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여건상 매일의 후기를 쓰지 못했던 아쉬움을 담아 5월 한 달 동안의 샤엘에 대하여 망라하여 적되, 본문에서 등장하는 ‘오늘’은 5월 26일을 가리킵니다.

 

 

#1.

 

4월에 이미 기반을 잡고, 5월에 완전히 고착시킨 샤엘의 삼연 핵심 디테일 중 하나. 작전명 이름하여 ‘내가 엘이야’의 극대화. 

 

삼연의 ‘내가 엘이야’가 도발의 대명사로 혁혁하게 자리를 잡으며 그 ‘킹받는’ 제스처가 무수한 사랑을 받는 것을 알았는지, 시아준수가 내가 엘이야의 동작을 대사 곳곳에 심기 시작했던 게 4월 후반. 

 

“걱정 마세요. 나 영국 주니어 챔피언 출신이에요.”

비밀 누설하듯 라이토에게 바싹 다가서서, 고개까지 은밀하게 기울여가며 속삭이는 것도.

“만약 있다면요?”

고개 한껏 기울여 소이치로를 도발하고, 두 다리를 차례로 낭창이며 균형을 회수하는 것도.

모두 삼연 버전 ‘내가 엘이야’에서 따온 듯한 (살짝의 킹받는) 깨알 디테일이다.

 

찬탄하고 싶은 건 보기에 새롭고 즐겁다는 점은 물론이고, 이같은 디테일 확장을 통해 ‘내가 엘이야’의 킹받음(가능하다면 표준어를 쓰고 싶었으나 킹받는다 이상의 적절한 표현이 없는 것 같아요…)을 엘이 상대를 도발할 때면 으레 곁들이는 일상적인 제스처로 자리매김시켰다는 사실이다. 삼연째 하는 캐릭터에 삼연만의 고유 디테일을 수립해낸 것으로도 모자라, 이처럼 극대화하여 각인시키는 영민함이라니. 이 천재를 대체 어쩌면 좋을까요. 

 

 

 

#2.

 

5월 중후반에 완전하게 자리 잡은 또 하나는 두 라이토와의 페어별 디테일 차이. 

 

고은성 라이토는 본인이 주도적으로 애드립을 하기도 하는 등 샤엘처럼 꾸준히 새로운 디테일을 시도하는 편인데, 그 노력과 샤엘이 만나 김준수-고은성 페어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 디테일이라는 아름다운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다.

 

비밀과 거짓말에서 엘과 라이토가 일체가 될 때, 나란히 두 팔 초ㅏ 벌리는 동작은 고은성 라이토와의 페어에서 훨씬 극적으로 볼 수 있으며,

“예측 불허의 두뇌 게임”

죽음의 게임에서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는 찰나 또한 이 페어에 있고,

“비명을 질러!”

놈의 마음속으로 후반 소절, 막바지 스퍼트에 딱 맞추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로 맹렬하게 돌진하는 제스처도 고은성 라이토와의 디테일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표 듀엣마다 김준수-고은성 페어만의 관전 포인트가 있는 셈인데, 앞으로의 추이가 기대되는 대사 합마저 있으니: 

“정의의 심판을 한 거야 마치 신처럼.”

“유치한 살인마가 최후의 심판 놀이를 한 거겠지.”

5월 15일을 기점으로 나직하게 주고받는 것으로 변화한 다이코쿠 부두의 ‘최후의 심판 놀이’까지.

(김준수-홍광호 페어는 원형 그대로 샤우팅 대 샤우팅으로 맞불을 놓는다.)

 

이처럼 김준수-고은성 페어가 꾸준히 디테일 더하기를 해왔다면, 김준수-홍광호 페어는 묵묵하게 초심을 지켜온 5월.

5월은 각자의 페어가 각자의 방식으로 공고해져 가는 한 달이었다.

 

사실 5월 중반까지만 해도 시아준수가 고은성 라이토와의 디테일을 홍광호 라이토와의 공연에서도 혼용할 때가 종종 있었다. 

