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e. 불현듯 두 사람을 함께 보았다. 보통은 기둥 사이에서 빠져나와 드러난 초상화를 보고 시름하는 그에게 두 눈의 초점을 모두 맞추었었는데, 오늘따라 두 사람이 함께 보였다. 

미나가 이 그림을 보았겠구나.. 수란한 미간으로 그가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 동안,

“운명을 피해 왜 싸웠는지 나 이제 그대 앞에 있죠.”

모든 안개를 걷어낸 미나가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늘 그가 먼저 바라보고, 그녀는 잠시 돌아봐 주었던 시간들을 지나와 이번에는 그녀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실의하여 푹 꺼트렸던 고개를 들어 자신을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기다리는 것도 먼저 바라보는 것도 그의 몫이었는데 피날레에서 처음으로. 

그녀가, 그를. 

마침내, 이제서야, 그가 그녀를 떠날 각오를 한 뒤에야.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는 방향을 향해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그래서 두 사람의 시선이 드디어 만난 순간. 

세 사람 몫의 눈물의 피날레가 본격적인 막을 올렸다.

 

정점은 음절 하나에서 왔다. 피날레와 같이 긴장이 끈이 팽팽하게 당겨진 넘버에서는 무엇 하나라도 기존의 것과 달라지면 그 여파가 엄청난 법이건만. 바로 지난주에 대사의 어미를 바꾸어(당신뿐이니까, 당신뿐이야) 충격을 주더니 오늘은 노래였다. 

글쎄, 노래에서.. ‘이런 삶 이런 인↗︎생’이라니. 흡사 비명처럼 소스라쳐 올라가는 ‘인↗︎생’의 처절함을 어떤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대사로 주는 변주가 방아쇠를 당긴 것과 같다면 노래로 주는 변주는 아예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단 한 음절의 마법, 그것으로 이룩한 피날레였다.

 

*

 

Jonathan’s Arrival. “유감이군요”의 첫음절이 높았다. 평소 높낮이의 진폭이 크지 않은 문장이었던지라 귀가 쫑긋. 오늘따라 시작점을 높게 찍은 ‘유’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오는 문장이 신선했다.

 

Lucy & Dracula 1. ‘이리 와요, 내 사랑’에 낚인 뜻밖의 먹잇감 루시. 살짝 입맛이 돌아 흡혈할 뻔하지만 끝내 잘 참는 드라큘라는 항상 생각하지만 대견하다. 그의 말대로 ‘그래도 좀 착한’ 뱀파이어가 틀림없어요. 드라큘라 찰나의 번뇌를 표정과 몸짓으로 전부 전해주는 시아준수는 봐도 봐도 좋고요.

 

“당신 또한 날 잘 알죠”의 고양감도 이어지고 있군요. 드라큘라 성에서 미나 머레이와 처음 만났을 때, 석찬에서 많은 얘기 나눠보자며 열띤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성마르게 굴던 모습과 나란하다. 400년을 간직해왔으면서, 엘리자벳사 즉 미나의 앞에서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이 내비칠 법한 서툰 열정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순정.. 이런 사랑이 또 어디에 있겠나요. 

 

She. 촉촉했던 오늘의 노래. 특히 공주님이 등장할 무렵부터ㅡ“자, 이런 얘기 속엔 빠질 수 없는 한 아름다운 공주님”ㅡ목소리가 시폰과 같이 다정하게 하늘거려서 듣는 사람을 먹먹하게 했다. 언제라도 어디라도 그대 곁에 함께하고자 맹약하였으나 이제는 추억할 수밖에 없는 아득한 시절들. 그리움과 시름이 노랫말에 번갈아 드리워졌다.

 

엘리자벳사의 죽음 후, 일전에 제단의 잔들을 밀치다 그중 하나가 제단 밖으로 내팽개쳐진 적이 있었지. 그걸 의식하는지 이제 잔들을 전처럼 홱 밀쳐내지 않는다. 한 방향으로 일제히 밀어두고 그 상태에서 잠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잔들을 고정해두는 느낌을 받았다. She의 하이라이트, 곧 급박한 상황에서 잔들을 진정시키는 시아준수라니. 귀여웠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것도 잊은 채로 시작되었던 오늘의 Loving You Keeps Me Alive. 

무릎 꿇은 모습 그대로, 

“당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와요.” 

제 앞의 텅 빈 공간을 두 팔로 가리키며 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덩그러니 빈 자리를 한 아름 보듬듯이 두 팔을 넓게 벌려서. ‘당신의 자리’가 바로 여기에 있노라, 제발 알아달라며 애원하는 몸짓에는 어떤 강제력도 없이 그저 슬픔만이 넘쳐흘러서 그게 몹시 가여웠다. It's Over에서 인간들을 곤죽내며 으하하하 날카롭게 웃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연함. 미나 앞에 서면 작고 가여운 드라큘라..

 

마지막으로 그림자 대화. 4연 들어서는 자주 촉촉하다. 일은 본인이 쳐놓고 자기가 가장 처연한 뱀파이어야. 오늘도 풀 죽어 시무룩한 음성이라, 안쓰러움과 함께 귀여워 들끓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꼬리 내린 강아지처럼 처연은 한데 동시에 따박따박 항변을 잊지 않는 그가 어떻게 귀엽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다 책망하기만 하고 마음은 몰라주는 미나에게 울컥했는지 “난 그저 우리가 예전처럼! 행복해지길 바랄 뿐이에요”라는데 ‘행복!’의 발음이 왈칵 쏟아지지 뭔가. 강하기보다는 울렁울렁 촉촉한 말투가 애틋하면서도 정말이지 버림받은 강아지 같았다.

 

그밖에 Life After Life의 부드러이 흘렀던 ‘갈증을 채워~’, It's Over에서 ‘절대’ 날 이길 수 없어의 강세, Train Sequence의 저-주 못! 하리까지. 소소하게 좋아하는 순간들을 많이 만나서 기뻤다.

 

참 오늘 총 세 번의 개사 중 The Longer I Live, 왜 이제 와서 방향을 잃었을까 ‘세상 아픔에 모든 걸 버린 채’는 매우 그럴듯하였습니다. 티 없이 맑은 몬스터 드라큘라만큼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