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도리안 그레이의 '도리안 그레이'를 불러오고는 했던 부분이 사라진 것이 기뻤다. 절망에 닿았다가 서서히 의지를 입어가는 음성이 얼핏 닮았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었다. 고통과 번뇌는 있을지언정 나락이 아닌 점에서 도리안 그레이가 아니었다. 밑바닥에 섰을지언정 고개를 떨구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도리안 그레이가 아니었다. 6월 21일부터 들려주었던 처창한 듯 여린 듯 서글픈 목소리 또한 없었다. 좌절하고, 무너지고, 울음에 잠식되어 노래하다 가까스로 의지를 입은 자아가 스스로를 베어버리고 마는ㅡ도리안 그레이가 드리우는 어떠한 그림자도 오늘은 없었다.
소리에 울음이 묻어나도, 시릴 듯이 고독해도, 컴컴한 어둠을 밝히는 것이 그의 물기 어린 눈이라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선 목소리는 견고했다. 자신을 짓누르는 운명의 무게를 절감하고 있으나, 물기 어려도 결코 공허하지는 않은 눈동자 안에는 회피도 자멸도 없었다. 포기도 책임 전가도 없었다.
의연했고 당당했다.
걸음걸음에 스스로의 의지를 심고, 자아를 입고, 확신을 굳혀가는 눈빛이 형형했다.
땅이 흔들리고 발밑이 전부 갈라져도 앞으로, 내 한계를 넘어, 모든 의심을 지우고, 운명 앞에 설 것을 약속하듯이 전하는 오늘의 노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이 노래라면 시아준수에게 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곡인 '나는 나는 음악'의 동치어로 일컬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의 왼 얼굴과 오른 얼굴로 이미 나란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만큼이나 너무나도 시아준수였다.
슬프면서도 기쁜 게 뭔지 아나요. 정확히 이날부터 노래가 끝나고 울음을 훔치는 동작도 사라졌다는 것. 비장하고도 아름답게 울음 묻은 코를 훔치던 동작이 이날부터 사라졌다는 것. 그게 마침 도리안 그레이로 대변되는 나락이 완전히 사라진 이날부터였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