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수❣️ 임혜영❣️ 페어 삼연공❣️의 첫날❣️
고대한 오늘이었고 기대한 대로의 공연이었다. 아니, 피날레만큼은 상상 이상의 오늘이었다.
“정말 나와 함께 이 길을 갈 수 있겠어요?”
그의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있다 여겼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한 가닥의 눈물이 왼쪽 뺨을 가르며 떨구어졌다. 두 사람의 모습을 함께 보고 싶어 망원경을 들지 않은 맨눈이었는데도 보였다. 굵은 눈물이 마침 쏟아진 조명을 머금어 반짝였던 탓이다. 하얀 피부에 아프게 박힌 보석 같던 눈물이 조명의 각도에 따라 느릿느릿 점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눈물도,
3월 17일에 이어 머리가 아닌 가슴이 빚어낸 절규와 통곡의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도,
두 손으로 칼을 움켜쥐어가면서 너무나도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마저도 서두에 불과하게 만든 게 있었으니,
바로 최후의 소절이었다.
“부탁해요 제발, 내게 밤을 허락해요.”
그의 손에 잡혀 칼을 쥐게 된 그녀가 도리질하다 고개를 떨구었다. 상체를 잔뜩 웅크린 채로 힘을 주고 버티기를 시도했다. 그러면서도 그를 따라, 아니, 그와 함께 노래했다.
“사랑해요 그대.”
사랑한다고 전하며 그가 관으로 들어섰다.
사랑한다고 답하며 그녀는 버티려 했지만, 그 역시 완강했다. 잡아끄는 그의 힘을 그녀는 당해낼 수 없었다. 버티던 것도 잠시, 결국 그에게로 질질 끌려갔다. 끌려가는 걸음이 도축장을 앞에 둔 것마냥 심히 무거워 내가 그만 왈칵하고 말았다.
이제 이별의 문턱이었다. 곧 헤어져야만 하는데, 관 앞으로 끌려와서도 그녀가 버티려 들었다. 몸을 웅크린 채 한사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마지막인데.. 영영 헤어지기 전에 서로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봐야 할 텐데.. 내가 다 초조해지는 찰나였다.
“사랑해서 그댈 위해..”
그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뺨을 감싸 쥐려나 싶었다. 그래서 흥건한 눈물을 닦아주려는가 싶었건만. 뺨보다 조금 뒤, 귀 부근의 옆얼굴을 덥석 그러쥔 그가 힘을 주어 그녀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길을 따라 그녀의 얼굴이 이번만큼은 저항 없이 들렸다.
“내가”
눈을 맞추고, 희미하게 미소를 건네는 그의 눈썹이 미끄러졌다. 괜찮다고, 괜찮으니 얼굴을 보여달라고, 그녀를 안심시키면서 그가 아주 작게, 떨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으로 입술로 끊임없이 그녀를 어르면서, 청했다.
“떠날게요.”
그녀의 시선 안에서,
그녀를 시선에 담은 채로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남겨진 그녀는 여유가 없었다. 임혜영 미나는 특히나 더 그렇다. 촛불송에서 드라큘라를 찾는 데 여념이 없어 촛불을 끌 여유도 없고, 그의 죽음 앞에 무너진 후에는 눈송이를 올려다볼 여력도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옆도, 뒤도 없이 오직 드라큘라를 향하여 직진하는 듯한 인상을 주어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순간은 ‘신이시여’에서의 분노.
오늘은 she의 ‘신이시여’와 수미쌍관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격분한 음성이었다. 이를 악물고 하늘을 쏘아보며 악쓰는 얼굴에 왕자님이 겹쳐졌다. 슬펐고, 슬픈 만큼 좋았다.
그를 위하여 화내주는 단 한 사람이, 그가 평생토록 바랐던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이.
*
Fresh Blood, 흡혈에 앞서 침대 위의 조나단을 제 앞에 두고 엄포할 때. 삼연 들어 꼭 먹잇감을 감정하는 것처럼 조나단의 상체를 쓸어내리던 동작이 점점 정제되어 간다. 오늘은 왼팔로 쓸어내림과 동시에 오른팔을 하늘로 높이 들어 보였다. 마치 제의를 치르는 것처럼 엄숙하고 경건하게. 그래서 더욱 악역 같고 악랄해 보였던 건 안 비밀.
