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 이튿날의 꼭 어제와 함께합니다.
“왜 미앙콘이에요? 왜 미안해요?”
영문을 묻는 눈동자로 그가 고개를 들었다. 또랑한 두 눈이 불가해하단 빛으로 이유를 찾으며 부풀었다. 대번에 반문하며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 가득한 그 얼굴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는 찰나였다. 연신 갸웃하던 그가 쐐기를 박았다.
“고마워콘이지.”
아아, 그래. 이런 사람이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부터 그랬다.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선택지로 주어진 ‘고마워요’와 ‘사랑해요’에서도 전자를 골랐다. 확신을 가지고 앙다문 입술이 주저 없이 말했다. 다 고맙다고. 돌아온 한국에서도 어김없었다.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꼭 ‘고맙다’라 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는 듯이, 마음을 전할 찰나가 주어지면 언제나 그렇게 말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 앞에서 끝끝내 눈물짓게 되는 건 항상 고맙다 말하는 이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기어코 증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구석에서부터 그랬다. 이튿날의 서울이었다. 지니타임의 세 가지 소원을 막 끝마친 후였는데, 한 번 더를 연호하는 목소리에 맞추어 어디선가 나직한 장구 소리가 동동동 울리기 시작했다. 작지만 묵직한 울림은 일대에 큰 웃음을 주었고 그에게도 닿았다. 그의 시야에 포착된 장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무대 위로 간택되었다. 콘서트장까지 운반해온 수고를 콕 찝어 언급해주는 상냥한 마음씨와 함께. 찰나에 꼭 어제 콘서트의 노래방 지니타임의 그가 겹쳐졌다. 노래방을 준비해온 정성에 감동하면서, 콘서트의 단 한순간을 위해 들여준 노력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었다. 사려 깊은 마음은 그때와 하나 다르지 않았다. 사랑스럽기가 한결같았다. 뿐일까. 오랜만에 잡아본다던 장구는 기억을 헤집어가며 정성스러운 가락으로 놀라운 순간을 만들어 보였다. 인사부터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이채가락이 끝나갈 즈음 회장 안을 단단하게 둘러싼 탄성의 공기를 잊을 수 없다.
장구로 만든 아름다운 순간은 전체의 작은 일부였다. 앙코르 콘서트라면서도 또 성심껏 바꾸어온 세트리스트. 마지막 날에는 무려 두 시간이나 할애한 지니타임. 유난히 쓰고 입는 소품들이 많았던 사흘 내내 실랑이 한 번 없었던 상냥함. 그 와중에 또 친한 친구처럼 ‘어차피 하게 될 거 다 아니까’ 이젠 실랑이하지 않는다며 건네 보였던 살가운 타박.
댄스콘서트였지. 하지만 토크콘서트 같기도 했다. 준비해온 무대를 선보이면서도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 하는 객석의 마음을 정면으로 마주 해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는 이 시간을 저도 무척 기다려왔다’고.
이 설렘, 이 기쁨이 결코 일방적 것이 아님을 수차례 말해주었다. 이 시간은 우리 함께 바라온 염원이며, 나 또한 설렌다고. 오늘의 여러분에게서 에너지를 얻어 다시 나아갈 수 있노라고.
WAY BACK XIA로 명명한 이 콘서트의 부제가 사실은 ‘마음의 행렬’이 아닐까 싶었다. 그의 마음이 줄을 지어 객석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마다 달라진 ‘마음의 선곡’을 설명할 길이 없다.
카나데에서 슬픔의 행방이 되었던 그의 마음의 계보에 어떤 곡이 올지 내내 기다렸다. 어쩌면 앙코르 콘서트로 다시 만나기를 가장 손꼽아온 순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리고 마침내 콘서트의 첫날, 계보를 이어가는 곡으로 사랑숨을 맞닥뜨렸을 때는 그때까지 품었던 모든 기대와 기다림에의 대답을 들은 것만 같았다.
사랑숨이 어떤 곡인가. 시아준수를 닮은 가삿말과 아름다운 멜로디 그 자체로 백 마디 말보다 큰 위안이 되는 곡이다. 그래서 잠시간의 이별에 그를 배웅하며, 또 2년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한마음으로 시작한 이달의 시아를 연 곡이었다. 15년의 반짝반짝한 기억과 2년의 기다림을 한꺼번에 간직한 노래였다. 바로 그 곡이 카나데와 슬픔의 행방을 이었다. ‘마음’을 전하는 노래로 이보다 안성맞춤일 수는 없었다.
첫날, 그의 사랑숨 안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사람, 하나로 그치지 않았다. 사흘 동안 이어지는 콘서트에서 날마다 새롭게 선보이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노래를, 곧 자신의 마음을. 그러면서 어떤 곡이 좋겠느냐며 넌지시 의중을 물어오는 상냥함 앞에 심장이 저 발치 아래로 쿵 떨어졌다. 아무리 주어도 부족한 사람처럼 구는 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돌고 돌아도, 다른 누구도 대신 못할 너, 잊지는 마.. 무수한 바람이 곡의 이름을 빌려 쏟아졌다. 여러 목소리의 하나가 되어 조심스레 꼭 어제를 청했다. 온갖 신청곡 틈에서 내일의 곡을 고민하던 당신이 우선 준비해온 오늘의 곡을 들어달라며 꼭 어제를 소개하였을 때의 기분을 당신은 알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던, 이다음의 무대가 기다리고 있는 걸 아는데도 여기서 세상이 멈춰도 좋을 것만 같았던, 그 행복감을.
