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강현 랜슬럿은 늘 몸을 웅크린 채 죽음을 맞이한다. 육신을 곧게 늘어트린 채 잠드는 이지훈 랜슬럿과는 달리. 그래서다. 박강현 랜슬럿의 죽음 앞에서 그의 아더는 더 가냘프고 애처로워진다. 아무렇게나 떨구어진 팔을 잡아 가슴 위의 검에 얹고, 흘러내리지 않도록 꼬옥 부둥켜 잡은 손이 정처 없이 떨렸다. 죽은 자를 향하여 굽은 등이 너무나도 작아 보였다. 힘겹게 숨을 고르며 죽은 이의 육신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시선이 웅크려 접힌 다리에 닿았다. 울 것처럼 황망하게 지그러지는 눈꼬리와 함께 그가 파득 상체를 일으켰다. 구겨진 다리를 바로 잡아주고 나서야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어깨가 한숨 돌리는 것처럼 늘어지는가 싶었다.

천천히 죽은 자의 얼굴에 그가 이마를 맞대었다. 안녕을 고하듯이. 이마를 맞춘 채로 그가 소리 없이 울었다. 더는 전할 수 없는 미안하다는 말을 새기면서. 

 

멀어져가는 형제를 뒤따라 걸으며 그는 내내 울었다. 들썩이는 어깨가 울음을 몰아쉬었다. 울음에 밀려 차차 느려져 가던 걸음이 결국 앞서가는 형제를 놓치고 말았을 때, 혼자 남겨진 얼굴의 황망한 빛에 마음이 아팠다.

 

비척비척 뒤돌아서던 어깨는 기네비어를 발견하고 그대로 멎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그녀를 보고 그가 숨을 참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늘의 그녀는 그의 손길도 시선도 피하지 않았다. 

김소향 기네비어는 늘 그와 함께 운다. 비록 이별을 고하는 그녀이지만, 비극이 된 사랑을 그와 함께 마음으로부터 애도한다. 

그래서 더 처절한 듀엣이었다. 

두 손을 생명줄 마냥 부둥켜 잡은 채로 두 사람이 함께 울부짖듯 노래했다. 손안의 빗물이 빠져나갈 틈도 없이 붙잡아보려는 것만 같은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무너지는 모래성을 어찌 막을까. 빠져나가는 그녀의 손을 느끼며 그가 반사적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따라가 보려던 시도는, 그녀의 정중한 인사 앞에서 가로막혔다. 완전한 작별을 마주한 그의 무릎이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한 채 홀로 남았다. 

 

랜슬럿을 부축해주었던, 기네비어의 손을 꼬옥 쥐었던 그의 손은 이제는 검의 차지가 되었다. 

무릎 꿇은 채 그가 검으로 땅을 짚었다. 운명의 검을 지지대 삼아 천천히 일어섰다. 랜슬럿도, 기네비어도 이별로 무너트린 그의 심신을 검은 소리 없이 지탱해주었다. 

 

곧게 일어선 그가 검을 쥐고 걸었다. 말없이 걷는 그를 검의 형상을 한 운명이 말없이 따랐다. 운명은 기다리고 있었다. 운명이 떠넘긴 것들을 그가 갈무리하기를, 그래서 그가 내릴 결정을. 

이윽고 그가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살짝, 어렴풋한 끄덕임이 말해주었다. 운명에게, 알겠노라고, 도망하지도 물러서지도 않을 것이니 안심하라고. 

운명의 어깨를 쓸어주는 것 같은 옅은 미소였다. 

 

아, 운명이 멀린의 등을 타고 와 그를 바위산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이건만. 아버지도, 멀린도, 사랑도 우정도 모두 보낸 그가 이제는 운명의 손을 잡고 바위산으로 스스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바득바득 오른 바위산의 정상에서 그는 운명의 손을 꼬옥 붙든 채 웃었다. 

정상에서 들어 올린 검은 그의 심장이자, 의지였다. 

또한 내일을 바라보는 오늘이었다. 

 

*

 

좋은 공연이었다. 첫공의 버프가 없는 첫 레전드를 만났노라, 감히 말해본다. 오늘의 모든 배우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박수를.

음향도 좋았다. 신기하게도 2막에서 더. 실시간으로 음향이 좋아지는 것을 느끼며 기쁘고도 신기했다. 어제와는 정반대의 현상이라니.

 

공연을 견인한 오늘의 넘버는 〈심장의 침묵〉. 노래의 중후반 즈음에 생각했다. 오늘 공연, 참 좋구나.

또 하나의 넘버는 〈이게 바로 끝〉. 무너지는 꿈ㅡ을 넘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에 다시 생각했다. 이게 바로 내내 기다려왔던 공연이라고.

 

쐐기는 심장의 침묵이 주었지만, 시작부에서 오늘의 포문을 연 곡은 〈난 나의 것〉이었다. 어느 때보다 격정적이었다. 동작도, 동선도, 감정도. 

