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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연 첫 깐아더의 강림. 얼굴로 충격요법을 주는 게 이런 걸까. 하필이면 재연의 눈에는 눈이다. 흑화한 흑발의 흑아더, 곧 시아준수가 얼굴로 당위를 세우는 넘버. 원래도 거의 얼굴만 보는 노래건만 반듯한 이목구비를 훤히 드러내어 나타나면.. 역시 소리를 앗아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볼륨을 살려 아름답게 빗어 넘긴 깐머리 아래 자기주장을 숨기지 않는 이목구비라니.. 이렇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겪으면서 다른 감각이 기능할 리가 없지 않나.

상반신까지 볼 요량으로 적당히 10배율짜리 망원경을 챙겨온 걸 후회했다. 12배율을 가져올걸. 얼빠가 안일했다. 오늘이야말로 얼굴만을 봐야 하는 날이었다. 얼굴이 극이고 얼굴이 전부였다. 얼굴 바깥으로는 시선 한 톨 나누어줄 수 없었다.

때문에 2막의 모든 기억이 시각에 의존한다. 

그런데 놀랍지. 얼굴만을 좇았으나 기승전결의 정립이 여느 날 못지않았다.

 

당연하다. 얼굴 안에서 극이 피고 졌다.

심장의 침묵 검의 바위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내려오는 눈동자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눈에는 눈 리프라이즈에서는 덮아더의 환시가 아니라 잘생긴 이마가 새하얗게 비추어졌고,

이게 바로 끝을 지나 멀린을 찾으며 무너지는 얼굴이 그늘지지 않으며,

왕이 된다는 것까지 마치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는 얼굴에서 이마 위에 감도는 결의까지 오롯하게 다 보였다.

최종장인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에서 또한 환한 빛에 지워지는 얼굴을 가림막 없이 올려다볼 수 있었다.

 

결국 10월 22일은 오직 얼굴로만 극을 견인한 깐아더의 날이었다.

 

*

 

이하 삼연공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 씁니다. 10월 20일부터 22일까지의 이야기들:

 

근래 이어져 온 뮤지컬 캐릭터를 잠시 밀어두고 삼연공의 두 번째 날인 10월 21일에는 오랜만에 자연계가 돌아왔다. 호수야, 샘물아! 나의 착한 말들 다 어디 간 거야. 간지러움은 자연에 붙인 수식어 때문. 어여쁜 자연의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착한’ 말들인가요? 시아준수식 사고 대단히 귀엽고 무해하여 주먹을 꽉 쥐었다. 호수를 부르는 목소리는 또 얼마나 곱던지. 자연계와 시아준수의 만남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원의 완성〉이 흐르는 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인간사의 비극에 개인적 번뇌가 씻겨져 나가는 얼굴을 본다. 순간이지만, 스스로에 대한 의문도 차치하게 될 정도로 그의 영혼을 사로잡은 사명감. 곧게 굳어버린 얼굴에서 보인 것이었다.

(뒤이어 노래가 끝나자 바로 마이크를 타고 나오던 ‘난 왕이 아니라고오..’에서 순식간에 안타까울 정도로 귀여워진 건 괄호 안에서 이야기한다. 삼연공 내내 참 잘 들렸던 것.)

 

〈검이 한 사람을〉에서는 삼연공 마지막 날인 10월 22일 샤강 형제의 케미가 반짝반짝. 13일에 그를 대롱대롱 들어 올리는 강태을 랜슬럿을 한 차례 경험한 샤아더, 22일에는 본인부터가 두 팔 크게 벌리며 아예 몸을 맡겼다. 폭삭 안긴 아더를 지상으로부터 성심껏 들쳐올리는 형까지, 몹시도 우애로웠던 샤강 형제. 

 

얼굴 이야기도 해야 한다. 랜슬럿입니다, 케이입니다, 루칸입니다. 차례로 맹약하는 친구들을 향하여 애틋하게 휘어지던 눈꼬리 이야기를. 옆얼굴에 곱게도 그려진 눈매의 곡선이 얼마나 귀한지 모른다. 그려서라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데. 역시 그림을 그려야 했어요. 