단적으로 5월 19일의 시아준수, 놈의 마음속으로 “비명을 질러!”에서 고은성 라이토와 하던 대로 홍광호 라이토에게로 돌진해 보였던 것. 그러나 호응이 없어 혼자만의 앙상블로 남게 되자 바로 다음 공연인 21일부터는 이를 제대로 기억해두고 홍광호 라이토에게는 더는 돌진하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행착오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홍광호 라이토와도 디테일의 변화를 시도했던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거나 전연 꿈쩍도 하지 않는 홍광호 라이토를 몇 번 마주하는 과도기를 거치며 5월 21일을 기점으로 김준수-홍광호 페어에서는 디테일 변주가 깨끗하게 소거되고 심플 이즈 더 베이직으로 노선이 완전히 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 홍광호 라이토와의 공연 역시 죽음의 게임과 놈의 마음속으로 모두 초연 때 모습 그대로 정확한 원형으로 구사되었다.

 

결과적으로 5월 말에 이른 지금은 김준수-고은성 페어와 김준수-홍광호 페어의 디테일 차이가 현격해졌노라 이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게 바로 더블캐스트의 묘미구나, 실감할 만큼.

 

덕분에 번갈아 볼수록 새롭고, 번갈아 볼수록 이 새로움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배우들의 섬세한 열연에 축복받은 관객이 된 기분을 만끽한다. 

 

정말이지, 덕분에 삼연의 데스노트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3.

 

이하는 나날이 무르익어가며, 나날이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은 샤엘만의 것들에 대하여.

 

 

먼저 죽음의 게임.

“내가 엘이야” 다음으로 내적으로 따라 해보게 되는 샤엘의 포인트 동작이 있다. 마치 안무처럼 주머니에 손을 꽂는 리드미컬한 움직임. 양팔을 먼저 주머니 위치로 내렸다가, 반 바퀴만 유려하게 빙글 올려 코트를 젖히고, 이어서 주머니에 손을 넣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이 동작.. 죽음의 게임에서 도합 세 번 이렇게 손을 꽂는데, 노래 말미에 어둠 속에서 찔러넣는 동작까지 어떻게 이렇게 그림인지 모르겠다. 누가 주머니에 이렇게 멋있게 손을 꽂아요.. 류우가 히데키 진짜 멋있어..

 

라이토에게 처음 건네는 대사,

“야가미 라이토, 경시청 형사국에 야가미 소이치로 국장님 아들, 아버질 존경하고 정의감도 강하고, 아버지를 따라 경찰 관료직을 목표로 두고 있다.”

프리뷰에서는 분명히 쉼표를 섞어가며 차분하게 전달했던 문장들이 어느 순간부터 속사포가 되었다. 쉼표가 모조리 소거되고 숨도 거의 쉬지 않는 것 같다. 속사포인데 정확하고, 그러면서도 리듬감이 있어 매끄러운 대사 처리가 좋아서 매번 귀 기울이게 되는 곳.

오늘 귀여웠던 건 음절 하나의 발음이 살짝 경직되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견-찰 관료직’이었다는 것. 견(犬)찰을 목표로 두고 있다니, 이 발음마저 꽤 그럴듯하지 않은가?

 

 

“부하들 앞에서 내 아들 이야기하지 마.”

“죄송해요.”

오, 이렇게 영혼 없을 수가. 애초에 이 대목에서 신실한 적이 없었던 엘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엘은 정말이지 하나도 안 죄송해하는 얼굴이라 조금 웃었다. 빤빤한 그 얼굴이 내 보기에는 참 예뻤는데, 소이치로에게도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놈의 마음속으로에서 좋아하는 섬세함 하나. 날아오는 공에 두는 시아준수의 시선 처리를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이건 1층에서보다 위에서 내려다볼 때 훨씬 실감 나게 목격할 수 있는데, 샤엘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그의 눈동자가 먼 하늘을 향해 번뜩이며 커지고(이 안광을 보기 위해 위에서 봐야 한다), 그러면 명백하게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일순간 가파르게 날아오는 공의 궤적이 그려지곤 하는 것이다.