오늘의 난 나의 것이 폭발적으로 좋았던 데에는 아더와 엑터의 관계가 새삼스러울 만큼 애틋하고도 분명하게 전달되었던 덕도 있지 않을까. 

오늘따라 유독 파장 후에 남은 부자가 눈에 밟혔다. 복작복작 왁자지껄하던 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두 사람만 달랑 남은 모습을 보노라니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 혈연이라고는 오직 아버지 엑터 한 사람만으로 알고 의지해왔을 아더의 성장기가. 고요해진 오두막 앞뜰, 아버지를 따라 잠자코 뒷정리를 돕는 아더가 대번에 너무나도 애틋해졌다. 

 

그러니 아버지가 실은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는 사실, 친부는 욕망에 잠식당한 괴물일 뿐이라는 출생의 비밀에 충격받는 게 당연하다. 내내 사실을 숨겨온 아버지에게 일말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갑작스레 추악한 비밀을 진실이라며 풀어놓는 멀린에게 분노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멀린의 이야기를 무작정 거부하고 벽을 치는 태도 또한 순리를 따랐을 뿐이다. 분노와 반발, 아더의 〈난 나의 것〉은 너무나도 정당하다. 

오늘의 노래는 이 모든 스토리텔링을 함축하고 있었다. 폭발적이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그럼 첫 넘버로 돌아가서ㅡ〈변하지 않을 영원한 연대〉. 유난히 박자가 들쑥날쑥하였으나 노래적으로는 어울리는 밀당이 되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친구들이 대체 몇 명이며, 그 모두가 얼마나 부산스럽게 구는지 말도 못하는데.. 자로 잰 듯이 정갈하다면 오히려 그편이 더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서였다. 오케스트라의 튀는 박자가 마낭 나쁘지는 않았던 것. 

귀여웠던 장면은ㅡ건배 세례의 와중에 케이에게는 짠을 해주는 대신 어깨를 툭 치는 잔망을 부렸던 것. 곧이어는 눈을 찡긋하며 웃어 보이기까지.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저’ 엑스칼리버 앞에 나 맹세하리, 어제 도입한 음절을 오늘 아예 정착시켰다. 어제는 순간적인 전개였지, 오늘은 대단히 자연스럽게 박자를 쪼개며 안정적으로 들려주었다. 어제의 위기를 오늘의 진전으로 삼는 것, 시아준수의 특기가 아닐 수 없다. 

 

〈검이 한 사람을〉. 랜슬럿을 기사 서임할 때의 표정도 엽서로 나와줄래? 부탁하는 거예요. 너무 천진하고 귀여우니까 우리 이 얼굴을 부디 오래오래 보자.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김소향 기네비어와 아더가 너무나도 예뻤던 장면. 그녀를 향하여 몸을 낮추어 귀를 기울이는 시늉을 하더니, 글쎄 두 사람, 고개 돌려 눈을 마주하고 동시에 웃었다. 꺄르르, 한 사람의 것처럼 터진 웃음에 심장이 간지러웠다. 꽃과 나비 같았다. 바깥나들이에 신이 난 아기참새들 같았다.  

재미있었던 건 두 사람 너머로 보인 케이. 꼭 나와 같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는데, 특히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네비어를 따라가던 시선이 아더가 노래를 시작하자 곧바로 아더를 찾아가서 못 박혔던 순간. 

그리고 엑터가 등장하자, 내내 바위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구경하려고 앞으로 슬금슬금 나오던 것. 너무나 시트콤이었다.

 

〈이렇게 우리 만난 건〉

“왔다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의 존댓말. “정찰대를 보낸 건 확실해요.” 뒤 문장과는 정반대가 되었다. 평소와 어미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노라니 아더, 당황했구나 싶어 웃음이 났다.

랜슬럿을 말릴 시간에는 어제보다 훨씬 적극적이었다. 두 팔을 크게 X자로 교차하여 안 된다고 어필하다가도 어제는 금방 포기하고 시무룩해졌지. 오늘은 달랐다. X자가 효과 없자 두 손을 높이 들어 와이퍼처럼 왔다 갔다 해 보였다. 상체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열심히. 하지만 소용없음을 예감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한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고개를 푹 숙여서, 이걸 어쩌나.. 랜슬럿이 또 사고를 치고 있어.. 하는 것처럼.

 

랜슬럿이 몰고 온 폭풍이 지나가고 아더와 기네비어 단둘이 남은 시간. 김소향 기네비어와의 합이 좋은 건 엑스칼리버를 자랑하는 랜슬럿을 보고 함께 웃다가 대번에 머쓱해지며 나란히 기침을 털 때도 느낄 수 있다. 하하, 하하, 하하하, 웃음소리가 겹치도록 함께 웃었다가 곧바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콜록 콜록 헛기침을 터는 데서 느껴져. 두 사람, 서로 의식하고 있구나. 