 

기네비어와 랜슬럿의 대련. 삼연공 첫날(10/20)에 특히 인상 깊었던 것. 놀랍도록 선전하는 기네비어를 향해 온 마음으로 손뼉 짝짝 치다, 아무래도 부족했는지 쌍따봉까지 만들어 보였다. 야무지게 세운 양손 엄지를 기네비어 눈앞까지 대령하는 기세가 대단했지. 몹시 귀여웠는데 또 볼 수 있을까요?

낚시통으로 랜슬럿을 응징하는 동작은 두 번이나(20일, 22일) 등만 찰싹찰싹 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런데 아더가 아직 낚시통으로 아무 말썽을 피운 적 없는데도 꿋꿋하게 통을 회수해가시던 아버지. 아들 단속이 엄격하시다.

 

성당 공터. 형이랑 투닥투닥하다가도 기네비어 목소리가 들리면 앞뒤 보지 않고 우당탕 달려 나가는 소리에 항상 마음으로 쓰러진다. 세상에 어느 다람쥐가 이렇게 요란하게 귀엽지요. 

 

색슨족의 습격. 아스가르에게 경고하며 이제는 아픈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생포한 적 앞에서는 의연하고 강한 모습만을 보여준다. 아스가르를 보내고 나서야 윽 상처를 짚으며 랜슬럿에게로 무너진다. 아무래도 경고할 때에는 의연하게 버텨내는 쪽으로 확실하게 가닥을 잡은 모양이다. 색슨족 앞에서 나약한 모습은 허락하지 않는 우리의 소년왕이다. 

 

〈왜 여깄어?〉에서는 삼연공 내내 곧게 빼내는 “난 여-깄어”를 들려주었다. 감정이 격양되며 떨림이 덧입혀졌던 음이 다시 곧고 명징해진 것이다.

개인적인 절정은 마지막 날인 22일이었는데, 표정 연기가 신기원을 연 듯했다. 모르가나에게서 멀린으로 옮겨가며 색이 변하는 눈동자의 섬세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실황, 실황이 필요해요. 세상 모두가 왜 여깄어의 시아준수를 볼 수 있다면 마음속에 바다가 열릴 텐데.

 

〈기억해 이 밤〉 역시 삼연공 내내 검의 바위에서 내려와 원탁 앞의 기사들을 차례로 빙 둘러보며 방긋 예쁘게 웃던 임금님. 이 모두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것처럼, 두 눈에 신뢰와 자부심이 가득했다. 

 

〈오래전 먼 곳에서〉 10월 20일의 소리가 특히 예뻤다. “이젠 언제나 하나 우린 영원히 하나.” 가성에서 반가성으로 넘어가는 구간의 다사로움. 가히 천상의 반가성이었다.

축하할 일 있다며 앞서 수선 떠는 엑터에게 아빠! 대신 아버지..! 라고 오랜만에 속삭였던 것도 20일. 아빠일 땐 몹시 귀엽고, 아버지가 되면 몹시 의젓해서 귀엽다. 

홍경수 엑터와는 (21일, 22일) 아! 그거 비밀이었지 참! 빤빤한 반응에 말을 잃다 못해 맥이 탁 풀리는 아들이 참 귀엽다. 22일에는 와중에 기네비어를 흘긋 돌아보기도 했는데, 초조함 언뜻 비치는 표정 연기조차 너무나인 것..

 

〈혼자서 가〉 오.. 마지막 합으로 랜슬럿이 아더를 무너뜨릴 때, 이지훈 랜슬럿이 내려친 검에서 서너 갈래의 불꽃이 튀었다. ‘불꽃놀이’로 불러도 될 법한 스파크를 목격한 건 초재연 통틀어 10월 20일이 처음이었다.

