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음으로 바스러진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이 비극의 정점이라 여겼다. 미나로 투신한 듯한 조정은 씨의 눈물과 다른 누구 아닌 김준수의 드라큘라가 빚은 사연 첫 피날레의 마무리로 더없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종장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의 쐐기는 관 속으로 침잠해가는 고통 어린 육신에 있었다.
Loving you keeps me alive Rep.에서 퀸시들에게 쫓기면서도 옷자락을 꽃잎처럼 흐트러트리는 미학적인 생명체가, 인간을 압도하는 위력을 품위 삼아 휘두르는 이 아름다운 존재가, 제 두 팔조차 가누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처박히는 장면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볼품없이 함몰된 육신에서 그나마 생의 기력이 남은 두 팔이 엉거주춤 벌려진 채로 바들바들 떨었다. 성경에 닿아 타들어 가던 루시처럼, 그가 바르작댔다. 가까스로 관 위에 걸쳐진 팔을 어둠이 집어삼킬 때까지 그는 생의 마지막 내도록 고통 앞에서 초라하게 몸부림쳤다.
죽음의 경계에서도 늘 두 팔을 가슴 위에 곱게 포개곤 하던 예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형상의 파괴력은 컸다.
어떻게, 그가, 이 세상 모든 저주받은 것들의 위에 선 그가. 그저 사랑만을 위했다는 이유 하나로 최소한의 품위조차 지키지 못한 채 존재 자체가 소거되어야 하나.
충격이, 분노가, 슬픔과 억분함이 차례로 왔다.
비탄했다.
분개했고,
불가해했다.
설풍처럼 뒤얽히는 감정들이 맹렬하게 솟구쳤다. 소화가 버거워 섣불리 토해내지 못하고 삼키니 종내에는 애원 같은 기도가 남았다.
일부는 재가 되고 일부는 눈으로 흩날렸을 그에게 아직 그의 신이 있다면 부디, 기도인지 애원인지 모를 이 마지막 울음을 들어주기를.
신이시여 그가 가엾지 않나요. 오직 사랑만을 위한 그를 용서해요.
이 기도의 발신인이 미나인지 나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
좋은 공연이었고, 좋은 것 이상으로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살아서 숨을 쉬는 드라큘라와 미나를 보았다. 그 사랑은 위태롭고 애달팠으며, 진실되었다. 이것이 재현 가능한 연기인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이 ‘진짜’였다.
두 혼신이 어우러진 공연의 최종장, 피날레는 당연하게도 좋은 것 중에서도 가장 좋은 것이 되었다. 피날레 내내 목놓아 울던 조정은 미나와 울음을 입안으로 깨물어 삼켜내던 김준수 드라큘라. 그녀의 통곡과 그의 소리 없는 눈물이 만나 필연처럼 빚은 고통 속의 가여운 죽음. 이것이 완성이 아니라면 달리 어떤 피날레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비극의 목격자가 될 수 있게 해준 두 사람에게 감사한다.
2021 뮤지컬 드라큘라 사연 김준수 회차 공연 관람 후기
일시: 2021년 5월 23일 (일) 오후 2시
캐스트: 김준수(XIA∙시아준수∙샤큘), 조정은, 강태을, 선민, 백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