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고통 속의 죽음을 보았다. 한 손은 심장께를, 다른 한 손은 관의 이음새를 연신 붙든 채로 경련했다. 두 손을 곧바르게 포개기도 전에 죽음이 그를 덮쳤다. 매정한 문은 마치 꺼진 심장에 못질을 하듯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지난 16일의 그가 곱게 두 손을 포갠 채로 눈을 감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기에 오늘의 몸부림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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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이 리셋되었다. 하루 쉬고 나면 백지로 돌아가는 이른바 월요일의 저주가 샤롯데에서도 시작된 것인가? 작아도 너무 작았다. Fresh Blood 에 실례될 만큼.
다만 소리적인 아쉬움을 뒤로 한 개인적인 관전포인트가 있었으니ㅡ노백작님의 첫 등장부터 Fresh Blood 까지 그의 코트 자락으로 자꾸만 시선이 움직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노백작님의 코트가 너무 길어요. 발에 채는 건 예사다. 조나단에게 이 방에서 꼼짝 말고 있으라 할 땐 아예 코트 위에 서 있었다. 기세는 등등한데 거꾸로 수북하게 뒤집힌 코트를 밟고 선 모습이 (귀여웠음). 걸을 때도 코트 때문에 더 휘적휘적 (귀여웠음).
흡혈 후에는 무사 무탈한 변신이 이루어졌다. 코트 담당의 뱀파이어 슬레이브가 야무지게 코트를 회수해가며 그의 발밑까지 점검 또 점검.
삼연 들어 첫 월요일, 그리고 첫 염색. 윗비베이의 빨간 벨벳 코트와 색이 완전히 같은 쨍한 적발. 눈이 시릴 정도였다.
그리고 역시나. 새로 입힌 색임을 선포라도 하듯 얼굴을 물들이는 피땀눈물의 홍수였다. 러빙유 내내 더없이 절절하게 번진 얼굴에 붉은 생채기가 가득했다. 그의 심장을 꺼내어 보면 저렇게 얼룩덜룩하겠지, 싶을 만큼.
웨딩. 머리를 쓸어넘기며 흑화할 때는 쨍한 적발 덕분에 전에 없이 격한 분장이 되었다. 피땀으로 모조리 번진 눈가가 온통 새빨간 빛이 되어 강렬해졌다. 그 얼굴로 싸느랗게 웃는데, 세상에. 루시가 기절하는 게 당연했다.
Lucy & Dracula 1. 이리 와요, 이리 와요 내 사랑. 먹잇감(루시) 앞에서 입술을 축이는 욕망 가득한 얼굴. 곧이어 흡혈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묻으려다 퍼뜩 고개 들고 물러나는 일련의 과정이 단계단계 선명했다. 자칫하면 희미하게 흘러갈 수도 있을 장면을 하나하나 또렷하게 살려내는 연기가 무척 섬세했다.
무엇보다 오늘의 그는 대단히 필사적으로 흡혈의 욕구를 견뎌냈다. 참아내며 숨을 들이켜는 흡,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본능에 휩쓸렸던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는 마무리까지 박수.
미나에게도 필사적이었다. 첫 대사부터 격양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차분한 조정은 미나와 함께하니, 두 사람의 얼굴색만큼이나 대비를 이루는 톤이었다. 각자를 둘러싼 공기부터가 달랐다. 조정은 미나의 속삭임 같은 대사를 보완하기 위한 걸까 싶었다.
She에서는 벌써 첫 애드립: “어렵네요.” 앞으로가 기대되는 첫걸음.
“제가 경, 경솔했어요.” 부러 더듬는 대사가 두어 번 생겨났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그는 굉장히 서툴고, 어려지고, 풋풋해졌다. 개인적으로 좋았다(매우!)
노래가 시작되는 도입부, 프리뷰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너무 앞서갔지. 오늘은 대사보다 한참 뒤에 있었다. “미나, 내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진실된 러브스토리를 들려드릴게요.” 오케스트라의 박자를 기다리며 유난히 천천히 흘렀는데 마냥 문장을 늘이기만 하지 않고 운율을 가미한 덕에 매우 아름다웠다. 순발력에 짝짝.
