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는 첫 염색. 다시 뿌리까지 핏빛이 된 머리칼, 자연히 돌아온 피땀눈물. 

 

오늘의 넘버는 러빙유, 단연코 러빙유. 이 노래가 끝나면 세상이 끝나는 건가 싶었다. 아니, 끝나야만 할 것 같았다.

울음이 샅샅이 깃든 노래였다. 동시에 범람하는 울음을 누르기 위해 한음도 놓치지 않고 또박또박 심혈을 기울인 노래였다. 전자만으로 또는 후자만으로도 가슴을 메이게 하는 그이건만 오늘은 전자와 후자가 경합하듯 하나의 넘버 안에서 빗발쳤다.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울면서도 그는 한 음절도 ‘서투루’ 흘려보내지 않았다. 마음의 파편 하나라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이라면 ‘서투루’ 전할 수 없노라는 각오가 엿보였다.

게다가 그 표정. 대체 그 표정은 뭐였을까? 애드립 구간 직전이었다. 간혹 그랬듯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넘기는데, 각오한 사람처럼 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붉게 물들어 얼핏 매섭게도 느껴지는 눈매가 결연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사정하듯 노래를 하는데, 음률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처창한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애원인 동시에 절규였다.

그야말로 비장한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Fresh Blood에서는 드디어. ‘끄읕’ 없는 이 새벽과 불타는 저 ‘녁’이 처음으로 만났다. ‘끄읕’의 포물선, 저녁처럼 매번 만날 수 있을까. 희망해본다.

 

윗비, 이렇↘️게나 화창한 날에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은 너무도 슬퍼 보이는 군요. 평소와 다르게 내린 음절이 새로웠다. 달뜬 설렘이 전해졌던 평소와는 달리 차분하고 신사적이었어. 

 

She, 아니 세상에. 십자가를 밀쳐 넘어뜨리는 것도 모자라 조각을 내버렸다. 💦💦 십자가가 흡사 신음을 하듯 파편 하나를 내뱉는데, 그 시각적 효과가 주는 긴장감이 엄청났다.

 

루시의 초대. 초대받아 오는 걸음 소리조차 멋있다. 뚜벅, 뚜벅, 뚜벅. 다가오는 걸음의 단위로 나의 설렘마저 증폭된다. 

 

Mina’s Seduction, 예상하지 못한 웃음의 포인트가 다발로 쏟아진 넘버.

일단 시작부, 그가 조정은 미나의 치맛자락을 밟고 있었다. ‘흐릿한 안개 속’으로 그녀가 그에게서 멀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뒤돌아 딱 한 걸음을 움직였을 뿐인데 치맛자락이 붙들려 제자리걸음을 하고 말았다. 밟힌 치마를 깨닫기까지의 1초 동안 계속하여 멀어지려는 미나의 헛수고에 그만 웃음이 한 번, 뒤이어 뒷걸음질하며 치마를 풀어주는 그 때문에 웃음이 또 한 번 났다. 

대미는 ‘내 피는 그대 피’였다. 두 사람, 평소보다 훨씬 멀찍이서 거리를 유지한 채 손만 마주 대는 게 아닌가. 미나의 유혹이 있은 이래 이런 거리감은 처음이었다.

 

이어서는 침실. 양 손의 소매가 모두 걸려 코트가 수월하게 벗겨지지 않았다. 엉킨 실타래처럼 소매에서 제대로 뭉친 코트에 놀람도 잠시. 걸린 소매를 절도 있게 탁! 쳐올리는 것으로 그가 한 번에 두 손을 빼냈다. 일시에 쳐올린 그 팔의 동작이 몹시 멋스러우면서도 절도 있어, 상황의 긴장감마저 더해주었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것.

‘돌아서기엔 너무 멀리 왔어.’ 그녀를 일으켜 세우는 그가 어쩐 일로 상체를 둥글게 말아 수그렸다. 깊이 허리를 숙여가며 그녀를 마중하는 그는 또 처음이었다.

 

트레인 시퀀스, 미나와의 시간을 침범당한 오늘의 그는.. 관 속에서 눈을 감지 못하고 어둠 속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는 어쩐지 속상해 보였다. 분노라기에는 눈썹이 꽤 처져 있었고, 입술 또한 시무룩했다. 일견 상처받은 얼굴처럼도 보여서 그 볼을 쓸어주고 싶었다.

 

The Longer I Live, 내 어둠 스러질 ‘까’는 쭉 이렇게 곧게 뻗어 올리려는 듯하다. 소년미와 함께, 그가 간직한 올곧은 성품이 느껴지는 듯한 소리가 좋다.

마지막 절정에 앞서는 무엇을 본 걸까? 정면의 벽 어딘가를 지긋이 응시하는 그의 시선을 따라가 만났던 그림자, 자신의 그림자를 본 게 맞을까? 자신의 그림자에서 그는 무엇을 봤을까? 사람? 괴물? 알 수가 없었다.

 

러빙유 리프라이즈. 그댄 내 삶의 이유, 나를 살게 한 ‘첫사랑.’ 

두 손을 가슴 위에서 조심스럽게 맞잡은 채로 그가 노래했다. 마치 기도하듯이.. 

신을 저주하여 저주받은 그가 아닌가. 신에게 부정당한 존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위하여 그가 기도했다. 유난히 가냘프고 연한 음성이었다. 유달리 애처로웠다. 그가 너무 작고 약한 존재처럼 보였어.

 

Finale의 하이라이트. ‘차가운 암흑 속에 저주받은 내 인생’으로 시작되는 노래들을 대단히 오랜만에 전.부. 절규로 덧칠했다. 모든 문장 모든 구절을 긁었다. 자유를 줘요-까지 터트려낸 그는 기진맥진한 얼굴이었다. 동시에 전부를 쏟아냈기에 개운한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나는, 듣는 나는 내내 고통 속에 있었다.

그의 노래가 절규가 되면 괴롭다. 

드라큘라가 가여워서 힘겹고, 백 퍼센트를 넘어 이백 퍼센트 삼백 퍼센트로까지 치솟는 그의 전력이 이 세상 너머의 것이라 버겁다.

전력 그 이상을 다하는 그를 볼 때마다 극에서부터 이탈되어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나를 본다.

이렇게까지 무대를 사랑하는 이 사람에게 무대가 오직 행복만 되어주기를,

하고.

 

커튼콜의 그가 피로는 하되 개운한 얼굴로 맑게 웃고 있었기에, 오늘의 공연도 늘 그랬듯 아름다웠노라 적는다.

 

 

덧. 기차역의 애드립은 “신은 역시 공평하군요.”

드물게 만난 개사 세트. 

She, ‘그냥’ 미치도록 널 저주해!

At Last, 그댈 ‘향한’ 우리 얘기.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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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3.28

아! 이건 따로 적어두고 합치지를 않았네. 프블, 침대에서 성큼 내려온 그가 '손으로' 직접 롱코트의 모자를 끌어내렸다. 홱 소리 나도록. 그 동작이 Vol.3에서 직접 가발을 잡아 내던지던 모습과 겹쳐져 더할 나위 없이 짜릿했다. 가능하면 매번 보고 싶을 만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