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10월 13일, 14일의 엑스칼리버 이틀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
어제는 오블이라 등이 보였다. 최서연 기네비어가 이마 깊이 묻은 그의 턱을 들어 올려 눈물의 시선을 맞출 때, 파르르 동요하는 등 너머의 얼굴이 너무도 보고 싶었지. 마침 왼블인 오늘은 볼 수 있으려나 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왈칵 흐려진 얼굴이 먹먹한 소리를 냈다.
“기네비어..”
이어서는 눈물의 선창이었다. 노래가 울음 속에서 헤매다 마주 잡은 손등 위로 떨어졌다. 깊이 묻은 이마에서 전해지는 것이 체온인지 눈물인지 두 사람 모두 분간할 수 없을 터였다.
이어서 어제와 같이 오늘 역시, 그의 정수리까지 나란히 무릎 굽혀 내려온 그녀가 손을 뻗었다. 웅크려 숨은 어린 짐승처럼 얼굴을 묻어버린 그에게로 다가간 손길이 파묻힌 고개에 닿았다. 살짝, 그녀가 그의 턱을 들어 올려 끝내 두 사람이 눈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의 눈동자를 가득 채운 두 가지 빛깔을 잊을 수 없다.
닿아온 온기에 움튼 희망이 하나, 바짝 뒤따라온 이별을 보는 절망이 다른 하나. 상반된 색이 어지럽게 뒤엉킨 와중에도,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그저 떨기만 하던 그 눈..
그러나 딱 그 눈맞춤까지였다. 그에게 희망과 절망의 양단을 일시에 안겨줌과 동시에 그녀가 모든 것을 회수해갔다. 군신의 예를 다한 인사가 정중하여 잔인했다. 그가 차마 넘어갈 수 없는 선을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하여 그었다. 그렇게 그녀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실낱같던 희망이 기어이.
“안돼..”
버석이는 읊조림은 이미 떠나간 이의 등에조차 닿지 못했다.
혼자된 그가 노래를 한없이 끌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연이틀 세상의 끝까지 흐려지던 어미,
“갈 곳 없는……”
마무리 짓는 순간이 곧 끝이라, 노래만을 하염없이 붙들고 선 그가 향할 곳이 정말로 더는 없었다.
(일정을 보니 13,14일에 이어 16일까지도 아더-기네비어 페어가 같던데, 과연 이번 주 내내 이 감정선이 이어질지. 토요일이 몹시 기대됩니다.)
이하 간략한 이야기들
오늘의 말들은 “렌Field~ 루우시!” 이어서 발음 바꾸어서 “렌필드! 루우시!” 가장 충직한 말들이라 버전도 둘로 나누어서 불러주신 건가요? 상냥해라.
〈찬란한 햇살〉에서는 알고 보니 사쿠란보 슛돌이춤. 팔을 안팎으로 접었다 피면서 사방팔방 들쑤시느라 신난 얼굴이 너무 귀여웠다. 아더가 안마당을 전부 헤집으면서 빙글빙글 도니 모두 아더에게 맞추어 슛돌이춤을! 결국 한바탕 춤마당이 되어버렸던 아더네집. 힘내라던 랜슬럿, 그 모습을 보고 뭐하냐~ 한마디를 기어이 하게 되었다. 일련의 흐름이 몹시 시트콤스럽고 재미있었어요.
한편 오랜만에 음량이 ‘매우’ 컸다. 마이크도 완전히 꺼지지 않아 본래라면 육성으로 어렴풋했을 음성들이 전부 마이크를 타고 은은하게 들려왔다.
가장 먼저는 “난 왕이 아니라고~” 푸념하던 목소리(1). 또 이어서는 기네비어에게 된통 당하는 랜슬럿을 보며 하하하! 호쾌하게 흩어지던 웃음소리(2). 기네비어 앞에서 엑스칼리버로 한껏 자세를 잡았다가 회수하며 ‘힛’ 숨으로 웃던 소리(3). 마지막으로 축하할 일이 있었지! 앞서가는 아버지의 호들갑에 눈코입 모두 축 처져서는 아빠! 속삭대던 목소리(4).
오늘의 귀가 따가울 정도의 음량과 〈내 앞에 펼쳐진 이 길〉이 만나니, 와. 시아준수 목소리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천장에 부딪히며 산산이 쏟아져 내리는 청각적 분수를 원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콘서트에서나 겪어볼 법한 소리의 폭포였다. 특히나 그가 음절마다 꾹꾹 힘주어 부르는 이 넘버에서 가능한 최대의 출력으로 그의 소리를 받아내는 기쁨. 이게 바로 행복.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은 오늘의 잘생김 구간. 그 귀에 속삭여줄 텐데, 두 사람을 톡톡 두드리는 기네비어의 손짓에 듣고 있다는 양 표정을 살짝 지어 보일 때. 눈썹 위 뼈에 살짝 힘이 실린 채로 눈썹 팔랑이는 얼굴의 잘생김에 기절. 시아준수 대체 왜 눈썹도 이렇게 잘생기게 쓰는 건데요.
