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치 3년 만의 연말 콘서트였다. 들뜬 마음은 높낮이를 모르는 설렘으로 날마다 이런저런 오프닝을 상상했다. 어느 날은 연대, 어느 날은 눈에는 눈, 또 어느 날에는 사심을 담아 왜 여깄어를 그려보았다. 여러 후보 중에서는 아무래도 연대송이 가장 유력하다 여겼다. 원체도 오프닝 곡인 데다 흥겨운 넘버이고, 무엇보다 프레스토 비바체~! 의 설렘과 충분히 나란할 법한 곡이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사뭇 달랐다.
이별한 계절로부터 세 번째의 겨울에서야 다시 돌아온 우리의 연말. 초입의 곱고 부드러운 음성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사랑의 세레나데였는데ㅡ오래전 먼 곳에서ㅡ둘이 아닌 혼자였다.
기억 속 Vol.1의 애틋함을 되살리는 반짝이는 금발과 눈 시리게 하얀 옷을 입은 그가 기네비어가 아닌 청중을 똑바로 바라보며 노래했다. 마치 이 순간을 오래도록 기다려왔다는 듯이.
‘난 꿈꿨죠, 이런 만남’
이제야 이 노래를 제 청중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노라는 얼굴을 하고서.
‘오래전 먼 곳에서 난 맹세했죠’
‘영원을 기다렸던 오늘’
영원을 기다렸다는 노랫말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 노래를 입은 가사가 곧 그의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재회를 위해 꼭꼭 뭉쳐둔 그리움이 노래하는 이의 눈 안에 있었다. 여러 결레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내는 그의 눈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눈빛이 수시로 노래를 앞질러 다가왔다. 눈동자가 객석 곳곳을 훑으며 하나하나 도장을 찍는 듯했다. 그 아름다운 눈이 전력을 다하여 말하고 있었다.
늘 무대로 그 마음을 전해왔던 사람인데, 이번만큼은 노래로도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두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여기 우리의 사랑 시작해’
그의 시선 안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왔음을 알았다.
바로 이 오프닝을 보기 위하여 삼 년을 기다려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영원을 노래하는 이 순간의 청중이 되기 위한 지난 삼 년이었음을.
바야흐로 우리 연말의 다시 시작이었다.
그는 계속하여 눈으로 말했다. 눈송이 지는 이별 노래를 이렇게 살갑게 부르는 사람이 또 있을까. 무대 좌우를 살뜰히 누비며 다정하게 웃는 얼굴이 사랑으로 가득했다. 눈이 내리는 날, 팬들을 생각하며 썼다는 곡을 부르며 세상의 사랑으로 웃는 사람이 무대 위에 있었다.
시아준수가 사랑으로 분하는 공간, 그것이 그의 콘서트였다.
그가 얼마나 사랑을 주는 사람인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랑받는 그의 모습에서 또한 여실히 느껴졌다.
사랑받는 그를 원 없이도 보았다.
말없이 그의 일거일동에 귀를 기울이는 객석은 물론, 함께 무대에 서는 동료 배우들까지도 그를 귀하게 여기어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을 사이에 두고 설왕설래하는 틈에서 온몸으로 웃는 그의 모습이 참 좋았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온 얼굴로 놀라며 쑥스러워하는 그가, ‘존경한다’는 장은아 배우의 이야기에 갈 곳을 몰라하던 두 손이, 동료들의 편지 낭송을 사뭇 진지하게 경청하던 얼굴까지 모조리 좋았다. 마음껏 웃고, 온몸으로 치대 가며 박장대소하고, 손뼉 치며 발동동 구르는 그가 무대 위에 있었다. 동료 배우들과 한껏 편안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이것이 진정으로 그들의 일상임이 보여 더욱 기꺼웠다.
관객만이 아니었다. 동료 배우뿐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행복한 콘서트를 매일 하고 싶다고, 음악감독님을 활짝 웃게 하는 콘서트의 주인공인 그였다. 사쿠란보와 인크레더블로 오케스트라와 객석의 대화합을 이루어내는 장관을 있게 한 그였다.
이렇게나 무대와 객석, 양 갈래의 사랑을 한 몸으로 받으며 서 있는 그를 보았다. 네 시간에 가까운 시간 내내.
진정으로 사랑이 도처에 있었다.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 사랑이 너무나도 자전적인 공연을 준비해왔다.
4년 만에 다시 돌아온 어쿠스틱 세션에서 특히 그렇게 느꼈다.
