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마지막 공연이면 으레 그렇듯 전부를 쏟아 넣는 시아준수를 만난 날이었다. 열창하는 그를 보았고, 온몸으로 부딪히는 사랑을 보았으며, 두 눈에 선연한 눈물을 보았다.
삼연 들어 그가 가장 많이 운 날이기도 했다. 앞으로 4개월간 무수한 갱신이 있겠지만, 노래에도 울음이 섞여 소금밭이 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줄리아의 죽음 이후 혼자 남겨진 그가 고요하기에 설마 싶었다. 정적의 수면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러빙유 리프라이즈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댄 내 삶의 이유, 나를 살게 한 첫사랑.’
고요를 애써 가장하던 얼굴에 얕은 균열이 이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왈칵하며 무너졌다. 그러나 왼쪽 눈가에 맺혀 볼을 가르던 두 줄기의 눈물은, 애석하게도 차분히 흘러내릴 시간조차 없었다. 주의 이름으로 그를 처단하려는 무리를 피해 서둘러 관 속으로 피신하는 그의 등이 너무 외로워 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피날레였다. 구석진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는데, 관 속에서도 울고 있었을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난 400년이 넘도록 당신을 사랑했어요.”
문장이 촉촉했다.
“하지만 내 사랑이 당신의 모습을 파괴할 것만 같아 두려워요.”
급기야는 발음이 동그랗게 말리기 시작했다. 울음이 대사로 침투한 것이다(두려워요).
절규조차도 울음밭에서 피어났다.
“나의 절망 속에! 널 가둘 수 없어”
절규 틈새를 비집고 울음이 스며 들었다(절망). 참지 못한 울음의 끝은 새된 비명이었다(속에). 비명 묻은 울음은 또 금세 모습을 바꾸어 절규가 되었고(차가운!), 이따금은 한숨마냥 깊게 내려앉았다(암흑 속에).
변화무쌍한 눈물이 아낌없이 쏟아졌다.
아마도 그래서, 저주받은 칼을 내려치는 타이밍이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 고통 반 눈물 반에 눈먼 것만 같은 피날레였다.
*
피날레와 함께 오늘의 넘버는 The Longer I Live. 현의 선율 같았던 2월 20일의 명맥을 이어가는 2월 23일이었다.
미나 머레이와의 첫 만남.
“그녀의 눈을 보세요. 순결함이 느껴지죠?”
드물게도 어미를 명확하게 올려 맺은 문장이었다. 설명조인 여느 날과는 다른 끝음 처리에 귀가 쫑긋.
그런데 조나단, 그를 향한 경계가 굉장해졌다. 노백작님의 손키스에서 그만 미나의 손등을 빼내려고 하질 않나, 미나는 떠났다며, 깊은 유감을 전했다고 말을 뚝뚝 끊어가며 정색하질 않나. 이런 강경 조나단은 처음이라 흠칫.
프레시 블러드에서도 주 마지막 공연의 기합을 느낄 수 있었다. 흡혈 후 되찾은 젊음을 한껏 과시하는 목소리가 거침이 없었다.
영원히 함/께 해/! 날 거부 못 해/! 강세마다 원래 없던 받침의 삽입으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키윽 받침인가 싶었으니, 그 위세가 진실로 대단했다.
마무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영원히 사알/리라/.
살짝 끌어 늘어뜨린 ‘사알’의 카타르시스가 앞선 모든 강세를 압도할 만큼 강대했다. 노래의 끝을 알리는 천둥소리를 듣고 나서야 내가 긴장했었다는 걸 알았다. 몰아치는 파워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휘몰아친다는 게 이런 느낌이겠지.
‘난폭하여 아름다운.’
오늘의 프레시 블러드에 수훈처럼 붙여주고 싶은 수식어다.
윗비베이.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안녕하는 미나에게 살풋 웃어 보이는 붉은 청년. 오늘따라 한 템포 빨라진 “꼭 다시 만날 거라 믿습니다.”는 그 어조에서 얼핏 현대극 드라큘라를 연상케 했고, 이 시대에 다시 태어난 백작님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게 만들었다. 잠시지만.
기차역은 애드립의 장이 되어 간다. 어제의 선전에 박차를 가하여 오늘은 세 번째 애드립: 생각한 게 이겁니다.
까르르 쏟아진 웃음들에 백작님 흐뭇하셨을 것이다.
재연 때는 막공에 가서야 애드립을 했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애드립의 나날이 아닐 수 없다.
넘버마다 주 마지막 공연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 하나씩은 꼭 있었는데, She 에서는 신이시 ‘여!’ 의 어미였다. 잔뜩 긁어 새된 비명 같았던 일전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쇠진 음성의 어미가 있는 힘껏 저 멀리로 내던져졌는데, 갈래갈래 마구잡이로 치솟던 일전과는 달리 오늘은 정확히 십자가에 명중한 느낌이었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찬 바람이 분다는 그녀와 조나단을 번갈아 보며 숨 가쁜 듯 심호흡하던 찰나, 절망과 울화를 꾹꾹 눌러 담는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불긋하게 짙은 눈매에 울긋불긋 얽힌 처연함이 아름다웠다.
색이 제법 빠진 적발은 이제는 분홍빛 눈물을 얼굴로 흩뿌렸다. 볼 한 가운데를 연신 타고 흐르는 분홍빛 눈물이 흡사 동화와도 같았다.
러빙유의 소절은 애드립의 ‘그-대-를’이었다. 사랑의 세레나데와 애원 사이를 오가며 절규하는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목소리에서 돋아난 비수가 그녀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를 베어버릴 기세였다.
Mina’s Seduction. 오랜만의 오블이었고, 그간 보이지 않던 표정이 보이기에 신나서 그만 얼굴을 정말 열심히 봐버렸다. 그래서 얼굴만 동동.. 또 얼굴만 보고 싶다..
덧. ‘멍청한 놈’의 속삭임은 오늘도 이어졌다. 강세를 두는 대신 속삭이기로 한 걸까?
오늘은 ‘그녀’ 대신 난 ‘미나’를 사랑해가 되었다. 그날그날 바뀌려는 듯하다.
이예은 루시, How Do You Choose. 박자가 너무 빠른 탓에 늘 숨 가쁘게 시작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는데, 노래 직전의 마지막 대사를 구름처럼 띄우며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작을 이끌어냈다. 듣기에 산뜻하여 좋았다. 짝짝.
반헬싱의 성경책이 오케 피트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