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머리의 붉은 빛이 많이 빠졌다. 덕분에 은빛 감도는 적발이 되신 백작님. 공연 내내 신비롭게 아름다우셨고, The Longer I Live부터는 기가 막히게 어울렸다. 구부정한 허리, 비틀리는 걸음걸이, 희끗희끗하게 바랜 적발. 빛바랜 머리색마저도 그의 회한을 따라 400년의 세월만큼 퇴색한 것 같았다. 은적발의 머리색으로도 회한을 표현하는 그라니.. 참 서글프게도 아름다웠다.

 

Fresh Blood, 어제는 불타는 저‘녁’이었지. 오늘은 오랜만에 ‘끝~’ 없는 이 새벽의 포물선이 돌아왔다. 낮게 침잠하는 음성에 쾌감이. 

언젠가 다음 소절ㅡ불타는 저녁의 회오리와 합체하는 날도 오게 될까?

 

기차역, 연구 좀 하셔야겠다는 미나의 핀잔에 시선을 떨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400년 동안 연구한 건데..”

혼잣말치고는 컸다. 저도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손으로 입술을 틀어막았다.

“인정합니다.”

서둘러 화제를 전환하려는 노력과 함께.

 

Mina’s Seduction의 소절은 그댈 본 그 순간 차디찬 내 삶, ‘따’듯한 바람 불어와. ‘따’에 길고 그윽하게 들어간 강세에 흉성이 더해져 전에 없이 강해졌다. 늘 듣던 소리와 다른 울림에 깜짝.

 

트레인 시퀀스, 린지 미나의 박자에 그가 자신의 연기와 노래를 맞추어 주는 배려를 늘 목격하게 되는 넘버. 오늘은 관 속에서 미나를 찾는 연기까지도 차분하고 느릿느릿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정면 허공 어딘가에 있을 미나를 향하여 손을 뻗는 움직임이 그랬다.

‘듀엣’이란 이처럼 두 사람이 합을 맞추고 나누어가는 것임을 이렇게 매 순간의 그가 보여준다.

 

줄리아의 죽음. “난 미나를 사랑해.”의 혼란은 오늘도 이어졌다. ‘사랑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 되묻는 듯한 혼란의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신이시여.. 체력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