‘말하는 대로’를 소개하며 그는 길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방황하는 청춘을 위하여 이 노래를 부르노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만은 들을 수 없었다ㅡ‘오르막길’을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헌사한다고 하였으나, 결코 그렇게 만은 들을 수 없었던 Vol.2 처럼. ‘말하는 대로’는 들을수록 그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다독임 같은 노래였다.
노래는 시침을 돌려 정확하게 10년 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그때 고작 스물넷이었던 시아준수와 그보다도 어린 내가 기억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약관의 청년이 제 마음속 작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한 그해 여름이 모든 이야기의 기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힘들었던 시절, 그의 20대,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의 시간들이 차례로 스쳐 갔다.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를 곧이곧대로 바라보았기에 감수해야만 했던 무수한 일들.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지난한 시간들. 아니, 지금도 끝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까 싶은 형극의 외길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서서 오늘날 ‘말하는 대로’라고 노래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우리의 시간들이 그의 노래 안에 있었다.
거쳐온 굴곡에 비하면 평온할 만큼이나 덤연한 목소리가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한껏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간절한 한편으로는 나뭇결처럼 단단한 목소리의 노래였다. 곧바른 소릿결이 꼭 굳센 바람에도 버텨온 그의 모습 같아 서글프리만치 애틋했고, 고마웠다.
지난 10년의 그에게, 그리고 오늘의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경청했다. 들으면서 바랐다. 그가 들려주는 우리의 지난 시간 속에서ㅡ인생은 30대부터라 웃으며 말하는 그의 청춘이 부디 올곧게 그가 말하는 대로 흐르기를, 온 마음으로.
‘기다리다’는 연가였다.
팬들의 마음 다 알고 있노라 노래로 전하는 듯한 그였다. 불특정 다수의 사랑을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데 뭉쳐 아름답고도 따뜻하게 불러주는 그가 참 어여뻤다.
동시에 시아준수식의 고백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노래이기도 했다.
‘아홉 번 내 마음 다쳐도 한 번 웃는 게 좋다’는 가사가 특히 그랬다.
앞서 공유의 집 출연에 관하여 그가 누누이 한 말이 있지 않나. 공중파 출연이라는 십 년 만의 사건에 대한 소회로 그가 말하기를, “팬들이 한 번 웃고 지나갈 수 있는 일이 될 수 있다면 자신 또한 행복할 것 같다”고.
그리고는 전역 직후 세 차례나 불발되었다던 방송에 관한 이야기를 참 덤덤하게도 했다. 누구도 모르게 고배를 거듭 마시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그 스스로도 ‘이번에도 역시 안 될 것’이라 크게 기대조차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결과적으로는 무사히 송출되어 기쁘다고 마무리하며 그는 웃었지만, 과정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나는 선뜻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안 될 것’이라 자조하기까지 마음고생 하였을 그를 그려보다 심장이 덜컹했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는 것만 같은 얼굴이 눈앞에 어른어른했다. 아홉 번이 세 번이 된다 하여 마음 다친 상처가 더 작을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그 한 번 한 번이 얼마나 아팠을까. 다친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을 시도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는 이들 한 번 웃게 해주기 위하여 ‘문을 두드려보겠다’는 약속을 꿋꿋하게 지켜보인 그가 노래하고 있었다.
세상 다정한 목소리로, 그보다도 더 상냥한 미소로.
그의 따뜻한 목소리 안에서 서글픈 위로를 받으며, 나는 애써 웃었다.
한 번의 웃음이 그에게 행복이 될 수 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웃어줄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온 ‘그런가봐요’의 좋니였다.
너무나 많-은 것이 Vol.1과 짝을 이룬 와중에서도 가장, 많이, 가장 가까웠던 순간. 시아준수가 노래에 영별하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광경. 그 어떤 서사도 노래로 설득해내는 기적에 가까운 예술. 감정이 내 의지를 떠나 강제로 공명되고야 마는 무대.
‘사랑을 시작하는 네가 예쁘다’는 가사를 이렇게까지 가슴에 스며들게 할 사람이 또 누가 있겠나.
‘아프다 행복해줘’라는 두 문장에 각각의 서사를 그려 넣고 양립하게 하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겠나.
감상에의 노력도 필요치 않았다. 가사를 이해해보려는 시도 같은 건 말할 것도 없다.
그가 그대로 심장에 심어주었다.
