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연곡이 좋았다. 삼연곡에 의한, 삼연곡을 위한 공연이었다.
시작은 산만했다. 배우들의 자잘한 대사 실수가 계속 이어졌고, 객석도 어수선했다. 음향은 커졌으나 적잖이 울렸다.
이 모든 혼잡함의 터닝포인트가 She 였다. 기차역의 애드립에서 꺄르륵 터져 나온 웃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그가 십자가에 칼을 찔러넣고 무너지듯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는 압도당하는 객석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의 영혼을 담은 절규가 객석의 숨소리마저 지워버린 광경이 어떤 장관이었는지. 영혼의 연기와 몰입하는 객석을 무대 안팎에서 동시에 느끼며 소름이 돋았다.
러빙유는 개인적인 감회를 더한 절정이었다. 트레인 시퀀스 디테일이 3회 만에 돌아왔으므로! 5월 3일에는 시아준수만 손을 뻗고 임혜영 미나는 다가서기만 했지. 오늘은 두 사람이 함께했다. 나란히 서로를 향해 손을 뻗으며, 닿을 듯 말 듯 하다 끝내 엇갈리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안타까운 엇갈림이 시각화하여 다가오는 감각이란 실로 대단하여, 이어지는 웨딩에서 새 신부의 얼굴이 그늘진 것까지도 오늘은 슬펐다. 그를 두고 떠난 그녀가 절대 웃을 수는 없으리라고,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엄청난 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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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부음감님. 부음감님과의 공연에서 좋아하는 건 피날레ㅡ자유를 ‘줘요’의 호흡. 세상의 끝까지 가는 호흡이 딱 그의 숨이 멎기 직전에야 끝을 본다. 이 절체절명함이 참 좋아.
드라큘라 성의 백작님. 대사를 살짝 씹으셨다. 덕분에 바로 뒤이어진 문장의 억양이 리뉴얼되었다. 처음 듣는 “모두 죽었죠!” 분위기를 쇄신하고 이목을 집중시킬 겸 첫 음절에서부터 강세를 넣은 것. 아주 신선했다.
Fresh Blood. ‘나를 두려워하는!’에 덧붙이는 숨소리를 오늘도 들려주었다. 즉흥이 아니라 의도된 변주였단 말인가. 이렇게나 신기하고 이토록 새로운 추임새라니, 두 번 들어도 놀랍다.
이 숨소리와 세트처럼 함께 온 추억의 추임새도 있었으니: ‘다시 찾은 내 힘! 므아아’
그리고 거의 온 얼굴로 절규했던 ‘날! 거부 못 해!’ 날! 을 꽝 박아넣을 때는 그의 두 눈이 쏟아져 내리는 줄로만 알았다. 안광으로도 연기하시는 백작님, 머시스시세요.
Lucy & Dracula 1. 오늘도 쉼표 없이 강하고 빠르게 문장을 한 덩이로 내뱉었다.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 그것도 꽤 강한 축에 속했는데, 예고장이었다. 이어지는 대화로 두 사람, 오늘 아예 싸움을 했다. 강대강으로 치받는데 치솟기만 할 뿐 둘 다 양보가 없었다. 이 만남의 결말을 아는 내가 다 조마조마했을 만큼.
기차역. 제가 어떻게 웃어드리면 될까요? 질문은 3일과 같았으나 묻는 음성이 달랐다. 여기 대체 어느 구석에서 웃어야 한단 건지 도통 모르겠으니, 어디 한번 말해보라는 뉘앙스가 기저에 깔린 물음이었다.
다소간의 불신이 섞인 그녀의 눈빛에도 개의치 않고 그가 말했다. 두 손을 가슴 높이에서 차르륵 굴리며, “꺄-륵..”
상상을 초월하는 대답에 미나의 두 눈이 커졌다. 귀를 의심하며 그녀가 갸웃하는데, 굴하지 않고 그가 재차 말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무리수였던 모양이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동자만 굴렸고, 살짝 벌어진 입술은 아무 대꾸도 없었다.
잠시 그녀의 동태를 살폈지만, 결국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그가 먼저 꼬리를 내렸다.
“..사실 저도 언제 웃어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거든요.”
줄리아의 죽음. 넌 사랑을 모른다는 힐난에 그가 떨구었던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장 반헬싱을 노려보는 얼굴에 반발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반헬싱이 끌어안은 줄리아에게로 시선이 닿는 순간 뭐라고 쏘아붙일 것만 같던 입술이 꾹 다물렸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거리 한 번 하지 못하고 반헬싱을 보내주는 얼굴에 혼란과 낭패감이 가득했다.
이어지는 러빙유 리프라이즈가 참 가냘팠다. 성안 어딘가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미나를 자연히 생각하게 될 만큼. 그녀가 듣고는 절대 외면할 수 없을 만큼 처연하고 진실된 리프라이즈였다.
이렇게 쓰니 꼭 러빙유에서 시작하여 러빙유로 맺는 오늘의 공연이었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