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 샤토니의 새해 첫 공연

 

커튼콜데이 기념일까요? 평소보다 소폭 방방 띄운 머리. 볼륨감 풍부하여 정말 예쁘지 뭐예요. 그래서였어요. 신년 첫공연부터 얼굴만 본 것은…

 

썸웨어에서 감격하는 토니 얼굴을 보는데 제가 너무 감격스럽더라고요. 그 얼굴이요. 

마리아를 속삭이고 기도할 때는 눈동자 속에서 오만 아름다운 것들의 총체를 보았어요. 

원래도 샤토니의 성결함을 위해 존재하는 원핸드에서는… 궁금했어요. 저토록 아름다운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어떤 색일지.

심지어 듣던 중 가장 성스러운 목소리의 원핸드였어요. 새해를 시작하는 가장 고결한 소리. 이번 해도 아낌없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저 얼굴, 저 목소리 안에서 태동하는 신년이 아름답지 않을 리 없잖아요. 

 

 

 

그럼 리프와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볼게요. 

 

너 없으면 진짜 안 돼. 구구절절 피력하는 리프를 피해 토니가 앉은 채로 슬쩍 몸을 물렸는데요. 그 어깨를 턱 붙잡은 리프, 이어지는 나직한 음성에 객석이 웃었어요. 

“어디가..”

“왜 이래 이거.”

은근한 질척거림 위로 덧대어진 토니의 꿍얼거림에 또 한 번 자잘한 웃음꽃이 피었고요. 

 

예의 뱃속부터. 

정택운 리프는 구호를 선창했다가도 금세 작전상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이거 싫어하지 참..”

할 말 잃은 토니가, 뭔가 첨언하는 대신 선창하는 걸 이끌어내죠. 

“..뱃속부터.”

그러면 두 사람이 구호를 완성해요. 토니가 마지못해 다시 깔아놓은 판 위에서, 죽든 살든! 얍!

토니가 선창하기 전에 잠시 드리워졌던 떨떠름한 정적과,

“..밀당하네.”

자기가 선창한 게 영 마뜩잖은지 고개 살짝 젓는 그 얼굴이 정말 귀여웠어요. 

 

 

Maria

“끝없이 널 불러 마리아~”

오케 연주 직전의 마지막 마리아가 오늘의 개인적인 하이라이트였어요. 정말 정말 고왔거든요. 흩어지는 음성이 얼마나 대단한 바람결이었는지. 이토록 곱디고운 음성으로 부르면 당연히 노래가 되고, 기도가 될 수밖에요. 

 

 

Tonight

아빠도 오빠랑 똑같아. 두려워해. 재고의 여지도 없는 마리아의 단언에 풀 죽었던 얼굴이 또 마리아의 말 한 마디에 단번에 되살아나요. 

“너 하나도 안 무섭게 생겼는데.”

“그치!”

꼬리 흔드는 모습이 또 보였다면 착각일까요? ㅎㅎ

 

이어서 오랜만에 서둘러서 단숨에 뱉어낸 주문. 

“나만 보면 돼.”

쉼표 없는 날이면 토니 마음이 마리아를 향해 얼마나 앞뒤 없이 달려가고 있는지 느껴져요. 오늘처럼요. 

 

“부에나스 노체스.”

“사랑해.”

헤어지기 전 또 나누는 인사. 나풀나풀 띄워 보낸 사랑에 마리아가 이마 키스로 화답해줘요. 불시에 사랑 공격 받은 토니의 아랫입술이 벅차오르는 것을 주체 못 하고 자그마한 앞니 안으로 말려 들어가요. 

그 모습에서 퍼뜩 깨달았어요. 내 눈 안의 단 한 사랑이 나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환희가 지금 토니를 온통 채우고 있다는 것을요. 

두 눈에 선명하도록 보이던걸요. 우리 연기 천재는 이런 식으로 감정에 형체를 입혀 눈앞으로 끌어내줘요. 

 

 

웨딩숍

무릎 돌리기 직후, 두 손으로 머리 싸맨 토니의 오마이갓이 이어지고 있어요. 그 예쁜 머리통 안에 전부 마리아인 거예요. 온통. 머릿속이 온통 사랑인 거예요, 그 얼굴처럼!

 

이지수 마리아의 방어율은 연전연승이에요. 토니를 보지도 않고 있는데 어쩜 그리 방어율이 높은지. 

토니는요. 보기만 해도 참 그렇게 좋은 걸, 그래서 주체 못 하겠는 마음을 검지 하나 스르르 올려 마리아 콕찍하려는 걸로 그냥 다 표현해줘요. 제 시도 족족 막히고도 그저 좋아서 웃는 토니 얼굴이 정말 예뻐요. 얼굴에 사랑이 있다는 게 뭔지.. 토니를 보면 알아요. 모른다면 그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에요.