나는 들을 뿐이었다.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가수는 역시 노래로 말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받은 노래로도 연말을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건만, 노래만이 전부이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를 깨고 훌쩍 다가와 주기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예의 아웅다웅을 하던 중이었다.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눈썹은 내리고 입술은 비죽이며 그가 말했다.
“나를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해줘.”
짐짓 너스레를 떠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말로 다 이를 수 없다. 겸양이라 하면 둘째갈 수 없는 그가 이렇게까지 벽을 허물고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기뻤다.
지니타임은 네 개라는 객석의 외침에는 황망한 듯 혀를 차다가도 특유의 재간으로 모두를 웃게 했다. ‘생색을 내고 싶다’는 넉살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안마의자, 나아가 TV를 나눔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 나름의 정색이었는데, 눈꼬리로는 웃고 있어서 조금도 사납지가 않았다. 크게 부풀린 눈 안으로 한 아름 섞여든 장난 어린 기운이 다정하기만 했다.
사실 우리의 대화에서 그는 늘상 그랬다. 티격태격하느라 툭툭 던지는 문장의 말미도 항상 동그랗게 말려있는 사람이었다. 토라진 체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먼저 웃어주는 사람이었다. 사랑으로 동그랗게 빚은 그의 얼굴을 똑 닮아 성격마저도 구름처럼 부드러운 이가 그였다.
티격태격이 서로 간에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고는 하나, 데뷔 이래 16년간 지켜온 그 안의 선을 놓는 법은 없었다.
“열심히 해야겠다.”
지나가는 문장이었다. 생색도 아니고, 팬들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 그저 정식 활동보다 잠깐의 지니타임 준수들이 높은 순위에 오른 사실을 인지한 그의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왜냐고도 묻지 않고, 상위의 준수들을 살펴보더니 대번에 읊조린 혼잣말을 똑똑히 들었다. 목적어를 밝히지 않은 문장 안에 그가 무대를, 나아가 팬들을 대하는 자세가 고스란히 있었다. 여기서 더 어떻게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부지불식 간에 톡 던져진 지나가는 문장 안에 그의 마음가짐이 있었다.
16년을 한 계절처럼 한결같은 그 마음가짐이 얼마나 예쁜지 그는 모를 것이다. 그 모습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것도.
언젠가부터 지니타임이 한 시간을 넘기는 일도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노래하는 이가 한 시간을 넘겨가며 내도록 목을 쓰는 것이 대단히 부담스러울 텐데도, 내색 하나 없이.
이렇게나 받고도 또 욕심을 부리는 나에게 마지막 하나까지도 그는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행복을 말해주었다.’
공유의 집에 관하여 말하며, 인크레더블을 부르며, 메들리를 부르며 그 긴 시간 ‘사랑받아 왔었음에 감사’하다며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정확하고도 단정한 언어로 몇 번이나 자신의 행복을 확인 시켜 주었다. 2014년 이래,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의 행복이 무사 무탈하였음을 꼭 확인받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안다는 것처럼. 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임을 너무나도 잘 아는 그가 표현할 수 있을 때마다 표현하려 하는 살뜰함이 고마웠다.
그리고 기뻤다.
이번 해에도 그의 행복이 웃고 있음을 보았기에.
잊지 않고 행복의 도장을 찍어주는 그의 다정함에.
2019년의 끝에서 그의 행복을 언어로 확인받은 즉시 다가올 2020년을 위해 이르게 기도했다.
그가 빈틈없이 채워준 행복을 포개어서,
이 사람이 웃는 새해가 되면 좋겠다고.
한 번 웃기 위해 아홉 번 다치는 일 없이 웃기만 할 수 있기를 부디. 설핏 울컥하여 그렁그렁할 일조차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고.
첫날의 my little princess 에서 울음을 짓누르던 얼굴을 떠올렸다. 이튿날의 약속했던 그때에에서 감정을 삼키는 입술에 바랐다. 양일, 우리 행복의 Incredible 에서 발갛게 번진 두 눈을 향하여 소망했다.
대번에 그를 떠올리게 하였던 영화의 한 구절을 그대로 따라서:
이 사람이 눈물을 흘려야 한다면,
기쁨의 눈물만 되게 하소서.
안녕하세요. 연꽃님
여섯 번째 연말콘 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위안과 안심을 느끼며 지금까지 혼자 속으로 복잡했던 마음이 정리되었습니다.
저의 짧은 생각과 좁은 마음에 반성하며...
변함없는 준수에 감사하며...
오래오래 함께 하자던 그 말을 다시 되새기며...
그냥 다시 한 번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