새로운 것 하나, 그리운 것 하나를 차례로 만난 윗비베이.
새로운 것은 “여기 위트비베이는 아주 ‘아름다운 곳’이라 들었는데, 과연 그런 것 같군요.”
늘 아주 매력적이었던 장소가 오늘은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그의 대사에 맞추어 임혜영 미나도 이곳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에요. 라고 대답하는 센스를 발휘해주었다.
그리운 동시에 익숙한 것은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요.” 오랜만에 도중에 끊기지 않고 온전한 문장으로 들을 수 있어 더욱 기뻤다.
She 의 평화로운 단 한 순간. 진실된 러브스토리의 도입부.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와 귀 기울이는 그녀가 몇 번이고 눈을 맞추고 옅게 웃었다. ‘교감’이라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At Last. 늘 그가 다가서고, 그가 어루만지는 넘버였지. 그녀들은 눈물은 흘릴지언정 그와의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하게 애쓰곤 했다. 그래서였다. 임혜영 미나가 그에게 붙들린 손을 뿌리치는 대신, 그의 손등 위로 이마를 묻을 듯이 웅크리며 우는 모습에 내 마음마저 철렁했던 것이.
이윽고 그녀가 고개를 들었을 땐 얼굴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녀의 왼뺨을 가로지른 눈물 위로 조심히 엄지를 가져다 댄 그가 그대로 동작을 멈추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듯이.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뺨에도 눈물 자국이 선연했다. 나란히 젖은 두 옆얼굴을 나 역시 시간의 흐름을 잊은 채로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미나가 무대 중앙을 가로지를 때였다. 무대 오른편에 멀찍이 남겨져 심장을 부여잡고 있던 그에게서 힘에 부친 숨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생으로 듣는 듯한 작지만 힘겨운 숨소리로 헐떡대기에 깜짝 놀랐어.
웨딩, 이예은 루시의 부케 조준이 어쩐 일로 빗나갔는데 그걸 그가 잡아냈다. 오른쪽 사선으로 꽤 멀리 오조준된 것을 상체를 재빨리 기울여 가뿐하게 캐치! 받아내느라 몸이 앞으로 쏠린 덕에 오늘도 앞머리가 앞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치명적이었던 찰나, 오늘도 대단히 아름다웠다.
루시의 죽음, 이어서 드라큘라와 미나의 독대. 오늘의 대사톤은 근래와는 다르게 매우 차분했다. 정점은 역시 ‘미-나.’ 17일에는 일갈이었던 것이 오늘은 고요한 부름에 가까웠다. 비교하여 나란히 들으면 좋겠다.
줄리아의 죽음 이후 그의 감정이 범람하는 지점이 평소보다 앞당겨졌다. 러빙유 리프라이즈가 아니었다. 오늘의 눈물은 그보다도 한 템포 빨랐다.
“난 미나를 사랑해..”
제 혼란을 문장으로 내뱉을 적이었다. 혼란을 따라 눈물도 함께 왔다. 왼쪽 뺨으로 한 가닥 떨구어진 눈물을 신호탄으로 그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울음을 삼키고, 콧물도 삼키고, 호흡마저 견디듯 삼키는 상체가 가쁘게 움직였다. 사라져가는 반헬싱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며, 채 뱉어내지 못한 울음을 삼키느라 일그러진 얼굴이 처량했다. 붉디붉어 한껏 화려한 착장으로 혼자된 그가 그래서 더욱 초라해 보였다.
비 오는 거리로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듯한 얼굴 위로 음악이 고요하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천천히 읊조리듯 그가 노래했다.
그댄 내 삶의 이유, 나를 살게 한 첫사랑..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17일과 대사도 동작도 같이 “역시.. 신은 공평하군요.”
17일 공연에서 처음 착용한 붉은 반지가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가 유별나게 크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1막에서만 착용하고 2막에서는 바꾸어 등장한 백작님을 발견. 섬세하셔라.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여기에서만 지내니까 어쩐지 세파에 휩싸이지 않고 드라큘라의 세상만 살아가는 듯한.. 안온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