 

여기서 오늘 특히 귀여웠던 건 아니타가 나간 직후였어요. 문 탁 닫히자마자 두 사람 약속이라도 한 듯 날숨을 같은 호흡에 크게 내쉬었거든요. 이제 한숨 돌렸다는 듯이, 폭풍 한차례 지나갔다는 것처럼요. 그러고는 둘이 어깨 좁혀 또 웃는데 아, 사방이 웃음 만발이었어요. 사랑 천지예요. 

 

 

닥 아저씨네 가게

토니는 진지하고 진심이에요. 맨주먹으로 하면 크게 위험하지 않을 거라는 판단하에 내건 제안이었는데. 

“정정당당히 해.”

“그래, 정정당당히.”

임정모 베르나르도는 그 진심에 관심이 없어요. 토니의 말을 그대로 맞받으면서 자기 주먹을 토니 주먹 옆에 가져대다는 태도에는 빈정거림이 가득해요. 

약 올리기로 마음먹고 한 행동이고, 그건 보고 있는 저에게로 직격해요. 정작 토니는 발끈하지 않고 차분하고 차가운 눈으로 상황을 주시하는데 저는 볼 때마다 헛웃게 된다니까요. 기가 차서.. 저처럼 발끈하지 않고 여유롭게 넘기는 토니가 참 대단해요.

 

에이랩의 상처 위치는 이제 확실하게 인지한 거 같죠? 오늘은 왼쪽 오른쪽 살펴보지도 않고 곧장 상처 부위를 살피며 도닥여주었어요. 

 

그리고 가게에서 닥 아저씨와 나누는 대화 말인데요. 

“이제부턴, 제가 책임지고 알아서 해요.”

여기서 울컥 심장을 도닥이게 되는 건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저도 모르게 토니에게 되묻고 있거든요. 

뭘.. 알아서 해요 뭘.. 하고요.

운명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이야기의 주제를 위해 한 떨기 불꽃처럼 전부 타오를 예정이면서.. 뭘 어찌한단 말이에요..

 

 

그 운명의 The Rumble

임정모 베르나르도일 때는 마음 굳게 먹고 참으며 버티는 토니를 만나는 날이에요. 베르나르도가 껄렁대며 토니의 엉덩이를 톡 치면 샤크들끼리 뒤에서 낄낄대는 걸 한 번 참고, 기집애 같이 생겼다고 자극하는 걸 또 참고요. 

그로도 부족해서 토니 화 참는 중에 제 머리를 코앞까지 들이미는 도발도 견뎌내요. 

거기까지 지났는데, 오늘은 또 하나의 레파토리가 추가된 게 아니겠어요? 토니 주위를 위성처럼 빙글대며 돌다가 자기 검지로 토니 정수리를 콕 찍지 뭐예요? 허참.. 임정모 베르나르도의 건달력,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레파토리가 나와요. 그걸 다 참고 버티는 토니에게 박수를 전해요. 

 

이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싸우지 말라는 만류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틈에서 고군분투하는 토니. 

디젤에게 ‘제발’이라 건네는 육성은 들을 때마다 마음을 덜컹이게 해요. 

왜 온 거래, 토니 등 뒤에서 수군대는 제트의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상처가 되고요. 왜 왔기는.. 너희들 자칫 더 큰 싸움으로 번질 일을, 그러지 않도록 마법을 부려주러 왔지…

 

그런데 오늘요. 싸움이 격렬해지고 리프도 베르나르도도 칼부림에 진심인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며 토니, 붙들린 채로 ‘말도 안 돼’라는 탄식하는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아주 연하게 들린 것 같은데.. 맞나요?

 

끝내는 불거진 싸움과 일어난 죽음. 

마법의 심술일지 예정된 비극일지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토니가 제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 되는 이름을 불러요.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마지막 세 번째 마리아가 유독 허망하게 흩어져갔어요. 널 부르면 노래가 되고 널 속삭이면 기도가 되는 음성, 

그 가냘프던 세 번째 마리아는 기도가 되어주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오늘 토니, ‘마리아’를 부르는 도중에 총에 맞았거든요. 

사랑의 이름을 평온하게 맺지 못하고 쓰러져야 했어요. 무너지면서도 시선은 계속 마리아를 보고, 육신 또한 총격에 당한 반동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다하여 마리아가 선 방향을 향하여 고꾸라졌어요. 

그러고는 웃더군요. 흐느끼면서도 올라간 입꼬리가 마리아를 위로했어요. 

 

하지만 마지막 원망 같은 울먹임은 숨기지 못했어요. 

“여기선 사랑하면 안 돼.. 그러면 안 된대..”

운명을 책망하듯 시대를 나무라듯 슬픔과 투정으로 허물어진 것이 오늘 토니의 마지막 목소리였어요.

 

2022년 마지막 날에도 꼭 이렇게 문장을 맺었어요. 이 마지막 문장의 변화가 앞으로도 이어질 지, 어떻게 변해갈 지는 지켜봐야 알겠지요. 하지만 부디 너무 짙은 울음으로 번져가지는 않았으면 해요. 

사랑으로 태어나 울음으로 지는 건, 너무나 처창한 비극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