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사연, 김준수-조정은의 삼연곡은 늘 역사를 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러빙유였다. 

 

오늘의 도입부, 영원을 새겨 공들인 노래였다 하면 알맞을까. 울음소리 한 번 섞지 않고 부드럽게 수놓는 소리가 티 하나 없이 고왔다. 또한 어찌나 섬세하던지. 사랑의 세레나데라 그가 말했지.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가 되어서도 400년간 심장 깊은 곳에 묻어두고 지켜온 것ㅡ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반짝이고 가장 투명한 조각들ㅡ곧 그녀를 향한 사랑이 청아하고도 아름답게 노래로 분하고 있었다. 

 

온유하며 서정적인 목소리. 프레시 블러드의 포식자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게 여린 어깨. 이런 그를 어떻게 돌아봐 주지 않을 수 있나. 안타까움이 차올라 미나를 흘긋이니,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조정은 미나가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얼굴로 버텨내고 있었다.

 

물 흐르는 듯한 그 조화로움에 심장이 뻐근해졌다. 고개를 돌리면 그녀의 눈물이, 시선을 옮기면 그의 감정이 내게로 밀려 들어왔다. 도입부에서 이미 완결지어버리다시피 한 농익은 감정선이었다. 차마 항거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다하여 좇을 수밖에는. 

 

*

 

“어서 오시죠. 기다리고 있었습..”

노백작님이 미나 머레이를 돌아보는 첫 순간, 문득 미나와 초상화가 함께 나의 시선 안에 들어왔다. 아.. 그제야 깨달은 것 하나. 노백작님은 항상 미나와 엘리자벳사를 일직선으로 나란히 맞닥뜨리셨겠구나. 갑자기 나타나 엘리자벳사 초상화 앞에 오뚝 선 그녀를 마주해왔겠구나. 어쩐지 왈칵하게 되었다. 

그러니 조나단이 아무리 뚜벅뚜벅 큰 소리로 발을 울리며 올라와도 두 사람의 세계를 깨뜨릴 수 있을 리가. 고요한 성 가득 발걸음 소리가 크게도 울렸건만 미동도 없이 서로만을 응시하던 두 사람. 이미 영원으로 떠나버린 것 같은 첫 만남이었다. 

 

Fresh Blood에서는 살랑살랑 들어온 자잘한 변주들. 나를 알고 있는! 의 강세, 기나긴 세월 끝!에!의 약한 스타카토. 불타는 저의 예의 용솟음.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귀여움을 목격했다. 오른손 장갑이 한 번에 빠지지 않고 애를 먹인 탓에 바빠지는 왼손을 보았지. 다급하게 힘이 들어가는 손동작에 눈이 간질간질. 

 

윗비. 왕자님의 기약하는 문장이 조금 짧아졌다. 

“꼭 만나게 될 겁니다.”

단어 하나 (다시) 빠졌을 뿐인데 이렇게 새로울 수가. 어쩐지 더 필연을 기약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기분 탓일까? 

 

Lucy & Dracula 1. “당신 또한 날 잘 알죠”는 이제는 뭉쳐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피가 끓는다. 들끓는 열망이 꼭 화산의 분화구와도 같다. 소용돌이치는 격렬함마저 느꼈어요.

 

She에서 이미지적으로 인상 깊었던 순간은 제단 옆의 십자가를 쾅 박아 넘어트린 후에, 흡사 슬라이딩하듯 무릎으로 미끄러져 칼을 움켜쥐었던 모습에. 얼마나 매끄럽고 유려하던지, 그렇게 그려진 그림 같았다.

 

At Last. 오른손 소매가 she에서부터 풀려있었다. 십자가를 찌를 때도 마른 손목이 두 눈에 들어오더니, 앳 라스트에선..  미나의 볼을 감싸 쥐는 오른손 아래로 얇은 손목이 훤히 보이는 게 꼭 날 것의 마음이 들여다보이는 것만 같은 감각을 선사하지 뭔가. 지켜보는 마음이 핑그르르 도는 것 같았어요. 