 

22일에는 강태을 랜슬럿과의 대립이 돋보였다. 지금 당장 평야로 나가겠다는 말에 아더의 얼굴로 향하던 랜슬럿의 손길. 그러나 방향을 제대로 갖추기도 전에 가로막혔다. 조금의 접근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허공에서 내쳐진 손에 형이 멈칫했다. 그 반응을 분명 보았을 텐데도 동생은 멈추지 않았다. 검지에 날 세워 형의 가슴을 찍어누르며 비수를 꽂았다. 내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

 

〈이게 바로 끝〉 누나, 여기서 뭐해? 등장하는 시아준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어떻게 이렇게 반듯하게 잘생겼을까. 이게 바로 끝 시작부에는 항상 그 태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깐아더가 되니 이마에서부터 콧등으로 떨어지는 선이 그만.. 하..

더불어 반가웠던 것. 10월 21일에 참 오랜만에, 신을 모독했어! 하늘을 가리키며 시선도 치켜떴다. 영영 다시 오지 않으려나 했는데 다시 만나 정말 기뻤지요. 솟구치는 분노와 너무나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시선 처리. 종종 보여주세요. 만약 깐아더의 얼굴로 이 시선 처리가 온다면.. 하..

 

〈왕이 된다는 것〉의 개인적 방점은 2일 차인 10월 21일에.

푹 숙였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걸어 나오기 시작하는 노래가 단단했다. 특히 “한 번 가 봤던 길은 전부 막혔고..” 어쩐지 이를 악문 것 같은 소리였다. 

흔들리는 대지를 지나와 도달한 마지막 구간. 정면을 향하여 똑바로 선 채 그저 노래할 뿐인 그는 분명 땅에 다리를 뿌리내리고 있는데도 공간을 전부 채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운명을,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고 물러나지 않겠노라는 결의가 너무나 거대했다. 

역시 재연 10주 차의 왕이 된다는 것은 어떤, 위대한 단계에 접어든 것 같다. 노래로 위업을 세운다는 게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게 하는 것이다.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도입부. “상상조차 못 한 순간.”

10월 20일에는 감정을 따라 흘러가다, 그만 박자를 놓치고 빠르게 내뱉었지.

10월 22일에는.. 두 팔 벌려 먼 허공을 찾아 헤매며 그가 노래했다. 그의 하늘 그 어디에서도 이런 순간은 없었다는 것처럼. 이어 그녀 앞에 무릎 꿇은 채로 영원의 반지를 보여주려는데, 장갑이 빠지지 않아 한참 애를 먹었다. 무엇 하나 그의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슬픔 위에 덮친 슬픔으로 오직 깜깜한 비극이었다.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

첫날인 20일의 그가 검 앞으로 무너지며 ‘안 돼..’ 하듯이 툭 내뱉은 웅얼거림이 슬펐다면,

21일에는 흑.. 페이드아웃 되다 못해 마이크가 꺼진 무대 위로 선명하게 던져지는 울음이 슬펐다. 검 앞에 폭삭 주저앉은 어깨가 가여웠다.

마지막 날인 22일은.. 역시 깐아더의 강림으로 온전히 드러난 얼굴에서 피고 지는 모든 표정이 되겠지. 

 

이날에는 그가 어떻게 바위산을 올랐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얼굴을 홀린 듯이 보았다. 그 얼굴에 낱낱이 피어있던 온갖 감회들이 처음 보는 양 생생했다. 앞머리를 넘긴 것만으로 내 안의 모든 안전장치를 무력화해낸 그가 심장에다 곧장 표정을 꽂아 넣고 있었다. 

 

검을 든 채 빛 속으로 잠겨가는 얼굴 안의 고통, 오기, 겸허한 수용, 그리고 눈물 먹은 의지. 

 

훤히 드러난 얼굴에 가득하던 표정들이 마치 이제껏 꽁꽁 감추어 두었던 가장 여린 본심처럼 보여서..

오직 그것만을 따라 그릴 기세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