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네임마다 붙은 ‘준쮸’를 듣다 못한 그가 말했다. 쑥스러움과 민망함으로 한껏 동그랗게 말린 몸은 테이블 아래로 사라지기 직전이었다.
“준쮸 하지 마세요.”
이 말에는 늘 전제가 있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준쮸 하도록 하자.”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 절대적인 금지가 아니라 ‘우리끼리’라는 단서가 붙는다.
콘서트에서, 팬미팅에서, 또 언제라도 그와 팬들만이 있는 곳에서는 준쮸가 다 뭔가. 요정이라는 단어에 항상 손사래를 치면서도 구절을 넘길 때마다 요정이 등장하는 편지를 매번 곧이곧대로 읽어주는 사람이다. 힘이 되어 주는 노래를 부탁하자 스스로 ‘준쮸 있잖아요’ 응원가를 선사하는 이다. 우리끼리만 있을 때 우리 사이에 ‘안 된다’는 있어 본 역사가 없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우리끼리’라는 단어가 간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만 허락되는 세계가 무조건에 가까운 수용 속에서 얼마나 상냥하고 다정한지, 어느 만큼 행복한지를 잘 아니까.
그가 “우리끼리 있을 때만 하자”는 달차근한 말로 우리 세계를 상기시켜줄 때마다 간지러워지는 마음이 번번이 구름 위로 날아오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이 말이 계속 듣고 싶어서 소위 ‘외부’에서도 자꾸만 준쮸라 부르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시아준수와, 우리끼리. 이 얼마나 듣기에 행복하며 가슴 부풀게 하는 말인지 시아준수라는 낙원을 경험해보았다면 결코 모를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