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시아준수가 공연 중 감동을 받으면 일어나는 일

 

시아준수, 역시 환호성을 먹고 사는 사람. 무대를 향하여 쏟아지는 기운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고, 갈채와 환호 소리를 자양분으로 삼는 사람.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객석의 기운과 기민하게 공명하는 사람.

 

찬란한 햇살까지 끝나고 비로소 그가 객석을 처음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에, 단관을 겸하여 가득 찬 공연장을 담은 눈이 차오르는 것을 보았다. 빼곡한 객석을 머금고 부풀어 오른 빛이 느리게 반짝거렸다.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내 안의 모든 맥이ㅡ심지어는 평소에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아주 여린 것까지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심장을 내달리게 하는 절반쯤은 감탄이었고, 절반은 애틋함이었다.

 

처음도 아닐 텐데. 시아준수 인생에 만석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가 있고 무대가 있은 후에 그의 관객이 없었던 순간이 없는데. 

절로 묻게 되었다.

오빠, 아직도 그렇게 벅찬가요?

나에게 당신의 존재가 매일의 감격이듯이, 당신에게는 관객이 매 순간 그러한가요?

 

천천히 뭉쳐 드는 눈빛이 알게 했다. 감사하다 매번 전하는 그의 말은 단 한 번도 인사치레인 적이 없다. 무대 위에서 살아가는 ‘기적’을 제게 선사하는 존재가 관객이노라 하던 그의 말은 순도 백 퍼센트의 진심인 것이다.

누군가는 타성에 젖어 들기도 하는 스무 해 가까운 시간 동안 관객이라는 경관 앞에서 매번 감격으로 일렁이는 저 사람,

시아준수.

 

가득찬 객석에 온몸으로 화답하듯 어느 때보다 타오르는 오늘의 〈난 나의 것〉에 경탄하지 않은 사람 없겠지. 귀에 때려 박아주는 차원 이상이었다.

 

오늘의 소릿길이 극적으로 얼마나 알맞았는지 모른다. 지독하게 완강하고 고집스러운 소리. 과연 엑터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도 손댈 수 없을 법했다. ‘내 안에 불타고 있는 분노’는 물론 ‘분노로 가득찬 폭군의 피’와도 무리 없이 어울렸다. 펜드라곤 혈통 속의 용을 위한 초반의 서사가 노래 하나로 단숨에 완성되었다. 노래 하나에 담는 전력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심지어는 노래 외적 요소까지도 완전했다. 이따금 동작만 남고 소리는 전해지지 않던 바깥벽 내려치는 소리까지도 드물게 선명하여 카타르시스를 쌓아 올렸으니. 

그러니까, 난 나의 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야말로 난 나의 것의 날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어졌는데, 아. 공연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하나의 최선이 가고 나면 반드시 또 다른 전력이 왔다. 

 

단적으로 〈이게 바로 끝〉. 마이크 사고를 만회하기 위한 전력의 9월 9일이었지. 오늘은 불상사의 격려가 없었음에도 전심 그 이상의 이게 바로 끝이었다. 분노 위에 분노를 첨예하게 쌓아 올린 음성이 그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광경을 무슨 말로 다 이를까. 생명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끌어내는 소리, 내일이 없을 이게 바로 끝이었다. 

 

〈왕이 된다는 것〉도 다르지 않았다. 노래가 점점 가슴, 배, 결국에는 몸통 전체의 소리로 번져가는 형상이 실로 경이로웠다. 시아준수 안에는 대체 울림통이 몇이고, 악기가 몇이지요? 저 자신이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인 것처럼 장대한 소리를 막힘도 없이 끌어내고 있었다. 결국에는 공간 자체가 그의 소리통인 양 공명하던 것, 오늘의 잊을 수 없는 순간.

 

9월 12일을 결국 한 문장으로 말하면 시아준수가 본인이 받은 벅찬 감각을 그대로 관객에게 되갚아준 공연이었다.

 

전력을 여한 없이 쏟아냈기 때문이겠지. 무대인사 내내 기분 좋아 보이던 그가 자꾸만 스스럼없이 ‘시아준수’를 불러와 내 마음에 불을 지폈다. 당첨자 1명으로 조촐한 럭키드로우에 객석이 아쉬운 투정을 부리자, 따라 앓으며 흐르는 시간이 아까운 듯 굴던 그가 얼마나 예뻤는지. 또박또박 대본을 읽어가다가도 꼭 한번씩 삐끗해 재차 낭송하며 푸스스 웃는 얼굴은 영락없이 시아준수였다. 뮤지컬의 계절에는 정말 드물게만 볼 수 있어 더욱 귀한, 드라큘라도 아더도 아닌 바로 그 시아준수.

 

무대인사의 막바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위대한 여정” 안내방송의 음성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목소리에는 객석이 술렁이며 웃었다. 곁들여진 감탄사는 목소리의 잘생김을 반, 눈앞에서 안내 멘트를 직접 목격한 신기함을 반씩 담고 있었다. 

이대로 공연이 다시 새로 시작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음성이 준 기분 좋은 착각까지도 오늘,

정말 완벽하게 아름다운 날이었다.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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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그외에 간략하게:

혼자서 가, 왕을 거역하면 ‘명백한 반역죄’에 명백하게 끊어 넣던 강세. 재연 들어 바뀐 가사이기도 하고, 권위로 찍어누르려 드는 아더가 낯설어 영 귀에 익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오늘은 조금의 위화감도 없었다. 가사를 전부 녹여 주조해내던 그, 매우 매우 어메이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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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매번 같은 듯 다른 왕이 된다는 것의 한 바퀴 턴. 10일에는 자세 낮추어 단번에 빠르게 돌더니, 오늘은 한 바퀴를 반씩 끊어 비잉 돌고는 왼발로 살짝 뒤를 짚어 몸을 지탱해 보였다. 마치 일순간 흔들렸던 균형을 가까스로 되살려와 버티고 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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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왜 여깄어는 아예 따로 적고 싶은데 가능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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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왜 여깄어는 매번 아름답지만 어제 정말 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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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감정 끓어올라서 난 여~깄어 길고 강하게 울려서 낸 소리, 다시 들어도 심장 덜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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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심장의 침묵에서 내달리지 않으니, 눈에는 눈에서 내달리던 폭주 보존 법칙의 오케스트라. 샤아더의 카멜롯이 오케 군단에 맞서 열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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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21.09.13

곱씹을수록 참 특별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