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 열네 번째 공연

 

콘서트가 오기 전 마지막 샤토니 공연. 

우리 연말의 약속, 시아 발라드 앤 뮤지컬 콘서트라는 일대의 사건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웨사스의 토니예요. 콘서트 전과 후의 웨사스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느낌이겠지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샤토니의 시즌 1을 마무리한다는 마음으로 보았어요. 어제(12/20)에 이은 애드립의 향연도 마치 시즌 1의 마지막 공연을 축복하는 듯하여 즐거운 날이었어요.

 

 

애드립의 향연 중에서도 너무나 반가웠던 것. 일회성으로 선보이고 도통 돌아올 기미가 없었던 토니의 디테일이 오늘 둘이나 왔어요. 

먼저 간판 걸고 손카메라로 각을 재보는 토니요! 11월 30일에 딱 한 번 선보인 후로는 리프와의 티키타카로 바빠서 도통 손카메라를 만들어 보일 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그 와중에 모처럼 왔어요! 무릎도 야무지게 굽혀서 아주 제대로 각을 맞춰 보더군요. 

또 하나 더,

“이런 내가 실망스러우면 지금 당장 우리 집에서 방 빼도 돼.”

일전에는 배나라 리프의 어깨를 오른손 손등으로 툭툭 털었다면 오늘은 정택운 리프의 양어깨를 양 손등으로 쓱쓱 털어주었어요. 어디 방을 뺄 수 있으면 빼보시지 하는 어투를 한껏 담아서요. 

보고 싶었던 동작 둘이나 한 번에 돌아와 주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이어 오늘도 정택운 리프와 함께하여 이어졌던 애드립. 

“좀 신박한 거 없냐?”

한 번 선보였다고, 오늘은 어깨 펴고 각 딱 잡아서 마치 정규 대사처럼 짜임새 있게 극으로 편입되었어요.  

“캐딜락 타든.”

“..깡통 차든.”

죽든 살든 얍!

구호가 어떻게 바뀌든 간에 두 사람이 호흡 착착 맞는 단짝인 건 변함없는 진실인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좋아하는 얼굴 하나. 리프 팔을 속박할 때 아야야 아프다며 무너지든 리프를 내려다보는, 괘씸하다는 기색 역력한 옆얼굴이 진짜 진짜로 그림처럼 잘생겼어요. 드물게 정색하고 눈매에서 웃음기 뺀 얼굴이 희소하기도 하고요. 

 

 

Something’s coming

계단 오를 때 무릎이 살짝 턱에 걸렸던 것 같은데, 턱을 짚은 팔을 회전축 삼아서 그대로 몸을 미끄러뜨리며 반 바퀴 능숙하게 몸을 돌리는 게 아니겠어요? 찰나의 순발력이 빚은 엄청난 잘생김 잊지 못합니다. 

 

 

Tonight

“마루카?”

따라 하며 마리아네 창문을 기웃대던 토니. 뭐가 그렇게 궁금했는지 오늘 아주 창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줄 알았어요. 마리아도 놀라서 토니 어깨를 뒤로 밀며 타박하는데 토니도 웃고 마리아도 웃고 지켜보는 관객들도 웃고 ㅎㅎ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웃음으로 채우다, 왈칵 애틋해졌어요. 이 웃음이 영원할 수가 없는 게 이 극의 숙명이고 토니의 운명이라는 생각에 그만..

 

 

닥 아저씨네 가게

저는 여기서 토니와 리프의 시선 맞추는 찰나가 왜 이렇게 좋을까요. 오늘도요. 두 사람 시선 한 번 맞추고 나면, 리프는 아무 부연 없이도 토니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처럼 토니의 의도 그대로를 베르나르도에게 읊어요. 그러면 토니는 살짝 웃고요.

잠시 잠깐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역시 내 친구, 하는 기색의 만족감과 신뢰감 드리운 토니 얼굴이 이 시선 교환의 하이라이트예요. 눈썹 끄트머리와 입술 한쪽 끝을 살짝만 써서 웃음 표하는 얼굴이 잘생기기도 했지만, 그 안에 당연하게 자리한 친구에 대한 믿음이 정말 좋아요. 