지금, 여기서요?
되묻는 그녀에게 상냥하게 눈 맞추어 고개를 끄덕여주기까지. 아름답도록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흐름이었다.
그리고 가장 슬펐던 순간 중 하나가 오늘의 She에 있었다. 바로 회전무대에 실려 떠나가는 엘리자벳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선에. 한참을 말도 잃고 그녀에게 머물러 있는 얼굴에. 잠시만 시간을 멈추어 두고 그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미나의 소절. ‘불길해’ 그 한 마디에 미어지는 심장을 붙드는 손길. 무너져내리는 얼굴. 그 얼굴에 흥건한 피땀눈물. 그림도 이런 그림이 없을 것.
다만 슬프게도, 원미솔 음악감독 특유의 러빙유 박자 널뛰기가 분명하게 시작되었다.
Life After Life 가 프레시 블러드를 압도하는 날이 있다. 두 넘버가 양립하거나 각자의 에너지를 가지기보다도, 전자의 에너지가 사슬을 깨고 나온 듯 폭발하는 날. 바로 오늘이었다.
끝이라 생각 마 이제 시작일 ‘뿐’의 끝음부터가 달랐다. 음을 갈퀴로 낚아 채어 끌어올리는 듯한 소리였다. 이어서 숨소리로도 그르렁댔는데, 꼭 잘라서 들어야지. 파열음의 향연 속에서 끓는 음들을 견고하게 이어주는 흉성 역시 탄탄하고 강렬했다. 개인적으로 프리뷰 이후 매일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삼연의 넘버인데, 다음 공연 역시 기대가 된다.
참. 후드(?)가 처음에 덜 벗겨졌었는데 그가 고개를 돌리면서 아름답게 뒤로 차르륵. 그림 같았다.
오늘 문득 왈칵 슬펐던 If I Had Wings.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대목. 잘 알면서도 망설이게 되는 미나도 이해되고, 동시에 그가 불쌍해져서 그만.
그런데 조정은 미나, 삼연 들어 가장 ‘드라큘라’의 이름을 많이 부르는 미나가 되었다. 루시의 죽음 후는 물론 It’s Over의 그를 말릴 때도, 심지어는 피날레에서도 ‘드라큘라’라 부른다. 사실 그렇게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들릴 때마다 깜짝.
오늘의 Train Sequence 에서는 벅차오르는 얼굴을 보았다. 이제라도 내게 와요, 아직도 한 줄기 희망을 미련처럼 붙든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지상의 조정은 미나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최면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몽-롱하고, 정신 소통의 영향으로 넋이 나가 있던 프리뷰보다는 훨씬 이성을 차렸지만 혼란스러움에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반면 Deep in the Darkest Night 에서는 누구보다 매몰차다. 반헬싱의 손을 빤히 보면서도 지나치는 그녀에게서 찬바람이 분다. 시퀀스에서는 세 미나 중 가장 점잖은(달리 말하면 의뭉스러운) 그녀인 걸 생각하면 눈길을 끄는 태도 변화.
그런데 분명 촛불을 끄는 모션을 취하는데, 왜 불빛이 살아있는 걸까?
The Longer I Live. 오케스트라와 밀고 당기는 도입부가 너무 좋았다. 많은 날들을 지낸 나의 삶, 세상 모든 걸 알 줄 알았/는/데. 그가 연기하고 노래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하나의 조화로운 그림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와닿아서 짜릿했던 순간.
줄리아의 죽음. 책망하는 반헬싱의 대사와 그의 대사ㅡ“난 그녈 사랑해.” 사이의 텀이 매우 길었다. 매우 매우. 길고 긴 정적 속에서 그의 망설임이 느껴졌다. 나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걸까? 자문하는 듯한 침묵이었다.
Finale. 물끄러미 그림을 올려다보던 젖은 눈. 눈물과 땀범벅 되어서도 그녀를 향해 마지막으로 웃어주던 얼굴.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 요.” 쉼표와 함께 울며 웃으며 끄덕이는 눈맞춤이 오늘도 이어졌다.
덧. 미나의 유혹, 초재연과는 달리 침대에 푹신하게 포옥. 안착하는 모습을 꼭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