노래하고 서브 넣고 공 놓치고 하는 와중에도 절대 이 시선 처리에 소홀한 적이 없어요. 늘 빈 허공의 어느 한 점에서부터 공의 궤적을 그려냅니다. 사랑합니다. 시아준수는 천재예요.

 

 

“라이토 니가 이긴 것 같다!”

“미사의 눈이 다 봤을 거야, 저놈의 이름. 승부는 결정됐어.”

류크의 목소리도, 라이토의 흥얼거림도 분명 엘에게는 들리지 않을 텐데. 매번 이 대목에서 샤엘, 라이토를 측시하며 피식 웃는다. 

마치 다 듣고 있는 사람처럼.

라이토의 승리감까지 내다보고 제 승리를 확신하는 얼굴에 그려지는 웃음이기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그리고 유독 좋았던 여기. 

“미사를 만나게 해줘.”

“…안 돼요.”

“미사미사가 살인자라니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라이토의 항의가 드셌다.

“키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대응하는 엘의 어조도 자연히 카랑카랑해졌다.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문장이 천천히 음을 타고 내려오다가, 그가 검지로 라이토를 지목하는 순간 잠시 마를 띄웠다.

라이토의 면전에서 키라를 직시하는 엘의 시선과 그런 엘을 마주하는 라이토의 시선 사이에서 검지손가락이 나침반처럼 멎어있었다.

“...키라가 시키는 일이면 뭐든지 할 것 같긴 하네요.”

재차 이어진 문장은 이번에는 낮은 곳에서 시작한 속삭임에 가까웠다.

검지 끝으로 겨냥당한 라이토가 결국 기가 찬 헛웃음을 뱉었다. 라이토가 헛웃는 것과 동시에 엘도 웃음을 터트렸다. 제 말에 제가 신이 난 모양새로 어깨까지 구겨가며 킬킬.

와, 여기.. 매번 놀랍지만.. 오늘은 정말..

어떻게 연기를 이렇게 쪼개서 하지?

문장의 높낮이 조절이 어떻게 이렇게 신들릴 수 있나. 긴장감을 치밀하게 불어넣는 기술이 봐도 봐도 감탄스럽다. 여기서 숨을 참지 않는 관객이 있을까? 끝내는 ‘참 재밌다’는 류크의 감탄사에 동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다이코쿠 부두에서 좋아하는 시선 처리는 마침내 엘이 데스노트를 만지는 순간에.

대부분의 경우 엘의 시선은 라이토에게 못 박혀 있다. 놈의 마음속으로의 가사ㅡ내 눈엔 너밖에 안 보여 세상엔 우리 둘 뿐ㅡ그대로 라이토에게서 눈 한 번 떼지 않은 채로 검지만을 움직여 노트에 접촉한다. 이 못 박힌 시선이 좋아요. 키라가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주시하는 동시에 낯선 현재의 상황을 경계하고, 또 이 사건이 이제는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까지 전부 담은 채로 일생의 숙적을 보는 이 순간 엘의 시선이, 정말 좋아요.

 

마지막으로 이것은 반쯤은 의문인데.. 마지막 순간 넘버 돌입하며 라이토의 도입부에서 시아준수, 왼뺨에 번지던 그것이 눈물이 맞았을까? 아주 드물게 눈물이다 싶은 것을 마지막 순간에서 감지할 때마다 확신할 수가 없다. 오늘 역시, 보고도 본 것을 믿을 수 없는 기분. 번지던 그것이 눈물이 맞다면, 이에 대한 감상은 오늘 바로 결론 짓기보다는 남은 한 달 동안 찾아가는 것으로 남겨 두고 싶다. 당장 갈무리하기에는 제 마음으로 번진 충격이 결코 작지 않으니까요. 

 

 

그럼, 이제 충무에서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데스노트. 마지막 한 달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기를. 

시아준수 팟팅, 샤엘 팟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