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막은 과연 세막인 것이다.
1막도 1막이지만 오늘 2막 뭐였지. 시아준수가 8월 28일에 바로 세운 재연 엑스칼리버의 정수가 바로 이런 걸까. 오늘의 공연으로 아더의 두 번째 여정을 마무리 짓고, 이제 오직 축제의 막공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세미막공의 말들은 “미연아, 덩얼아.” 오.. 이럴 수가. 지훈아, 준호야가 앞서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아준수가 세계관과 상관없이 이 이름을 불러줄 줄은 몰랐어요. 🥺 심지어 쑥스럼 많은 이 사람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수식어를 붙여오다니요. 공연의 한 귀퉁이를 흔쾌히 떼어내어 마음 표현하는 시아준수,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그렇다면 막공은 시아야, 준수야로 거의 확정일까요?)
〈찬란한 햇살〉에서는 조금 귀여웠던 게, 아버지에게 꽃받침 하려는 듯이 두 손 동그랗게 펼쳤다가 급 슈퍼브이로 전환한 느낌이었지요?
〈원의 완성〉에서는 요즘 난 왕이 아니라는 투덜임이 곧잘 마이크를 타고 들려오는데, 어미가 평소와 살짝 달랐다. 보통은 ‘~라고’ 맺었던 문장이 오늘은 “난 왕이 아니야!”
〈내 앞에 펼쳐진 이 길〉에서는 왜 눈물이 났을까. 가창, 무대에 대한 진심, 시아준수이자 아더로 서는 저 사람의 모든 것에 눈이 시렸다. 어제 국민가수 5회에서 이석훈 씨가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보면 그 현상이 주는 감상에 눈물을 글썽이게 되곤 한다 했던 말을 오늘 가슴으로 느꼈다.
누군가의 온전한 진심과 그 전력으로 빚은 무대의 완전함 앞에서 한 명의 관객으로 찬탄의 눈물짓게 되는 것, 불가항력이었다.
서울에서는 이제 단 한 번 남았음을 아까워하는 사람처럼 모든 음을 촘촘하게 채워 넣는 시아준수의 전력은 그런 것이었다. 아름답게 피어 두 눈 시리게 만들고야 마는 불꽃놀이 같은 것.
봉 대련. 샤아더의 세미막공이자 홍경수 엑터와의 페어막. 캐치통 재방송하는 해맑은 얼굴 보내기 아쉬워 어쩌지요. 김턴으로 아버지에게 쌍따봉 받는 아더도요. 매우 매우 대단하고 여전히 영원히 사랑스러운 우리 아더, 장면 하나가 지나갈 때마다 이제 서울에서는 단 한 번만 남았다는 경종이 울려 심장을 아프게 했어요.
색슨족의 습격. 아니, 그런데 에녹 랜슬럿! 칼날이 아더를 향하게 건네주면 어쩌나요. 검자루가 아더 쪽을 향해야 하는데, 오늘은 칼날이 아더의 방향이었다. 심지어 시아준수가 한 손으로는 검자루를,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쪽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온 칼날을 막아 세워서 잘못 스치진 않았을지 살짝 걱정도.
〈왜 여깄어?〉 ‘저’ 아이는 왕이 아들이라는 손준호 멀린과는 다르게 민영기 멀린은 ‘이’ 아이는 왕의 아들이라 칭하는 편. 전자의 경우 멀린이 관조자 내지는 남매 사이에서 약간이나마 균형을 잡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면, 후자일 때는 멀린 울타리 안의 아더와 테두리 밖의 모르가나로 선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울타리 안의 아이’인 아더가 멀린의 만류도 뿌리치고 모르가나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와요. 보살핌 속의 어린 새가 둥지 바깥을 기꺼이 제품으로 끌어안는 감동실화.. 같달까..
〈기억해 이 밤〉 왕관에 눌린 앞머리로 왼쪽 눈에 거의 안대를 쓴 수준이 되었던 아더. 민영기 멀린이 살짝 정리해주었음에도.. 또 이봄소리 기네비어가 한 가닥 삐져나온 머리칼을 정리해주었음에도, 왼쪽 눈이 새까매서 살짝 해적왕 같았던 오늘의 임금님. 물론 잘생김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심장의 침묵〉은 언제나 시아준수 손안의 노래와 같지만, 이 노래 분명 누워서도 불러낼 시아준수일 걸 알지만, 도대체 무대란 시아준수에게 뭘까. 관객은 무엇이고, 노래란 뭘까.. 탄식처럼 솟는 의문에 대한 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었다. 내일이란 없는 것. 내일의 공연은 없는 것처럼 노래하는 저 사람의 또 한 번의 무대가 내 눈앞에서 피고 진다는 게 새삼 감사했다. 기쁘고, 애틋했다.
시작부에는 얼굴의 형체만 간신히 구분될 정도의 어슴푸레한 빛. 노래가 의지를 입어감에 따라 서서히 밝아지는 사위 자체가 곧 그의 내면인 무대, 〈왕이 된다는 것〉
노래가 견고해질수록 어둑한 푸른 빛이 하얀 색으로 따사롭게 뭉쳐 들고, 빛 속에 우뚝 선 그가 환해진 조명길을 걸어 나온다.
‘앞-으-로 두 걸음.’
주먹 꼭 쥐고 정면을 향하여 선 이 노래 자체가 극이었다.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았다.
엑스칼리버라는 극이 전하는 가장 거대한 주제가 오직 시아준수와 그의 아더, 이 두 사람의 노래만으로 완성되었다. 오늘의 왕이 된다는 것이 그랬다.
그리고 최종장.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
아, 기억해 이 밤 장인이 된 시아준수. 칼로 땅을 박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왼팔로 땅을 마저 짚고 일어서는 모습부터 왈칵했다.
바위산 앞에서 검을 내려긋는 동작도,
한뜻 한 꿈의 합창에 와르르 내려앉는 얼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검의 바위 위로 되돌아와 남겨진 운명을 향하여 곧바르게 서는 것까지.
불친절한 극의 서사를 이토록 아름답고 견고하게 세워내는 사람.
8월 28일을 기점으로 재연의 엑스칼리버 내내 시아준수를 향하여 수천 번 건넸던 말을 오늘에도 되풀이했다.
시아준수, 당신이 해냈어.
역시 엑스칼리버라는 극은 오직 김준수 안에서 피고 질 이야기인 것이다.
아름답게, 그리고 견고하게.
이제 서울에서는 단 한 번 남은 당신의 아더가 꽉 닫힌 해피엔딩을 향하여 헤매지 않고 나아가기를 바라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 웃는 얼굴로 송별할 준비를.
슬퍼.. 공연이 좋아서 좋은데 슬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