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샤토니의 열일곱 번째 공연이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날의 웨스트사이드스토리,
그리고 치열했던 2022년 마지막 날의 시아준수
#1.
먼저 이야기가 즐겁게 피어나는 1막 초반, 여러 애드립이 오가며 웃음 만발하였던 장면들 이야기부터 할게요. 장면 순서대로요.
닥 아저씨가 27년간 해오신 가게를 위한 깜짝 선물. 간판 제대로 걸렸는지 확인하며 오늘도 빼놓지 않은 손 카메라. 이제 거의 고정 디테일로 편입된 것 같죠? 카메라 만드는 손가락의 각이 참 맵시 있게 살아있어서, 이 디테일을 보게 될 때마다 기뻐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토니.
몸이 막 쩍쩍쩍 갈라졌다는 요주의 인물, 베르나르도. 어제는 닭가슴살 먹어서 그런 게 아니냐고 토니가 말했는데요. 오늘의 토니는 또 규명하기를,
“식단 조절하는 거 아니야?”
이게 리프의 말문을 일시적으로 막았나 봐요.
“…그건 내가 뭔지 모르겠지만!”
애드립 타임이라는 합의만 있고 정확히 어떤 대사를 할지는 그날그날 각자의 마음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매일매일 토니의 애드립과 리프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있네요.
또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디 도망 못 가게 양팔로 토니를 꼬옥 끌어안은 리프. 토니는 그게 영 부담스럽고 썩 개운치 않은 거죠.
“왜 이래 이거.”
몸을 뒤로 빼며 타박하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리프의 팔을 풀어내지는 않는 점이 마음 말랑말랑하게 하는 부분이에요. 착해가지고 원.
이어서는 대망의 뱃속부터!
“야 나 그거 제스처 바꿀 때까진 절대! 안 해.”
어제와 같은 항변. 어제는 문장 끝을 흐렸다면, 오늘은 문장을 단단하게 끝까지 맺어가면서까지 확실하게 어필했는데요. 통하지 않았어요. 리프는 개의치 않더랍니다. 결국 떠밀려 죽든 살든 읏! 챠. 구호와 제스처까지 클리어. 마치 세포에 각인된 것처럼 시작을 하니 끝까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줄줄 나오는데, 그렇게 해놓고 현타가 왔나 봐요.
“아 나 정말 너무 창피해 이거 진짜..”
못 견뎌 하는 토니의 반응으로 보아 이거 아무래도 머지않아 토니 마음에 차는 제스처가 오거나 할 것 같은데, 그날이 몹시 기대되네요.
여기까지 해놓고도 끝나지 않는 애드립 쿵짝 퍼레이드. ♡
“몇 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당부받아가려는 리프에게 토니, 호락호락하지 않았어요. 일부러 시간을 바꿔 대답하는 게 아니겠어요?
“열두 시.”
당황한 리프가 뭐? 말문이 막힌 사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토니가 웃으며 정정해주었어요. 워워, 타이르는 말투로요.
“열시, 열시.”
스스럼없이 한 방씩 주고받는 토니와 리프. 둘이 진짜 친한 친구 맞는구나, 싶더라니까요.
댄스파티
제 영혼을 홀랑 가져간 사람이 베르나르도의 동생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토니.
“동생?”
반듯한 이목구비가 사태를 파악하며 짙어지는데, 어쩜 이렇게 잘생겼는지.
Maria
올해의 마지막 마리아. 하하, 막공도 아닌데 보면서 자꾸만 올해의 마지막 마리아 끝, 올해의 마지막 투나잇 안녕.. 이러면서 장면마다 안녕을 고하게 되었는데요.
이 올해의 마지막 마리아가 너무나 대단했어요.
어쩜 이토록 아름답게 노래하는지요. 목소리는 관현악기의 하나가 된 것처럼 선율을 그려내고, 주 멜로디라인을 연주하는 오케 위에서는 정확하고도 나긋하게 마리아를 덧대어 노래해요.
아름답다는 말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오늘, 마리아에서 느꼈어요.
쿨, 제트들에게 버럭하는 리프. 한순간에 싸해진 분위기 속에서 모두가ㅡ하다못해 그라지엘라조차 말을 줄이고 리프를 살피는데 또 문득 토니가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싶더라고요. 여기서 토니의 포지션은 어땠을까요? 같이 정색했을까요? 아니면 무섭게 구는 리프를 말려주었을까요?
스필버그의 영화 버전에서는 토니가 쿨은 함께 춘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이제 영화를 볼 때가 되었나 봐요.
닥 아저씨네 가게
“너 내가 2분 안에 끝내줄게.”
두 눈 부라리며 예고하는 베르나르도와 시선 맞추고, 토니가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어요. 세모난 입술이 여유롭게 사선을 그리는 여기, 얼마나 여유만만하게 잘생겼는지. 2분? 어림도 없어 보이는데요 베르나르도?
