되돌아가는 장면. 여기에서 색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가 그녀가 소스라치며 놀라는 바로 그 순간.
귀여웠던 장면은 〈전염병〉. 남편의 외도에 절규하며 분기를 다스리는 그녀를 귀엽게 보는 죽음의 얼굴이 귀여웠다. 삼연의 죽음에게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악동미가 비추어진 찰나이기도.
〈추도곡〉. 어제와 마찬가지로 짙고 굵은 진성의 ‘가아아’를 들려주었다. 추도곡의 일갈이 강해질수록 죽음에게서 사람의 면모가 엿보인다. 사람 냄새가 나는 죽음이라니, 사랑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싶어 기분이 오묘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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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공의 애드립은 둘이었다.
하나. 〈혼란한 시절들〉. ‘멀기에- 가시는 거죠.’ 추기경의 어깨에 손을 살짝만 얹을 뿐이었던 평소와는 달리, 그의 뺨을 쓸어내리며 입을 맞출 듯이 고개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 손길에 라우셔 추기경이 경기하며 성호를 그었던 것은 덤.
둘. 〈마이얼링 왈츠〉. 중앙으로 슈우우, 팡! 겨눈 후에 퇴장하다가 멈추어 서서 왼블을 향하여 한 번 더 총을 겨누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