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긁힌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을 본 걸까. 오빠가 미안하다고 한 게 맞나. 올해의 남은 일정에 관하여 오빠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지,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닌데. 기어이 오빠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속이 쓰렸다. 눈콘은 물론 소중하지만 오빠가 당연히 베풀어야 하는 무언가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오빠가 행하는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으니까. 오빠 자신부터가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늘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대체 우리 사이의 무엇이 당연할까.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당연한 것처럼 행할 수 있었던 오빠가 그저 대단하고 또 대단하며 고마운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이에게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왔다.
즉각적으로는 놀라웠고, 곧이어서는 의아로운 심정이 되었다가, 마음이 정돈될 무렵엔 서글퍼졌다.
이, 다정한 사람 때문에.
올해의 눈콘을 다음 해로 넘기기로 결정하기까지 오빠의 고충과 심려는 아무리 짐작해도 다 알지 못할 것이다. 오빠도 속상하겠지. 많이 아쉽겠지. 오빠의 브랜드인걸. 오빠에게야말로 이 연말 콘서트는 에너지의 원천이고 한 해의 완결이며 행복인걸. 하지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소상히 피력하는 대신 언제나처럼 눈높이 맞추고 마음 맞추어 말했다. 양해를 구하고, 아쉬움을 함께 나누며, 미안하다고. 못내의 서운함, 연연하는 안타까움 무엇 하나 도외시함 없이 진솔하게 걸머지는 것조차도 참으로 한결같았다.
언제나와 같은 따듯한 말씨로 세상의 모든 마음 끌어안으며 건넨 미안하다는 그 말이 너무나 다정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이 다정한 마음에 대한 화답도 가장 따듯한 것이었으면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담긴 당신의 사랑이 너무 커서 내가 미안하다는 말은, 마음에만 남겨두리라. 대신 가타부타의 덧붙임 없이 알겠노라고 끄덕이며 이번 계절에도 오빠가 그리고 있을 보람과 행복이 오빠의 뜻을 따르기를 소망할 것이다.
소망은 이내 겨우내의 현실이 되어 도래하겠지. 오빠와 우리가 함께하는 곳에 결국 행복이 있음을 무수한 세월 동안 벌써 겪어왔으니까.
라이브의 얼굴을 계속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