 

 

웨딩숍

나지막하고 은근한 ‘붕 뜬 기분’의 무릎 돌리기가 이어졌어요. 오늘은 마침 김소향 아니타인 날이라 아니타의 반응이 아주 기대되었는데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춤이냐며 과장된 동작으로 따라 하니까 몹시 얼척없어진 우리 토니. 입술 댓발 내밀며 마리아에게 편들어달라는 듯이 치대는 거 있죠. 

“내가 언제 저렇게 흔들었어?”

어쩌면 이토록 사랑스러운지. 하지만 엄격하고 냉철한 아니타가 아직 등 뒤에 있다는 걸 간과했던 탓에,

“춤추지 마.”

아니타의 싸늘한 경고를 한 번 들어야 했어요. 

 

싸움을 말려야 한다며 불안해하는 마리아. 달래도 달래도 초조함을 숨기지 못하자 토니, 마음 크게 먹고 대답해요. 

“음…… 그럼 내가 가서 막을게!”

상체를 빙그르르 반원 그리며 뒤로 한 번 빼서는, 두 손 살짝 맞잡고 잠시 고민해요. 이윽고 결심을 굳히고 본인이 나서겠다 하는데, 뜸 들이는 음성을 곁들여 오직 마리아를 위해 나서는 토니의 입장을 확실하게 전달해주는 느낌이 매우 좋았어요. 

 

그리고 그냥 했던 생각은.. 토니도 아니타도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주다 그 사달들이 났잖아요. 다들 마리아 말이라면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 하니까요. 만약 두 사람이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이 모든 비극이 없었을까요? 내일로 향하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혼자 살아남는 마리아인데, 사실 그런 마리아로부터 모든 비극의 단초가 촉발된 것도 없지 않다는 게.. 참 운명이 얄궂다 싶더라고요. 이 극이 잔인한 지점인 것도 같고요. 

 

 

The Rumble

오늘 굉장히 목 놓아 부르는 “마리아”를 들었어요. 세 번이나 절절하게 토해내는 거예요. 절망의 깊이가 아주 새까만 색이었어요. 

 

 

마리아의 침실.

사죄하러 온 토니. 어깨도 제대로 못 펴고, 두 손은 엉거주춤하게 종아리 위에 얹은 채로 마리아의 처분을 기다리는 자세가 안쓰러워요. 이제 진짜 그만하고 싶다던 때의 청청하던 자신감은 오간 데 없고 구겨지고 움츠러든 마음만 남아있어요. 왜 우리 토니가 이렇게 되어야만 했을까요. 

 

 

마지막으로는 오늘의 가장 서프라이즈였던 대사에 대해 적고 싶어요. 

“리프는 내 동생 같은 놈인데..”

둘도 없는 친구에서 동생 같은 녀석이 된 리프. 이 대사, 오늘의 리프가 정택운 리프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대사겠지요? 연기하는 배우와의 관계성을 반영한 대사 조정인 거죠? 

단어 하나 바꾼 것뿐인데 토니의 인과를 더 강하게 보완해주는 선택이 되었어요. 마리아가 오빠인 베르나르도를 잃었듯 토니도 동생인 리프를 잃은 셈이 되었으니까요. 동생을 잃은 형이 당사자를 응징하는 건 도의적으로 나무랄 수는 있어도 마음으로부터 탓할 수는 없는 차원의 문제잖아요. 

 

‘동생 같은 놈’을 말할 때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베르나르도를 잃은 마리아보다도 참담하였던 얼굴. 마리아라는 하늘 하나로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그 하늘 아래에서 토니를 지탱해주던 여타의 생명력은 사그라진 후인 것 같았어요. 바뀐 대사가 주는 파급력과 만져질 듯 생생한 상실의 표현이 만나니 궁지에 몰린 토니의 처지가 얼마나 처창하던지.. 

 

숨 쉴 곳을 찾아 ‘썸웨어’로 도망하였는데, 오늘따라 그곳에서조차 마냥 편안한 얼굴이 아니던 토니가 안타까웠어요. 

 

날이 갈수록 안쓰러워 애틋하고 사랑스러워 소중한 토니. 

어느 누가 이 아이를 죄지은 자라 하여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저 사랑하며 살고자 했을 뿐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