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음향이 돌아왔다. 강강강인 오늘의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음향으로. 기뻤다.

 

빨간 머리에 빨간 귀걸이. 그것도 세트로 새빨간 빛. 홀린다는 게 이런 걸까. 윗비베이의 강렬한 벨벳 코트와 똑같은 색의 쨍한 적발을 넋 놓고 보다가 새삼 윤이 나는 머릿결이 너무 곱다는 데 생각이 미쳤고, 곧이어서는 흡혈 전의 그가 어땠을지 궁금해졌다. 금발이었겠지? 그럴 것이다. 왕자님이니까. 

 

Fresh Blood, 다시 찾은 내 힘! 장갑을 벗는 동안 거의 앉다시피 깊이 낮춘 상체에 투명의자가 소환되었다. 꽤 오래 단단하게 버틴 채였다가, 마지막 박자에서 튀어 오르듯 상체를 일으키며 코트를 순식간에 뜯어내는데 박력이, 박력이. 

 

Lucy & Dracula 1. 흡혈의 욕구를 참아내는 숨소리가 더욱 크고 분명해졌다. 오늘은 흡, 숨을 들이켠 후에 그르렁대기까지.

“좋아, 그렇게 해주지.” 

팩 돌아서서 고개를 치켜들고 사라지는 뒷모습은 솔직히 귀엽다. 토라졌음을 온몸으로 표출하고 있잖아.

 

She, “지금 여기서요?” 되묻는 미나에게 입술 앙 물고, 고개 끄덕이는 눈맞춤. 어제부터 목격한 새로운 설렘 포인트. 다정하면서 절박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상냥하다.

비명의 시작점은 아예 올라간 모양이다. 높은음으로 정착되었어.

 

At Last, 조심스럽게 쥔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묻다시피 하던 그. 그런데.. 다가서려면 제대로 다가서지, 왜 정말로 닿지는 못하고 ‘묻을 것처럼’만 다가간 거야.. 더 슬프게.

 

She의 절규를 마친 그가 고개를 추켜올리며 흐드러진 머리카락이 오늘 너무나 절묘하게 그의 눈 밑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였다. 러빙유에서 다시 없을 피눈물을 목격하게 된 것. 오른눈의 한 가운데서 맺혀 볼을 타고 흐르는 피눈물이라니.. 누군가는 수차례 붓질을 하여 그리고, 다른 누군가는 무수한 가위질 끝에 완성할 필름을 무대 위에서 단 한 순간에 만들어내는 이 사람은 대체 뭘까 싶었다. 머리카락마저 연기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다. 무대에서 늘 백 퍼센트를 다하는 진심에 우연조차도 감복하여 머리카락에 영혼을 실어준 게 아니라면, 이렇게 충격적인 시각적 아름다움이 가능할 리 없다. 다시 볼 수 있을까, 오늘 같은 피눈물. 아마도 분명히. 꼭 다시 만나리라 믿습니다. 

 

아름다운 피눈물을 가능하게 한 머리칼이지만, 이마와 눈을 잔뜩 뒤덮고 있어 그가 불편하게 여기지 않으려나 싶었는데. 결국 애드립의 소절 직전, 미나에게 다가서는 걸음에 앞서 쏟아져 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절박한 걸음에 맞추어 서두르는 손짓으로, 이마저도 연기하듯이.

 

이어서 웨딩. 그가 흑화할 시간. 흘러내린 머리를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쓸어넘기며(여태껏 가장 오래/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ㅎㅎ) 억눌린 한숨을 내뱉었다. 손으로는 머리 꾹꾹이, 입술로는 입꾹꾹이. 백작님은 화가 났어요.

 

삼연의 Life After Life 는 왜 이렇게 좋지?

오늘 ‘이제’ 함께ㅡ의 파괴력 무엇. 대체 무엇. 두고두고 들어야 할 소리였고 또 한번 듣고 싶은 소리였다.

 

Mina’s Seduction. 조정은 미나와 달리 임혜영 미나는 항상 오른손으로 그의 깃을 매만지는데, 그녀의 손길을 가만 내려다보다 살그머니 맞잡아 호응하는 그를 볼 수 있어 좋다. 이 짧고 은근한 스킨십을 귀히 여겨 애달파하는 그가 좋아서.

미나에게 피를 내주면서는 꽤 괴로워한다. 그르렁, 긁는 숨은 물론 힘겨워하는 숨소리도 들렸어.

 

트레인 시퀀스 안의 짧은 Life After Life. 미나들마다 그에게로 다가오는 거리가 조금씩 다른데 임혜영 미나는 문자 그대로 손이 닿기 직전까지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순간엔 거리감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그녀들이 그에게로 기운 마음을 이 좁혀진 거리로 나타내는 건 아닐까 싶어졌다. 이런 의미에서라면, 임혜영 미나는 누구보다도 강경 드라큘라파일 것.

 

줄리아의 죽음. 러빙유 리프라이즈까지의 호흡이 가장 빠른 공연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빠른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아. 앞으로를 기대해본다.

 

 

덧. 오늘도 이어진 애드립: 어렵네요. 

러빙유의 개사: ‘함께’ 내게 돌아와, 함께 춤춰요. 새벽을 향하여. 

Life After Life. 차분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머리를 앞뒤로 꽤 여러 번 다듬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 

마스터송 리프라이즈. 멍청한 ‘!’ 어미에 강한 억양을 실어 비웃었다.

 

이예은 루시는 왜 18일부터 죽음의 비명을 들려주지 않는 걸까? 바뀐 것인가?


댓글 '1'
profile

연꽃

20.02.23

임혜영 미나, 이날 트레인 시퀀스에서 말투가 매우 Siri 와 흡사해졌다고 쓰려던 걸 까먹었네. 오늘 공연 보던 중 생각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