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 엑스칼리버 김준수 아더 두 번째 삼연공: 10월 29일, 10월 30일, 10월 31일의 이야기들.

 

30일이었다. 

항상 칼로 대지를 단단하게 찍어 일어나던 그였는데.. 그 칼이 미끄러졌다. 자연히 그의 무게중심도 균형을 잃고 휘청, 도로 고꾸라질 뻔했다. 중심축 잃은 몸이 다급하게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허공을 짚어 넘어지는 것만은 막아냈으나. 이미 눈물은 왈칵 쏟아진 후였다. 여기서 이렇게, 칼로 몸을 제대로 지탱해내지도 못하고 힘겨워하는 그를 본다는 것. 

과몰입을 넘어선 충격이 전신을 휘감고 갔다.

초재연을 통틀어 이렇게 어렵게 ‘다시 일어나는’ 그는 처음이었다. 

 

*

 

〈찬란한 햇살〉의 시아준수, 얼마나 찬란한 햇살이었는지. 삼연공 첫날, 바로 전날의 영상통화 이벤트에서 찬란한 햇살 애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걸 참작해온 마음 씀씀이. 삼연공 내내 꽃받침 대신 새 단장한 애교(쌍체리, 슈퍼브이, 다시 쌍체리). 이 사랑천사를 어쩌면 좋을까요. 

 

프리댄스는 첫날인 29일에 아주 즐거운 해프닝이 있었다. 사쿠란보 슛돌이댄스의 춤사위에 터진 에녹 랜슬럿이 결국 웃어버렸고, 그걸 본 시아준수도 한껏 업된 나머지 전에 없던 “절, 절망하지 마”를 듣게 되었다. 박자 빠르게 들어가 새로 시작하는 시아준수라니, 절대 레어일 오늘!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삼연공 마지막 날인 31일, “이 땅이 날 부른다면 용기를 끌어모아”에서 복받치던 감정 뭐였지. 와, 솟구치는 마음이 소리에 선명하게도 깃들어 있어 내가 다 벅찼다. 누군가의 나아가는 한 걸음을 본다는 것이 어떤 감격인지 알게 하는 노래에 심장이 뛰었다. 바위산 아래에서의 모두와 같이 한마음 한뜻으로 엑스칼리버를 향해 다가가는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했다. 시아준수가, 그의 아더가.

 

봉 대련. 삼연공 첫날인 29일의 아더, 기네비어가 던진 낚시통을 잡아내고는 홍경수 엑터에게서 오구 잘했다며 박수를 받았다. 평소와는 다른 구간에서 쏟아진 아버지의 칭찬 세례에 신이 났는지 그대로 낚시통 받는 동작을 재연해 보이기까지. 말쑥하게 웃으며 캐치통 재방송이라니요. 귀여워서 죽었는데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예의 김턴은 무려 박수갈채 더하기 쌍따봉까지 받았다! 아더가 바로 직전에 기네비어에게 박수 짝짝 쌍따봉 연달아 날렸던 걸, 그대로 아버지에게서 돌려받은 것이다. 아들복사기 아버지의 살뜰함. 이 부자의 알콩달콩이 나날이 갱신되고 있어요.

 

또한 재미있었던 건 바로 이튿날인 30일, 얼결에 잘 잡아낸 낚시통을 품에 안고 글쎄 오늘도 아버지를 빤히 뭔가. 어제 홍경수 엑터의 어화둥둥을 기억하는 본능적인 시선이 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리는 듯하였으나, 안타깝게도 30일의 이종문 엑터는 아더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31일에는 별거 없었다는 랜슬럿을 향해 되묻는 어조가 살짝 달랐다. 음절마다 온점을 찍어 끊어 발음했던 그.랬.어? 가 아니라 어미를 부드럽게 이어붙인 “그랬어~?” 온점에서 이어 부르기 되니 발음이 참 살랑거리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역시 실컷 놀리기는 하지만 마지막에라도 대단했다 말해주는 랜슬럿은 강태을 씨밖에 없음을.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29일의 아더는 역시 신이 났지요? 기네비어가 있는 바위산까지 와다다 달려가선, 한팔 번쩍 올려 팔랑팔랑 손 인사를 해 보였다. 기네비어가 두 사람을 바위 아래로 끌어올 땐 히힛 소리가 들리기도 했으니 말 다 했지요. 

29일의 깨알 어필 인사는 삼연공 내내 이어졌는데, 30일부터는 양팔을 썼다. 두 팔 크게 휘적휘적, 나 여기 있다는 함박웃음의 아더.

31일에는 또 기네비어에게 나란히 홀려있던 형제. 서로 시선이 마주치자 강태을 랜슬럿을 향해 “뭐, 뭐어” 비죽이던 아더의 입 모양은 처음 보는 것.

 

성당 공터. 31일, 엎드렸다가 몸을 말아 웅크려 일어나던 아더, 아마도 강태을 씨의 검? 또는 다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한다. 의도치 않은 충돌에 강태을 랜슬럿, 상체 한껏 굽혀 두 손으로 아더의 얼굴을 감싸 쥐며 미안해했다.

