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 광복절 맞이 축사를 데면데면하게 듣던 중이었다. 느슨한 주의력 틈으로 돌연 ‘79주년’이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수를 인지하자마자 스쳐 간 건 오빠 생각. 나도 모르게, 너무나 당연하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대화를 건네듯이.
‘오빠 우리 사는 동안 100주년도 보겠다, 그쵸.’
지극히 순리로운 이런 생각은 어떤 파문 하나 남기지 않고 자연스레 다음의 화두로 흘러갈 때가 있고, 새삼 놀랍게 다가올 때가 있는데 오늘은 후자인 날이었다. 100주년까지도 내 삶에서 오빠를 당연하게 예정하고 있음이 문득 소스라치게 감격적이라서. 이제까지 우리가 함께 쌓아온 스물한 번의 계절과 정확히 똑같은 햇수의 미래를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다는 이 신뢰가 첫 번째로는 놀라웠고, 이어서는 벅찼다. 이 사람은 대체 내 삶의 어떤 일부일까. 산다는 것 그 자체가 되어버린 이 사랑이 어떻게 나에게 찾아왔을까. 사랑의 나날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하며, 이 사랑을 견고하게 지켜내는 김준수라는 사람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요즈음도 계속하여 조용히 바쁜 오빠에게 고맙고 또 고마운, 오직 사랑이라는 이유밖에는 찾을 수 없는, 그렇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