여차저차 합의를 다 마쳐가는 상황에서 도로 불을 놓는 인물이 있어요. 액션이에요.
“너 일대일 싫으면 그냥 다 같이 붙자!”
그 말에 발끈하여 제트와 샤크, 다시 날을 세우고 토니는 황급히 액션의 양 어깨를 잡아 말려요.
다 된 밥에 다시 재 뿌리는 셈이라, 화가 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은 없어요. 그저 차분하게 액션의 어깨를 눌러 앉힐 뿐.
이런 걸 보면 우리 토니는 리프처럼 애들이 말 안 듣는다고 버럭버럭했을 것 같진 않죠?
이어 오늘도 상냥하게 에이랩의 다친 귀를 살펴준 우리 토니.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먼저 오른쪽 왼쪽 번갈아 한 번씩 살펴 보고는 왼쪽의 상처를 발견하고 제대로 토닥여주었어요. 살뜰하다. ♡
웨딩숍
대자 점프의 시대는 가고, 무릎돌리기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어요. 어제오늘은 유려한 무릎돌리기 끝에 벅차서 주체 못 하겠다는 듯 양손으로 뒷머리를 감싸 쥐었는데요. 오늘은 감탄사까지 더해졌어요.
“오마이갓!”
꽁냥 타임. 이지수 마리아의 방어율이 굉장해요. 홀린 듯이 마리아의 볼로 올라가는 토니의 왼손 검지, 오른손 검지를 차례로 막아내더니 양손 시도까지도 무위로 만드는 데 성공했어요. 심지어 딱히 토니의 손동작을 주시하고 있지도 않았는데요! 이지수 마리아, 완벽한 세 판 승이었습니다.
이어서는 요즘 좀 슬프고 갑갑한 대사.
“그 마법이 심술을 부리면 어떡해.”
자꾸 이 대사가 심장을 찔러요. 마법이 심술을 부리는 거 맞아.. 그 심술에 너희가 당하게 될 거야.. 그러니 그냥 싸움은 모른 척하고 너희 둘이 행복하기만 하면 안 될까. 소리 죽여 바란 탓일까요? 아이들이 제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아요..
Ond Hand, One Heart
어쩌면 이런 목소리가 있을 수 있죠.
혼자 노래하면 오케스트라가 따로 필요치 않은 풍부한 결의 목소리가 되고, 듀엣을 하면 상대의 목소리가 어찌 되었든 그 전부를 다 감싸 안는 목소리가 돼요.
오늘 이지수 마리아의 목소리를 감돌며 하나가 되는 소릿결이 얼마나 포용적으로 부드럽고 고왔는지.
보물이에요.
이 보물과 견줄 수 있는 건 오직 토니의 얼굴뿐이에요.
Tonight (Quintet and Chorus)
원핸드에 이어 곧장 이어지는 퀸텟은 저 높은 창공까지 마음 벅차오르도록 하는 불패의 넘버예요. 넘치게 가득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이 세상 최고의 뮤지컬, 그 정점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가장 세찬 폭포수가 되어 쏟아지는걸요.
이 작품의 노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작품을 있게 한 사람이란 존재는 또 얼마나 대단한지. 별안간 현 인류에 대한 벅차오름까지 느낄 수 있는.. 그런 넘버예요.
#2.
그리고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퀸텟이 끝난 시점부터요. 웨스트사이드스토리라는 작품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무엇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해요.
마리아, 투나잇, 원핸드.. 1막에서 공들여 쌓아놓은 반짝이는 순간들이 이제부터의 서사를 따라 급물살을 타고 세상 가장 장중하고도 위대한 비극이 되어 눈앞에 펼쳐져요.
The Rumble부터요.
대화할 의지 없이 행패만 부리는 베르나르도와 그 행패를 참고 또 참는 우리 토니.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양새가 되는 건 맞는데요.
아니, 애써서 말리는 토니더러 “저럴 거면 왜 왔대?” 한 제트 누구예요. ㅠ 우리 토니가 왜 왔겠어! 너희들 일이 더 큰 싸움으로 번지는 걸 말려주려고 온 게 아니겠어요. 그 마음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기는커녕 왜 왔냐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안돼 리프!”
리프가 베르나르도를 찌르기 직전, 디젤과 액션을 뿌리치고 달려 나온 토니가 참사를 막아내요.
리프를 붙들고 꾸역꾸역 구석으로 물러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트들의 시선이 싸늘해요. 영문 모르는 얼굴들이 물음표만 한가득 띄운 채고, 그중에는 토니를 노려보는 아이도 있어요.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갸웃하는 아이도 있고요. 그 따가운 의문들을 등 뒤로 다 받고 선 토니예요.
아무도 몰라줘요.
