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의 아마데와 모차르트

김준수, 이시목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안아달라며 그가 두 팔을 벌렸다. 울음 깃든 숨을 쌕쌕 내뱉으며 아마데를 기다렸다. 작은 아이가 다가와 그의 품을 채우자 비로소 온기를 머금은 듯이 안도감을 터트려내던 숨소리를 잊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고 안겼는데, 그 작은 온기에 절박하게 매달렸건만, 마지막 남은 구원이라 믿었던 것이 자신을 끝장낼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작은 손이 조르는 대로 조이고, 

어린아이가 짓누르는 대로 몰려야 했다.

 

가까스로 아마데를 떨쳐낸 오늘의 ‘혼란’은 흡사 착란에 가까웠다.

착란 속에서 그가 제 가슴에 비수로 박힌 말들을 닥치는 대로 토해냈다. 그러다가도 아마데에게로 달려가 외쳤다. 

악마, 악마!

파들파들 떨면서도 잔뜩 날을 세운 검지로 그가 정확히 아마데를 가리켰다. 제가 어디 어느 곳을 걷고 있는 줄은 모르면서, 아마데에게 향할 때만큼은 목표물을 똑바로 직시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마데의 존재감’이 몸집을 부풀렸다.

아이는 그의 혼란을 삼키며 자랐다.

한 계단씩 그가 착란의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아이가 그 뒤를 쫓으며 무섭게 성장했다. 바르작대는 그의 몸짓이 필사적일수록 아마데의 존재감은 커져 갔다. 그의 영감과 조우하여 음악을 빚었던 아이는 이제는 그의 공포를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제 분신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피해 벼랑 끝까지 몰린 그가 덜덜 떨었다. 한껏 웅크린 몸은 이미 아이보다도 작았다.

 

작디작았던 아이가 그를 제 그림자 속으로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것도 가능해질 즈음 ‘황금별 리프라이즈’가 시작되었다.

 

황금별의 다독임이 부드럽게 흘렀다. 익숙한 목소리, 기억 속의 목소리. 어두운 곳에 스며든 볕을 좇아 그가 웅크렸던 몸을 조심스레 세웠다. 아이와 황금별을 번갈아 보는 동안 울음 또한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남작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찬란한 포부를 품었던 그때처럼 그의 얼굴은 피어나지 않았다.

상냥한 목소리에서 잔인한 운명을 예감한 탓이었다.

그가 자유를 좇는 동안 방기되었다 여긴 재능이 그를 옥죄려 하고 있었다.

‘황금별’을 찾는다는 명목하에.

그랬다. 황금별 리프라이즈마저도 아마데의 안배였다. 

이를 깨달은 그의 울음에서 소리가 소거되었다. 소리 없는 의문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날 따라오는 그림자 언젠가 날 죽이고 말 거야.

진실로 이 운명 피해서 살 수 있을까.

 


 

7월 18일의 혼란

완급 조절의 신기원

 

혼란의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하는 그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짓씹어 내뱉는 구절이 있었다.

그건 아마 여러 기억 중에서도 가장 아프게 남았을 말.

“천재는 좀 예민하거든!”

인격체로서는 고사하고, 아들을 제 부속품 정도로 여길 뿐인 아버지의 말도 있었다.

“너는 내가 만들었다!”

몰아치는 속도가 놀랍기는 해도 이해 가능한 범위였다. 파편처럼 튀어 나가는 고통 또한 타당했다. 충격은 바로 다음 문장이 주었다.

염려하며 다가온 콘스탄체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그가 웃었다.

매서운 눈은 그대로인 채 입꼬리만 올려서는,

“널 사랑한다~”

혀끝을 다디달게 말아 다정하게 늘어뜨린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는 얼굴은 기억 속의 웃는 부정을 재현해내고 있었다.

‘사랑한다’

이제껏 들은 중 가장 다정한 목소리였다. 착란의 와중에서 피워낸 단 한 번의 온기. 예상치 못한 다정함은 짚은 잔상을 남겼다.

그의 노래가 점차로 비명이 되어갈 때에도,

네 엄마를 죽게 했다!

절대로

용서 못 해!

서러운 울음으로 사그라질 때에도

악마, 악마, 악마

음성에 담은 감정 하나가 끊이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널 사랑한다.’

황금별보다도 필요했을 단 한 마디.

그러나 이제는 그 누구도 그에게 줄 수 없는 말. 

황금별을 바라보며 반짝였던 눈으로 눈물을 쏟으며, 누구보다 그 자신이 절감하고 있었다.

 

기적은 끝났고 이제는 대가를 치를 때라는 것을.

 


 

7월 24일의 도망

스쳐 가는 기억들, 추억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잔인한 파노라마, 악몽 같은 제 분신 아마데, 귀를 틀어막아서라도 멈추고 싶은 황금별.

그 끝에서 그가 도망쳤다.

비척비척 걷다가, 따라오는 아마데를 흘긋 보고는 서둘러 몸을 뺐다. 어둠이 자신을 삼켜주기를 바라며 두 번 뒤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타다닥, 황망하고 빠른 걸음.

이런 식의 도망은 처음이었다.

 


 

8월 8일의 고갯짓

비탈길에 놓인 혼란이었다. 이렇게 위태롭고 칼에 벼린 듯 날이 선 혼란이라니. 누구라도 단칼에 베어버릴 듯한 광포함이었다. 재능을 향하여 삿대질하고, 아내의 목을 조르고, 나아가 손까지 치켜드는 기세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그 자신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끝까지 내달린 폭주를 막아선 건 자멸하는 심신이었다. 

 

눈앞으로 재차 펼쳐지는 황금별도 돌파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 옛날, 금은보화를 발견한 듯 따사롭게 반짝였던 바로 그 얼굴로 그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하게 제 등을 떠미는 음성을 향하여.

“황금별을 찾길 원하면 그 별을 찾아 떠나야 해.”

잔인한 가사와 거부하는 고갯짓. 별이 낳은 천재가 그 무게에 짓눌려 제 빛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8월 12일의 모두 다 악마야

“악마, 악마야, 악마야! 다 악마야..”

모두 다 악마, 악한 늑대 뱀들. 초연의 그때 그 가사처럼 모든 것을 폭로하고 싶었던 것만 같은 마지막의 ‘다 악마야’였는데. 제 풀에 지쳐 무너지느라, 아마데에게 소스라치느라, 끝맺지 못했다. 폭로조차도 책망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였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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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0.06.28

내 운명에서 한 문장 더 인용하여 진짜로 완성. 내 운명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