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성격을 안다. 기쁨은 함께, 슬픔과 고통은 혼자 견디는 사람이라는 걸 십수년간 부단하게 겪어왔다. 그래서 ‘지나간다’ 때, 노래로만 에둘러 말하는 사람 앞에서 차마 소리 내 마음 아파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웃고 우는 팬들을 보며 조용히 눈물짓는 사람이란 걸 아니까. 속상한 마음은 피어나는 족족 오빠에게 보내는 더 큰 사랑과 응원으로 삼켰다. 고이게 두는 순간 이 사람이 속상해할 것이 뻔하여서. 그러나 나의 미욱함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좋아한다면서, 사랑한다면서 오빠가 보여주는 눈앞의 행복에만 취해있던 ‘눈먼 나’는 속 깊은 곳에서 마음의 빚이 되었다.

우리의 세상 다시 없을 행복의 2015년이 오고, ‘혜성’을 부르며 오빠가 덕분에 행복했다고 말해주었을 때야 마음의 빚이 덜어질 수 있었다. 그때야말로 비로소 세상을 다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오빠가 팬들과의 거리를 좁히다 못해 자신의 절대적인 영역 안으로까지 맞아들였음이 두 눈으로 실체가 그려질 정도로 확연하게 느껴지고서부터는, 안정감과 행복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럽게 웃는 얼굴을 할 수 있게 되고부터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금갈 틈도 없이 견고한 행복을 끌어안고 있는 마음이 내내 벅찼다. 벅찬 감격이 지속되는 오늘이 어제가 되고 또 우리의 내일이 되는 나날이었다.

나의 하루하루가 그렇듯 오빠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지금처럼,

이대로만,

안정적으로.

그 모든 게 오늘의 오빠를 보듬고 있는 울타리인 줄 알았다. 내가 오빠 덕에 서 있는 것처럼, 그게 오빠가 딛고 선 토양일 거라 여겼다. 내내 우리를 드리우고 있던 그늘은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내리쬐기 시작하는 볕 사이에서 녹아 양지로 모습을 바꾸어 갔다 믿었다. 예전보다 조금 더 이런저런 물밑의 이야기를 끌어올려 들려주는 오빠를 보면서 그래도 이제는 내 눈앞의 잔가지와 오빠 앞에 얽혀있는 것들의 경도가 어느 정도 비슷해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사실은 절대로 보여줄 수 없는 그늘이 자그마치 5년이나 오빠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평온함, 안정감. 언젠가부터 오빠가 소중한 가치로 꼽아왔던 이 모든 것들은, 그래서 오빠의 현재를 이루고 있으리라 믿었던 이 전부는, 물론 오빠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기도 하였겠으나 오빠가 살아가는 현실이라기보다는 외려 갈망하여 지켜내고자 하는 이상향에 가까웠던 것이다.

 

별안간에 발밑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오빠가 나에게 주었고, 오빠 또한 마땅히 누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 오빠에게는 절대 당연하지 않았다니.

5년. 가늠해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짧지 않은 시간. 오빠가 실제로 보내온 지난 5년은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그 고통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어서, 나는 도저히 나누어 가질 수도, 조금이나마 짊어져 줄 수도 없어서 무력감이 들었다. 가수 시아로서, 배우 김준수로서, 회사의 대표로서, 또 잘 알려진 스타로서 오빠에게는 오빠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고 내게는 나의 몫이 따로 있음은 안다. 알지만, 한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를 송두리째 바꿀 정도의 마음 앓이가 물밑에서 흐르고 있는 동안 나는 또다시 사랑의 밝은 면만을 취하며 행복만 했다는 사실이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티끌 한 점 없이 행복했는데,

오빠는 오롯하게 행복했을까?

 

온갖 의문이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우리가 함께한 순간의 행복은 물론 진실했겠지. 하지만 인간 김준수로서의 당신의 행복은, 일상의 편안함은 어디쯤 있었을까?

일상의 안온함을 기대할 수 없어서 집-일 집-일만을 반복하게 되었을까?

당신이 무대 위에서 행복한 만큼이나 무대 아래에서도 편안하기를 바랐는데.. 그게 그렇게 큰 욕심이었을까? 이 바람 하나를 이루기가 어째서 이토록 어려울까?

 

proud of your boy를 들으며 그렇게 눈물이 났던 건, 생각하는 걸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서였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오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스로를 지켜보겠다고 애쓰며 아등바등하는 5년 동안 그 마음의 부침을 홀로 어떻게 견뎠을까. 대체 몇 번이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혼자 위로하고,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맡긴 채 딛고 서기를 반복했을까.

 

알라딘, 꿈과 사랑과 동화를 말하는 극을 보며 그렇게나 눈물이 났던 건, 내가 책임져 줄 수 없는 일상의 평온 대신 두 눈에 선명한 무대 위의 행복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게 오빠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었다. 무대 위의 행복이라 한들, 거스를 수도 피해 갈 수도 없을 만큼 소란하고 떠들썩한 웃음들이 오빠를 둘러싸고 있다는 게 말로 다 못 할 위안이 되었다. 새삼 이 극의 상연 기간이 적어도 1년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던 것도, 그 시간만큼은 오빠가 아무 생각 없이 장렬한 행복 속에 휘감겨 있겠다 싶었기에.

 

우레와 같은 갈채와 환호에도 마음이 저렸다. 이토록 많은 이들의 기쁨을 책임지고 있는 저 한 사람의 행복이 왜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가. 모두의 마음 한 조각씩만 모아도 오빠를 온통 감싸고도 남을 행복이 쌓일 텐데, 그건 다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에, 만에 하나라도. 오빠가 5년에의 종지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의 하나로 오빠 울타리 안의 팬들을 믿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팬들에 대한 신뢰가 밑바탕에 있었기에 결심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이라면.

오빠, 당신은 그것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당신의 믿음이 외면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운명처럼 이 시기에 찾아온 사랑과 환상의 극 안에서 웃는 오빠를 지켜보는 마음이 찾게 되는 기도는 결국 하나였다. 

제발 저 사람의 행복이 온전하게 실재하기를.

무대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이 사람의 행복이 여름밤의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그것만이 이 겨울, 나의 바람이 될 것이다.


댓글 '1'

amabile

24.11.21

JX콘서트 둘째날 Don't say goodbye을 팬들과 함께 불러주다 얼마못가 얼굴을 숙이고는 많은 감정을 삼켜내던 오빠.

콘서트 한곡한곡 부를때마다 오랫만의 감정과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듯 해서 기쁘면서도 마음이 아팠어요.

팬들을 보며 그 큰눈동자에 한명한명 담아 사랑으로 봐주고

마음을 노래에 담아 고맙다고 말해주는거같아 제가 너무나 행복했으니까...

그리고는 얼마전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랜시간동안

힘들시간을 버티고 견뎠을걸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우리들에게 놀라게 하고싶지 않아 참고 인내하고 고민했을테니까...

그리고는 큰결심을내리고 계속해서 여러일들을 진행하는걸 보면서

콘서트에서 팬들의 응원이 오빠한테 용기와 힘이 되었으면 했어요.

마음과 몸 모두 건강한 오빠니깐 지혜롭게 이겨낼꺼라고...

그리고 우리 코코넛들도 믿고있다고!!

오늘 하루 마무리하면 글을 읽고는 나와 같은마음으로 오빠를 응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애 저또한 위로받고 하루를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