아무도 동조해주지 않고, 편들어주지도 않아요.
이 순간 토니는 승패를 매듭지어야만 하는 결전의 훼방꾼일 뿐이에요.
리프, 그리고 베르나르도의 죽음.
모든 노력이 무위로 돌아갔어요. 무엇 하나 돌이킬 수 없어요. 마법의 심술로 저질러진 비통한 불행 속, 고가도로 아래 혼자 남은 토니가 몸을 떨어요.
“마리아..”
사랑의 이름이 고통이 되어버린 순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자진하여 잠겨 드는 얼굴, 한 해가 저무는 마지막 밤에도 어김없이 처창하게 아름다웠어요...
아름다움은 고통에 비례하여 그 빛을 부풀리는 것인지, 고민하게 한 순간이 그렇게 지나갔어요.
2막,
마리아와 치노가 대화를 시작할 때 어둠 속에서 인영 하나를 보았어요. 무대 왼편, 어둠을 가르며 쏜살같이 달려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는 저 그림자는 분명 토니. 사건 직후 마리아를 찾아온 토니였어요. 밤그림자 사이로만 움직일 수 있는 토니의 처지에 마음이 한 번 찡, 혹시라도 마리아와 치노의 대화를 듣고 숨죽여 듣고 있다가 그 마음 미어지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또 동동..
가장 따듯한 달빛만 받게 해주어도 모자랄 이 아이가 더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게 너무 큰 바람일까요?
품속에서 리프가 식어가던 감각, 베르나르도의 선혈이 손끝에 묻어나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할 텐데 제 마음 추스를 시간도 없이 마리아의 원망을 자처하러 온 토니예요.
이 아이가 지키고자 한 마지막 인의를 적어도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운명’은 알아줘야 하잖아요.
봐요, 어렵사리 찾아든 마리아의 방에서 ‘마리아’를 선뜻 부르지도 못하는 토니를요. 어제오늘 숨결처럼 달고 살았던 그 이름, 부르면 노래가 되고 속삭이면 기도가 되는 이름을 입술 위에 올려놓지도 못해요. 애꿎은 옷깃만 쥐어뜯는 손등이 퍼석해요.
겨우 말문이 트여서도 두서가 없어요. 상황이 숨차게 쏟아지기만 해요. 마리아, 미안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 근데 리프는 내 동생 같은 놈인데..
갈피 없이 쏟아지던 변명은 베르나르도에 이르러 뚝 멎어요. 베르나르도가 저지른 일이 마리아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될까 봐,
“베,베르나르도도 일부러 그런 거 아냐, 절대 그런 거 아냐..”
모두를 위해 항변해요. 필사적으로요.
그러면서 자신 몫의 업에는 어떤 군더더기도 붙이지 않아요. 고하고, 인정할 뿐이에요.
염치없지만, 너에게 사죄하러 왔다면서.
이 아이를 어느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이 순간의 토니에게는 질책보다도 단 한 번의 따뜻한 포옹이 절실해요.
그리고..
이 극이 안배해둔 가장 용기 있는 인물, 마리아만이 그런 토니를 품어줘요. 어디 가지 말고 지금은 여기에 있으라며 토니를 붙잡는 마리아는 그 순간 토니의 구원이에요.
처음이에요. 처음으로, 토니가 자신의 운명을 찾은 대상이 마리아라는 사실에 마음 깊이 감사했어요.
혈육의 피로 물든 손을 용서로 맞잡아주는 게 얼마나 뼈를 깎는 고통을 동반하는 일일지 우리 모두 머리로는 알아요. 원수를 용서하라는 가르침도 알고요. 하지만 누가 감히 그 일을 행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비보를 접한 바로 그날에요.
그토록 위대한 용서를 마리아가 토니에게 베풀어줘요.
증오 대신 희망을 볼 줄 아는 마리아가 토니의 곁에 있어요.
함께 떠나자는 토니의 손을 기꺼이 잡아주는 마리아.
진정으로, 마리아는 토니에게 세상 무엇보다 거대한 의미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찾고 또 찾아, 헤매고 헤매다 도착한 somewhere..
두려움 없는 그날이 올 거야 맘껏 웃으며 함께할 평범한 일상들
그곳에서 토니와 마리아가 찾고자 했던 건 고작 ‘평범한 일상’이에요. 마음껏 웃으며 함께할 수 있는 평화로운 나날이요. 1950년대의 뉴욕에서는 그러한 일상을 눈앞에서 찾을 수 없어 somewhere, someday, somehow, 그 어딘가에 있으리라 믿어야만 해요. 그래야만 살 수 있어요.
이민자 세대의 설움, 인종차별의 부당함, 쥐꼬리 일당 받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갑갑한 나날.
