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날레가 좋았다. 피날레로 다 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무너진 성벽 사이에서 걸어 나오는 얼굴이 이미 침통했다. 걷힌 천과 드러난 초상화를 보고 더 무너질 곳 없을 줄 알았던 표정이 와르르르 내려앉더니,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한 손으로 다 가려진 얼굴이 그늘 속에서 한참이나 숨을 골랐다. 그림자 속에서 울음을 삼키는 그 모습은 미나 앞에서 눈물을 숨기려는 드라큘라 같기도 했고,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에서 수건 그늘 아래에서만 눈물을 훔치는 시아준수 같기도 했다.
범람하는 슬픔은 자연히 ‘강’의 피날레로 이어져 갔으나.
사연의 그가 반드시 지켜내는 것.
치솟았던 ‘강’을 ‘약’으로써 맺음 하는 완급 조절.
‘피와 고통의 내 세계’에서 조각나던 비명 같은 울음이 ‘차가운 암흑 속에’의 여린 울음으로 기어이 사그라지는 것을 목도하며 전율했다.
삼연의 그는 목놓아 울기라도 했지. 사연의 그는 죽음으로 가는 길 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친다. 그녀와 마주 안고, 사랑의 온기를 느끼다가도 제게 허락될 수 없는 빛으로부터 화들짝 뒷걸음질한다.
사연의 그는 스스로에게 가혹할 정도로 단호하여 피날레 내내 온전히 울지도 못하고 삼키고, 삼키다가.
마지막으로 미나를 마주하고, 그 손에 칼을 들려주고서야.
제게 남은 마지막 인사의 시간이 되어서야,
“사랑해요 그대.”
이 악물며 운다.
“그댈 사랑해요.”
처창하여 아름다운 눈물을 달고, 죽음을 향하여 똑바로 걸어 들어간다.
관으로 향하는 마지막 세 걸음. 칼을 부둥켜 잡지 않은 손이 미나의 뺨에 닿았다. 찰나의 온기. 마지막으로 온전히 마주치는 시선. 입맞춤을 가장한 작별.
오직 그것만이 그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마지막 미련이었다.
*
나란히 적고 싶은 건 둘.
하나, Lucy & Dracula 1. 내가 줄 수 있는 건 영원한 삶이야. 영혼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것. 필사적인 설득에서 27일과 마찬가지로 옅은 소금기가 느껴졌다. 제발, 자신에게 응해주기를. 드라큘라의 절박한 열망에 물기가 자욱하다고 느꼈다.
둘, 기차역. 표정이 달랐다. 저스트 조크까지는 빤빤하게 해보지만 결국에는 미나의 기색을 살피며 초조해하는 예의 얼굴이 아니었다. 덴티큐에 자그맣게 웃어 보인 미나를 바라보는 그의 입꼬리가 살포시 말려 있었다. 그래, 웃고 있었다. 미나를 마주 보며 그가 계속 웃고 있었다. 헛웃음이라도 좋다는 양, 400년 만에 보는 그녀의 미소가 그저 달다는 듯이.
“웃으니까 더 예뻐요.”
다감한 첨언이었다. 나직하게 덧붙인 음성에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래서 울컥했다.
웃으니까 더 예쁜 사람이 누군데. 세상에 미나밖에 없는 얼굴로 그렇게 예쁘게 웃고 있는 사람이 정작 누군데.
찰나의 평화로운 한때였다. 박지연 미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육성의 허락, “좋아요”까지 너무나도 아름다운 정경이 이어졌다. 파란 하늘 아래 낮게 깔린 구름이 보이는 듯했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일시에 피고 져버릴 찰나의 도란도란함이 더없이 애틋하여, 이대로 눈에 심어도 아플 리가 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었다.
평화의 1막 끝에 눈물의 피날레를 만난 7월 29일, 김준수 드라큘라의 또 하루였다.
드라큘라 가지마. 드라큘라 열 번만 더 하자. 드라큘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