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새 뮤지컬의 짜릿함인가. 아무것도 없었던 하얀 도화지 위에 극을 따라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지켜보며 전율했다.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마음을 스쳤는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프리뷰였다. 세상에, 이것이 프리뷰였다.
이런 완성도와 이런 열연을 시작과 함께 선사할 수 있다니.
할 수만 있다면 그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커튼콜에서 검을 뽑아 올리는 장난기 어린 입술과 만면의 미소 위로 수천수만의 입맞춤을 전하고 싶었다.
오른팔을 하늘을 향하여 부드럽게 펼쳐 보이는 미소 너머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에는 함께 울었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 이 극을 올리기까지의 여정이 전부 다 보이는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벅찬 감격이 일렁이는 두 눈에 김준수로서의 감회가 역력했다.
기쁨, 안도, 감격, 감사.
그리고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
그래,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
드물게도 개막 전부터 극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내비쳐 보였던 당신은 이제까지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단 한 번의 공연으로 증명해 보였다.
김준수라는 배우가 또 한 번 과녁을 쏘아 맞혔음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재능과 열정이 정답이라는 표적에 과감 없이 명중해버렸음을.
*
슬로우 액션에는 기립박수를.
눈앞에서 영화를 실연할 수 있다면 딱 이런 장면이지 않을까, 싶을 만큼 완성도 높은 액션이었다. 연습 기간 동안 뮤지컬 연습을 하고 있는지, 액션 스쿨에 다니는 것인지 모르겠는 기분이라 하였지. 과장 하나 없는 말이었다. 자칫 어색할 수도 있을 슬로우모션을 번듯한 액션으로 완성해내기까지 얼마나 연습을 거듭하였을까. 검을 움켜쥔 두 손과 군더더기 없는 몸놀림, 우아할 만큼 정확한 동선. 호흡을 맞추어 그려내는 합.
뮤지컬 인생 통틀어 처음 만나는 혁신적인 장면이었다.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자연히 두 손을 가슴 앞으로 모으게 되었는데, 세상에.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힘주어 움켜쥐게 되는 장면이 있었다.
전투에 앞서 갑옷의 체인 장식이 이미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전투의 와중에는 결국 달랑달랑대며 그의 움직임을 방해하였는데, 그것을 거추장스럽다 여겼는지 한 번에 떼어낸 그가 검 휘두르듯 내팽개쳐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다음 일격을 날리는데, 그야말로 혼란한 전쟁통에 있을 법한 장면이었다. 너무나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계속 볼 수 있었으면, 싶을 만큼이나.
*
그런데 이 극이 이렇게 슬프리라고는 왜 말해주지 않았나요. 죽는 것보다도 슬픈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는 언질을 왜 해주지 않았어요.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나 이상했다.
지친 육신을 이끌고 바위산을 오르는 뒷모습을 보는 마음이 꼭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요동쳤다. 자신의 한 몸 가누기조차 버거워하면서도 칼은 꼭 쥐고 있었다. 칼의 무게가 한쪽 어깨를, 상징의 무게가 다른 쪽 어깨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이 고된 고통의 그에서 오래전 같은 산을 성큼성큼 가볍게 날아오르던 모습이 겹쳐지며 울컥했다.
그때는 군중과 함께였다. 산 아래의 군중은 얼마간은 기대, 얼마간은 호기심을 품은 채 그의 날개가 되어주었다. 18세의 어린 아더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의 희망을 딛고 섰다.
그때에 아더가 가지지 못한 것은 오직 하나, 검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모두가 떠난 자리에 검 하나만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맡았던 어떤 역할보다도 곁에 사람이 많았는데. 그가 맡았던 여러 역할 중에서도 재잘거림이 많은 아더였는데.
말도 사람도 사라졌다.
바위산을 오르며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상에 다 올라서도 고독에 잠긴 듯한 입술은 열리지 않았다. 그렁그렁한 것도 같고 타오르는 것도 같은 두 눈은 말을 건네는 대신 검을 쥐었다. 모든 것이 검으로부터 시작하여, 검을 얻는 대신 전부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자신의 운명이자 분신인 그것을 꿋꿋하게 들어 올렸다. 혼자이되 혼자가 아닌 눈을 하고.
익히 소개된 바대로였다.
“결국 승리는 강자의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자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