훨훨 날아가고 싶은 아이들의 발끝을 수렁의 현실에 붙들어 두는 족쇄를 다 셀 수 없어요. 그 모든 사슬을 풀어내고 가볍게 발장구치는 썸웨어의 치노들은 허상이라 해도 좋으니 그저 붙잡아 두고 싶은 위안이에요.
토니에게도, 마리아에게도.
제트와 샤크도 다르지 않아요.
희망이 오는 소리를 듣고 하나둘 소리 없이 집결하는 제트와 샤크를 보면 알 수 있어요. 죽어버렸기에 더는 희망에 기대어 볼 수 없는 리프와 베르나르도를 제외하면 전원이에요.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 모두의 염원이 일치한다는 걸, 집결한 인원의 얼굴 한 명 한 명을 살피며 걸어 나오는 토니와 마리아가 알아차려요.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볼 때마다 일렁이는 토니의 시선에서 애틋한 깨달음이 번져가요..
평범한 일상이 어째서 이토록 강한 염원의 대상이 되는가.
곧 이어지는 넘버 Gee, Officer Krupke 로 극이 다 말해줘요.
사연 많은 이 아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어렵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지를 극은 적나라할 정도로 다 보여줘요.
정신병원, 경찰서, 감옥, 재판정, 사회복지사… 순탄한 일상을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나도 가기 힘들었을 곳을 전부 거쳐 가는 우리 제트 아이들의 처지가 웃고 떠들며 노래하는 이 넘버 속에 녹아 있어요.
아, 이 얼마나 자연하고 잔인한 스토리텔링이던지.
그래서예요.
이 아이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말하기를 배운 게 없어서. 배운 바가 없어 화 푸는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라 아니타에게도 그런 식으로밖에 굴 줄 몰라요.
행패가 맞아요. 난동이 맞고, 쓰레기 짓인 것도 맞아요.
하지만 그 난동의 발로에는 리프를 잃고, 치노로부터 토니만큼이라도 지켜내고자 하는 필사적인 마음이 있어요.
세상은 이 아이들에게 믿음을 가르친 적이 없고, 아이들은 제가 아는 방식을 다 동원해서라도 제 세상의 전부인 서로를 지키고자 할 뿐이었어요.
자 그러면 이제 엉망인 것은 이 아이들일까요, 세상일까요..?
정답은 없어요.
불량한 것도 맞고 불쌍한 것도 맞겠지요.
마리아의 눈앞에서 치노의 총격에 쓰러지고 마는 토니의 비극 또한 스스로 자처한 불행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마리아를 향해 애써 웃어 보이는 토니를 연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여기선 사랑하면 안 된다 울먹이면서도 끝까지 사랑 속에서 저무는 토니를 절절하게 비통해하지만, 그렇다고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창백한 얼굴로 눈물 뚝뚝 흘리고 있는 치노를 원망할 수는 없어요.
스러져버린 토니의 옆자리에 치노의 몫을 허락하는.. 마리아가 행하는 위대한 용서 앞에 찬탄하지 않을 수 없고요.
셋이나 잃어버린 새까만 절망의 끝에서 베풀어지는 용서를 목격해요.
용서가 어떻게 사랑의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는지, 제트와 샤크가 마침내 함께하는 애도 행렬과 그 행렬의 끝에서 홀로 빛을 향하여 걸어가는 마리아를 통해 극은 전해요.
무엇보다..
도달 가능한 영역일까 싶던 썸웨어를 커튼콜에서 기어이 실존하는 현실로 끌어내는 이 극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까요.
패싸움을 앞두고 분명 으르렁대며 불렀던 노래에 이제는 서로를 향한 하트가 넘실대요. 모두가 마음껏 웃으며 함께할 수 있노라 희망을 천명하는, 세상 무엇보다 따뜻한 겨울의 한 페이지가 눈앞에 있어요.
‘가능하다’고 극이 말해요.
1950년대의 뉴욕과 우리 모두를 향하여, 이 밤의 서울에서.
용서도, 사랑도, 그토록 찾아 헤맨 썸웨어도 모두 진실한 현재가 될 수 있노라고.
그러니 어찌하겠어요.
순응하여 사랑할 뿐이에요.
#3.
이 글의 끝에는 또 한 번 오빠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싶어요. 스케줄 상 고사했다던 이 작품을 다시 받아들여 준 덕분에 이토록 위대한 사랑과 용서를 목도하게 되었어요.
2022년을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워준 오빠의 치열한 사랑 속에서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선물 받았고, 이 천금 같은 해의 마지막에는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싶은 작품과 토니를 만났어요.
남은 두 달, 뉴욕의 계절을 사는 내내 오빠를 채우는 것이 그저 행복 뿐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해요.
행복의 크기는 감히 계량할 수 없지만요. 오빠의 행복은 제가 오빠에게서 받아 가는 것보다는 훨씬 컸으면 해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