사랑숨과 꼭 어제를 받고 행복을 전부 안은 기분이 되어 마음이 구름 위를 걷는데, 행복은 모퉁이를 돌아 이 다음 곡에서도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쿠란보였다.
나고야 마지막 날의 기억이 짙게 남은 사쿠란보는 사실 기쁘게도 하지만 울적하게도 하는 노래였다. 가장 체력적인 소모가 심한 곡이라고 그가 누차 말한 바 있는 락더월드를 아직 남겨둔 상황에서, 인크레더블과 사쿠란보가 공동앵콜로 청해졌다. 숱한 앵콜을 받아왔을 그에게서 그토록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은 처음 보았다. 도무지 하나만 고를 수 없는 팽팽한 분위기를 읽은 그가 결국 바닥에 털썩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처음 몇분은 좌중을 얼러도 보고 달래도 보았다. 실랑이를 시도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았다. 홀연히 몸을 일으킨 그가 ‘한번 가보자’ 하며 또다시 져준 것이다.
버티다 버티다 끝끝내 져주는 그에게 고마웠던 한편 떼써서 얻어낸 무대에 울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결과적으로는 락더월드, 사쿠란보, 인크레더블의 삼연곡을 청한 셈이 되지 않았나. 관객에게 마땅히 기함할 법도 했다. 그러나 천사 같은 얼굴은 기쁨 이외의 다른 기색은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섣불리 청할 수도 없게끔 끝 간 데 없이 져주는 이 사람을 어쩌면 좋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보답’이라 말하는 마음이 두 눈에 선하도록 보이는데 하지 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덥석 받자니 눈물이 나서 마음만 동동거렸다.
그래서 서울의 앙코르 콘서트에서는 무조건 그의 말을 따르자고, 결단코 어화둥둥만을 할 것이라고, 무엇이든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는데..
그러지 말라는 듯이 서울의 그가 말했다.
‘미안한 게 아니라 고마운 것’이라고.
그 마음 다 안다는 것처럼 그가 말했다.
‘내가 한국에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고.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지니를 자처하며 그가 바란 것은 오직 하나,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것뿐이었다.
그리고는 작정한 사람처럼 철저한 행복으로 서울에서의 사쿠란보를 채색해갔다.
몇 번이고 사쿠란보 강좌를 베풀어 주었다. 일본에서부터 세면 도합 몇 번이 될지 모르는 강습을 서울에서도 어김없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상냥하게. 아까보다 더 재미있고, 어제보다 더 즐거운 우예예를 만들어가자며 객석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잘 따라오지 못하는 ‘우구역’을 보고 말문이 막힌 얼굴을 하다가도 금세 웃으며 “쉽게 실망하지 않겠다”고 용기를 주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곧잘 우예예를 맞추어낼 수 있게 되자, 난이도를 높인 새로운 미션을 고안해내면서까지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를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나아가서는 말했다.
“사쿠란보 하고 싶으면 또 하자.”
같은 것을 되풀이하기 싫어하는 성정의 그를 아는데, ‘또 하자’고. 사쿠란보의 내한에 열광하며 행복해하는 얼굴들을 보고는 스스로의 제일원칙까지 접어가며 약언해주었다.
그렇게 무수히 주고, 또 주면서 정작 본인이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대망의 우예예를 앞두고는 지금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누구보다 신이 난 얼굴로 객석의 우예예를 지켜보던 얼굴에 몇번이고 함박웃음이 피었다.
객석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행복감을 모두 머금은 것 같던 미소, 행복이 쌓이고 쌓여 그렁그렁해진 두 눈, 울컥한 입술로도 웃음을 내려놓지 않는 기쁨 어린 만면. 얼굴 어느 구석에도 그림자진 곳이 없었다. 태양처럼 환하고 달빛처럼 아름다웠다. 서울의 사쿠란보가 정점을 이룰 수 있었던 건 다른 무엇 아닌 그 얼굴 덕이었다.
내가 즐거운 만큼 그에게 즐거운 시간이기를, 내가 행복한 만큼 그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되기를 그와 함께할 때면 언제나 바랐었지. 그에게서 비롯되는 수천수만의 행복감을 그 자신이 모두 되돌려받기를 기도했다.
그것이 모두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사쿠란보는 그 행복의 증인이었다.
마지막 인사까지도 잊지 않고 나비처럼 달려와 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오래오래 이 사람의 웃음이자 눈물이 되고 싶다. 이 사람이 나의 웃음이며, 나의 눈물이 되어주는 꼭 그만큼만 그리 해주고 싶다.
그가 그려 보인 손하트를 두 눈에 담으며 알았다.
그리하자면 이 삶을 다 써도 부족하리란 것을.
6월 1일은 고맙콘 이튿날, 시아준수가 '카나데'의 자리에 꼭 어제를 데려와 준 날입니다. 꼭 어제처럼 여전한 당신, 이 삶을 다 써서 사랑하리라 오늘도 약속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