아니 그런데 “괜찮을 거야” 하면서도 원래 뺨을 만져주던가? 뺨을 쓸면서 다독이는데, 오늘따라 얼굴로의 터치가 많아서 너무나 랜슬럿네 막둥이 같았던 아더.

 

〈왜 여깄어?〉 

29일, 오랜만의 샤신민. 아더와 섞이지 않는 신영숙 모르가나의 목소리와 민영기 멀린의 짙은 저음. 목소리 자체의 존재감이 양보 없는 두 사람의 화음 사이에서 아더의 목소리가 피어나는 순간. 무지개 피는 이 감각은 샤신민에서 가장 독보적이다. 귀에 이불처럼 포근한 무언가가 덮어지는 느낌. 모르가나도, 멀린도, 두 사람의 양보 없는 대치까지도 모두 감싸 안는 아더의 목소리. 샤신민일 때의 시아준수는 목소리 자체로 이미 아더가 된다. 

 

31일에는 샤장민, 그리고 와아. 마지막 날에도 왜 여깄어가 1막의 넘버를 장식했다. 넘버가 그냥 재미있었다. 이 쫀쫀함! 새 글로 따로 쓰고 싶은데 과연 그럴 시간이 될까요..

 

〈오래전 먼 곳에서〉 아버지에게 살짝 타박한 후 기네비어를 돌아보는 기세에는 역시 어떤 결심이 깃들었다. 마음 굳히고 홱 돌아보는 아더. 30일에는 주먹도 살짝 쥐었다 놓았지. 

 

〈눈에는 눈〉 삼연공 마지막 날에 두 번째 깐아더. 깐아더는 삼연공을 무사히 마친 스스로와, 함께 해준 관객을 위한 선물인가요?

 

〈혼자서 가〉 31일. 형에게 짚인 어깨를 쓱 내려다보는 시선, 그동안 계속 랜슬럿에 가려져서 잘 보지 못했는데 이날 드디어 제대로 보았다. 제 어깨의 손을 보는 눈이 어디서 감히 내지는 같잖다는 빛으로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 지휘관으로서 선 자신인데, 언제까지 동생 취급만 할 건가. 숨겨지지 않는 분노와 함께. 

 

〈심장의 침묵〉 30일에 살짝 마가 떴던 넘버를 리벤지하는 듯했던 삼연공 마지막 날의 심장의 침묵. 노래가 촘촘하기 그지없었다. 가창도 감정도 틈이 없는 와중에 몰아치는 오케스트라까지. 오, 매우 세상의 끝을 이룬 심장의 침묵. 

 

〈이게 바로 끝〉 “무너지는 꿈 이게 바로 끝” 소리에 찔리는 기분이 이런 걸까.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나지. 어떻게 소리에 이렇게 날이 서 있지. 아니 날이 서 있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잘 세공된 유리공예품을 조각조각 부수어 뜨려 그 위를 매만지는 느낌. 들어도 들어도 감탄스럽다. 어떻게 소리에 이런 촉각을 부여할 수가 있나. 

 

〈왕이 된다는 것〉 역시 중콘의 법칙. 흔들리는 대지에서 꼿꼿하게 몸을 일으켜, 앞으로 두 걸음. 마지막 소절들이 견고한 목소리를 입어갔다. 심지어 마지막 어미에 샤우팅이나 긁는 음을 아예 걷어내어 지극히 청청하였던 마무리까지. 단연코 30일의, 그리고 삼연공의 넘버.

이어서 평원에서도 내내 중콘의 법칙이 이어졌는데.. 30일의 세 넘버는 기꺼이 평원의 삼악장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31일에는 앞 소절이 그렁그렁 울음기가 있어 오랜만에 8월 28일과 같은 “기..대..해…”를 들을 수 있게 되려나 싶었으나. 역시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한 번 갈무리해내는 아더. 출렁이는 겨울바람과 전부 갈라지는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마음을 다잡아 보는 그를 본다. 

 

〈평원에 날 묻어〉은 30일, 이지훈 씨와의 이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네 곁을 지키겠다고..” 문장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이지훈 랜슬럿이 고개를 떨구는 순간 시아준수를 스치고 지나가는 섬광을 보았다. 그 안에는 충격, 슬픔, 비통함, 자괴감, 그리고 몇 번을 전해도 결코 닿을 수 없어진 미안함이 있었다.

 

〈오래전 먼 곳에서 리프라이즈〉 31일, “상상조차 못 한 순간”의 허공을 헤매어 올려다보는 눈, 오랜만에 본다. 가득 벌린 두 팔에 안은 것이 없어 쓸쓸하기 그지없는 순간의 그는 항상 마음을 아프게 해요.

 

마지막으로 두 번째 삼연공의 마지막 기억은 역시, 앞서 적은 30일의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