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문자를 받았다. 안내되는 내용이 눈에 익어 낯설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한 공연 취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대체 몇 번이나 받았더라. 셈하려 드는 생각을 가르며 심장이 무겁게 뛰었다. 그가 무탈해야 할 텐데.. 괜찮을 거야, 그럴 거다. 결단코 그래야 해. 의식적으로 휴대폰에서 눈을 떼고 수위를 넘어서는 걱정을 쳐냈다. 사고를 정돈해보지만 검질기게 따라붙는 탈력감마저 어찌할 수는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중얼거렸다. 올해에 다시 이 문자를 받게 될 줄이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무대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버드맨이었다. 버드맨을 노래하던 시아준수와, 그 곡을 소개하던 시아준수. 종연 후에 내내 곱새겼던 얼굴이 별안간에 더욱 선명해졌다. 

 

버드맨에 대한 대답을 오늘 전하려 했었다. 어제는 미처 갈무리하지 못하여 내놓지 못한 마음을 오늘이나마 띄우려 했다. 노래하는 얼굴을 향하여 오늘에라도 즉답하려 했다.

 

공연 속의 그가 생생해질수록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는 나와는 달랐다. 이튿날의 기회를 놓치고 망연한 나와 달리 그는 진작에 자기 마음 표현에 사활을 건 사람처럼 무대에 섰다. 설령 어제로 단 하루의 공연이 된다 해도 결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딱 셋뿐인 VCR 영상의 주제가 한 가지로 일맥상통한 것부터 그랬다. 가수 겸 배우로서 그의 성취를 으레 선전하곤 했던 내용도, 뮤지컬의 세계관을 담아내는 멋들어진 영상도 이번에는 없었다. 지난 온라인 콘서트에서 핫데뷔한 MC샤의 깜찍한 후속 차트도 물리쳤다. 오로지 그의 마음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노래 대신 전하는 편지, 춤추는 나무의 고백, 여정의 동반인에게 전하는 맹약과도 같던 문장ㅡ언제라도 어디라도 그대 곁에 함께.. VCR의 하나하나가 전부 팬들에게 전하는 그의 마음이었다.

 

마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언어로 표현하고자 작정한 사람처럼, 천금 같은 마음을 꾸러미 채로 들고 그가 왔었다.

자신의 무대로,

‘일단 여러분들과의 약속이고, 하기로 했으니까’

우리의 연말로,

‘우리는 반드시 만나야 한다’ 면서.

 

버드맨은 내내 주기만 하던 사람이 스스로에게 허락한 단 한 번의 청이었다. 전에 없던 틈이자 투정이었다. 노래로 말하는 사람이 가장 자기 자신다운 방법으로 표현해 보인 내심이었다.

 

아, 그 아물지 않은 속마음 앞에서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굴었는지.

 

17년 만에야 그가 자신의 젖은 어깨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나는 그의 어깨가 내 눈앞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젖어있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슬퍼하느라 바빴다. 정작 그 어깨를 보여준 그의 마음이 바랐을 위로를 전해주지 못했다. 옅은 웃음을 견지한 얼굴이 궁극적으로는 ‘사랑받고 싶다’고 희구하고 있음도 바로 보지 못했다. 변해가는 과정의 쓸쓸함에 대하여 그가 말하고, 그것이 그의 마음에 파문을 남겼었더라는 사실이 먼저 심장에 못을 박아서 그저 그게 못 견디도록 슬펐다….

 

만회하고 싶었다. 노래가 한 꺼풀씩 가사를 입어갈수록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를. 어제는 처음이고, 어리숙한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주제라 조금 놀랐다고. 살짝 따끔해서, 그래서 눈물이 조금 났고, 내 눈물을 잠깐만 수습한다는 게 그만 오빠의 눈물을 제대로 안아주지 못한 셈이 되었다고.

미안하다, 사랑한다. 부족했던 어제의 몫만큼 오늘 더 많이 말해주고, 다독여주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해주려 했다.

마음에 박힌 가시 하나를 소탈히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 사이의 거리를 훌쩍 좁혀온 그를 이튿날에라도 깊이 안아주고 싶었다. 그가 팬들을 믿고 이만큼 표현해준 것에 고맙다 전하고 싶었고, 그 믿음에 부응하고 싶었다.

첫 번째 버드맨을 허망하게 보내고 참 수도 없이 생각했다. 새벽이 또렷해질수록 미안해서 초조했고, 제대로 사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새 아침이 와서 당신의 새로운 무대가 오면, 아낌없이 품어주어야지. 멀리 보는 날개를 쓰다듬어 주어야지. 조금의 틈도 없이 답해줄 거야. 그럴 것이다.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오늘의 무대가 남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정말, 다행이다. 그가 원했을 만큼, 내가 주고 싶은 만큼 원 없이 주어야지. 

그래야지.

그랬었다.

 

수신할 무대를 잃은 마음은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26일의 당신이 받아야 했을 온당한 몫과 27일의 당신에게 주고 싶었던 마음이 더는 전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아마 ‘버드맨’에게 전하게 될 기회가 다시 오지는 않겠지. 실기한 어리석음도 마음에 자국을 남길 것이다. 자국으로만 남게 된 대답이 다시 눈물이 되려는 것을 붙들었다. 부채감이 되려는 마음 또한 다잡았다. 그가 원하지 않을 것이었다. 표현하기를 선택해준 그의 마음에 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해주는 이 불가해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사람에게 그럴 수는 없다.

 

대신 계속 사랑해갈 것이다. 지극히 자기 자신다운 방법으로 ‘사랑받고 싶다’ 청해온 그에게 가장 알맞고 가장 따듯한 형태의 사랑을 되돌려줄 것이다. 잠시 지체했으니 그만큼은 더 시끄러워야 하겠지. 당신이 숨을 참고 눈을 감고 귀를 닫아도 들릴 만큼 야단법석을 떨어도 좋으리라. 최소한 높이 나는 곳에서나 깊은 바다에서나 들려야 할 것이다. 고백 한 번에 경탄 한 움큼, 안부 한 번에 사랑 이만큼씩 겹겹이 쌓아 결코 모를 수 없어야 하리라. 

 

생각해보면 그간 알맞지 않게 정숙했다.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당신을 만난 것 자체가 요란할 일이었다.

우연한 것도 당연한 것도 아닌 그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기적을 만났으니 ‘나무’는 아끼지 않을 것이다. 그늘을 드리우는 너른 잎도, 바람을 막아주는 꼿꼿한 기둥도 전부 당신의 것이다.

처음과 같이 언제라도 어디에서라도 당신이 곧 내 행복의 원동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