 

Life After Life. 제가 말했던 가요? 영원히 런웨이에 오르며 웃는 얼굴에는 항상 심장이 조각난다고. 정확히 ‘막을 수 없는~’을 부르며 사르륵 웃어 보이던 얼굴, 환상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그림자 대화에서는 ‘공허함 파트’의 호흡이 매우 빨라졌다. 이렇게 다다다 한 문장처럼 뱉어내는 건 또 새로웠지. 

 

Mina’s Seduction에 앞서 잠시 골몰했던 부분은: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에 첫공주만큼 큰 음량을 만났는데, 이 음량에서 그간과 같은 변주를 넣으면 좀 튀지 않으려나 싶었던 것. 그런데 시아준수, 귀신 같은 사람. 과연 본인의 역할 뿐 아니라 극 전체를 보고 아우르는 사람. 오늘은 변주 대신 본연에 충실하면서도 살짝의 밀당과 약간의 고양감을 곁들인 노래가 왔다. 그래서 새로움은 여전하면서도, 극 안에 감쪽같이 녹아드는 노래가 훌륭하게 완성되었어요. 

이미지적으로는 “그대 눈빛 속에 내카 있어”에서 미나의 얼굴에 닿을 뻔하였던 손 모양 그대로 허공 중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던 장면과, 역시 드라큘라와 미나가 침대 위로 나란히 입성할 때의 일체감에 수훈을. 

 

아니 그런데, It’s Over. 막바지 런웨이에서 ‘끝났어포기해!’ 타이밍에 두 손바닥을 가슴 쪽으로 뻠삥하듯 가슴팡! 동작 뭐였지요. 안 그래도 절정에서 쏟아진 격렬한 동작에 깜짝. 또 볼 수 있을까요?

더불어 회오리 몰기 직전의 가사에서는 새로운 억양을 들었다. 신이 ‘두렵냐고!’ 평소보다 높게 올려, 꼭 대사처럼 외쳤어.

 

*

 

마지막으로 피날레, 매번 경지를 달리하는 삼연곡과 나란한 역사를 이룩한 오늘의 엔딩. 

 

#1

구석에서 조용히 걸어 나온 그가 그늘 드리운 얼굴을 천천히 들어 올리나 싶었다. ‘나 이제 그대 앞에 있다’는 그녀와 서서히 눈을 맞추는가 했는데.

슬픔에 잠긴 얼굴로 그가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 한 번 고개를 내저었다. 

잔인한 타이밍이었다. 하필 ‘나 이제 그대 앞에 있다’는 노랫말에서. 마침내 그녀가 그를 향해 전부 왔노라 온 마음과 노래로 전하는 대목에서, 그는 그녀로부터의 퇴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2

“날 구원해줄 수 있는 건 오직 당신뿐이에요.”

시작점에서 이미 다 써 내려간 서사의 정점에서였다.

“안돼, 싫어!”

달음박질하여 안겨든 그녀를 품에 둔 그가, 그녀의 머리 위에서 입술을 꾹 닫아 물었다. 울음을 깨물어 삼키는 것처럼 미어지던 얼굴이 이윽고 단단하게 굳더니 한 차례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련의 표정 변화가 차가우리만치 단호했다. 그녀가 흔들리는 만큼 자신을 잡아 세우고 있음이 눈에 선했다. 속절없는 그녀 대신 스스로를 다그치며 결심을 굳히는 얼굴이 얼마나 결연하던지. 

그 표정이 오늘, 그리고 사연의 피날레를 관통하는 열쇠였다. 

트레인 시퀀스에서 형체를 입고, 더 롱거에서 회한이라는 표피를 얻은 결심. 그녀로 하여금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할 수는 없다는 각오. 결국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되는 서사. 

‘사랑해서 그댈 위해 내가 떠날게요.’ 

그 전부가 미나를 가슴에 묻은 채로 스스로를 지워내던 얼굴에 있었다.

 

 

공연이 좋았던 만큼 더 열심히 쓰고 싶었는데 만성 수면 부족으로는 이게 최선인 것 같다. 항상 최상의 컨디션으로 덕질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