성당 공터. 형제 케미라면 역시 샤강이지만 에녹 랜슬럿과의 주고받기도 꽤 무르익었다.
‘니가 뭘 알겠냐~’ 놀림 받으면 보통은 칫, 한 번 토라졌던 아더가 오늘은 어른스레(자연스레) 먹금한 걸 시작으로 한껏 아는 척하는 형에게 귀 기울여보다, 기네비어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랜슬럿을 밀치고 먼저 냅다 질주. 우다다다 앞서가는 뒷모습이 얼마나 용맹하던지.
나무 뒤에서 열심히 훔쳐보던 중 들킬세라 온몸을 폴싹 날려 웅크리니 돌아오는 건 그게 뭐냐는 랜슬럿의 핀잔. 멋없다고 얄밉게도 깐족대는 형에게 열 올라, 등 뒤에서 몰래 주먹 꽁 쥐며 으씨! 하던 것까지. 오늘 매우 물 흐르는 티키타카, 나무 뒤의 아웅다웅 형제.
참, 날렵한 김턴에 이어 랜슬럿이 대련 중에 추근대자 글쎄 한발 성큼 앞으로 나서서 그의 등을 마구 두들겼다. 아니 형이, 하지마 하지마.
색슨족의 습격. “너희 이교도 군주에게 전해라!” 아스가르에게 단단히 경고하는 아더, 오늘 상처 부위를 아예 짚지 않았다. 대신 일갈하는 음성과 나란히 주먹까지 쥐어가며 분노를 표현했어. 다소 격양되었던 걸까, 아니면 바뀐 걸까. 바뀐 거라면 기네비어의 지혈 위치가 애매한 걸로 있었던 설왕설래를 의식한 걸까? 음, 다음 공연이 궁금해지는군요.
〈왜 여깄어?〉는 늘 어제가 좋은 만큼 오늘이 좋고, 오늘이 좋은 것보다 내일이 좋다.
요즘 눈에 박히는 건 모르가나의 폭언이 쏟아지는 순간의 표정 변화. 자신이 탄생이 술수로 빚어져 이용되었던 것만 생각했지, 누군가가 ‘버려져야만 했던 이유’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아더. 폭언에 상처받기보다 충격적인 자책 속으로 빠져든다. 오히려 제가 버림받은 것 같던 시린 얼굴이 얼마나 마음 치게 곧던지..
동생의 등 뒤에서 웃는 누나와, 왕이 되어야만 하는 운명도 밀치고 누이의 손을 잡으며 ‘고통은 끝’을 말하는 동생. 혈통과 품격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한 이와 그렇지 못한 자, 그게 딱 이 펜드라곤 남매겠지. 양단의 둘이 하필 혈육으로 이어진 바람에 빚어지는 앞으로의 참극이 우의를 다지는 남매의 목소리 사이로 고통스레 침투하는 멀린의 목소리에서 들려온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삼중창.
〈혼자서 가〉 내가 뭘하든 상관하지 마. 랜슬럿의 말을 노래로 자를 때, 보통은 검지로 콕 찍어누르는 편인데 오늘은 총을 먼저 장전했다. 랜슬럿의 눈앞에서 단발, 빵야. 경고 한 방 새긴 뒤 예의 검지 콕콕.
그런데 음량이 커서 그랬을까. 유독 서슬 퍼렇게 챙챙 울리던 칼싸움. 보기에도 격했지만, 듣기에는 위협적일 정도였다. 검 부딪히는 소리에 카멜롯 사람들 심장이 다 내려앉았을지도요.
덧. 아더의 전설의 검은 오늘 절대검이 되었다. (feat. 아스가르)
덧2. 어제 적고 싶었던 것. 형! 외치며 다가오는 아더를 랜슬럿이 원래 이렇게 안아줬던가. 두 팔로 폭 안아서 아주 살포시 땅으로부터 들어 올리는데, 땅 위에 두둥실 뜬 채 매달린 양발이 너무 귀여웠다. 대롱대롱. 찰나의 대롱대롱. 무게감도 없이 달랑 들리던 10월 13일의 아더 잊지 말자.
오늘 보니 돌아온 기억. 14일의 그, 왕관을 벗어던지는 각도부터가 맹렬하다 싶더라니. 그대로 바위산에 명중시켜 전에 없던 굉음이 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저 멀리로 거침없이 튕겨져 나가는 왕관 앞으로 성큼성큼 분노의 걸음을 앞세우던 소년왕. 아름다운 극적 우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