 

그런데 오늘의 각도로 새삼 너무나도 예뻤던 모습ㅡ기네비어를 바라보고 선 옆선. 자세가 어쩜 이렇게 곧고 예쁘지?.. 곧은 어깨에서부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단단한 가슴, 달걀을 말아쥔 작은 손, 균형을 나누어 바르게 선 다리. 서 있는 자세부터 왕의 혈통이었다.. 품격 있어..

 

〈수천년을 빛날 수 있게〉. 이건 정말 개인적인 취향인데, 이 넘버의 구석구석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왜, 영화에서 보면 그 시대 인간군상들을 무심한 슬로우테이크로 담아서 보여주는 장면들이 있지 않나. 망원경으로 일부분을 확대해서 보면 꼭 그런 것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오늘은 케이가 수레를 지고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다가, 케이 너머로 꽃바구니를 든 여성들의 함박웃음 핀 얼굴을 보았고, 그 뒤로 다시 설계도를 들고 짐짓 심각한 얼굴로 나타나는 사람을 보았다. 아더와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 아더가 건설하는 카멜롯의 얼굴들, 그들의 일상, 그들의 웃음. 요목조목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왜 여깄어?〉

“괜찮니?”

아버지의 자상한 물음에 비교적 또렷한 대답이 들렸다. 

“네, 잘 지내셨죠?”

아버지와 함께 있는 아더를 보는 건 참 흐뭇하다. 아버지와의 관계성이 단단하게 전달된 오늘은 특히나 더. 

 

‘운명’이라는 멀린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얼굴에서는 보았다. 운명이 그에게 지우는 무게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껴보는 아더를. 신의 검을 뽑은 자가 견뎌야 할 것들의 진짜 의미를. 단지 사람들 앞에 서는 것뿐만 아니라 때때로는 잔인하게 파헤쳐진 진실 앞에 의연할 줄도 알아야 하고, 기꺼이 감내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러나 멀린이 말하는 것처럼 그저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던 아더. 절레절레 고개를 젓더니 멀린 너머 누이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것이 운명이라 해도 마냥 모른 척할 수는 없다고, 바로잡을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이 누이의 손을 잡았다. 

잃어버린 내 가족, 행복을 찾으리. 

선하디선한 영웅이었다.  

 

〈기억해 이 밤〉. 세상에.

“네, 그러겠습니다.”가 도약했다. 리허설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단단하며 의지 어린 음성이었다. 청년이었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의미와 과제 앞에 움츠러들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볼 줄 아는 이의 목소리였다. 꼭 잘라서 들을 것. 

그리고 와아, 소릿결, 흔히 ‘배음’으로 칭하는 그것, 내내 정말로 엄청났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의 합창, 수많은 목소리가 전부 그의 소릿결에서 갈라져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왕, 그와 함께 열두 명의 맹세’를 청각적으로 맞이하는 것만 같았다. 실로 놀라운 감각이었다. 

 

〈오래전 먼 곳에서〉. 역시 김소향 기네비어와의 듀엣이 좋다. 소리의 결이 알맞게 맞물리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심지어 오늘은 노래적인 호흡마저도 닮아 있었다. 

“여-기 우리의 사랑, 시작-해.” 에서 두 사람의 고운 결이 나란히 갈라지며 흩어지고 만다..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 숨을 가다듬는가 싶더니 같은 호흡으로 다음 문장을 강하게 이끌어왔다. 

“이/젠 언제나 하나.”

한 덩어리처럼 뭉쳐진 소리의 파동은 컸다. 

“우/린 영원히 하나.”

아름다웠다. 

 

그리고 마침내! 말로만 들었던 시아준수 모먼트를 목격했다. 결혼식 피로연이었다. 아버지 엑터가 건네는 술잔 받을 때였다. 첫 차례에는 애써 참고 버텼는데, 두 번째 잔 받을 때는 그만 홀린 듯이 가슴으로 올라가던 손, 영락없는 시아준수 모먼트였다. 귀여운데 마음 촉촉해지고, 아더인지 준수인지 알 수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또 귀여웠던 것. 기네비어와 가볍게 춤출 차례에 오늘은 기어코 자기가 먼저 빙그르르 돌았다. 기네비어가 웃으며 이제 좀 그만 마시라는 듯이 잔을 회수해 가려 하자, 손에 꼭 쥔 잔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리며 생글생글 웃었다. 취한 연기, 오늘 진짜 귀여웠어. ㅠ

 

〈눈에는 눈〉. 앞서의 난 나의 것을 비롯하여 아버지와의 관계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오늘,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은 그야말로 거대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대번에 벽을 치는 그가 절절하게 이해되었다. 누구도 알지 못한다. 상실, 분노, 그 너머의 두려움. 무엇도, 누구도. 

단 한 명, 모르가나는 슬픔 너머의 영역을 읽어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녀의 조언 아닌 조언을 따라 자기 자신을 해방해가는 아더가 가장 그림 같았던 오늘의 장면은 한 손으로 쥔 검을 휘젓듯이 내리쳤을 때. 용의 불길 가득한 손놀림이었다. 어찌할 수 없는 화와 끓어오르는 내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혼자서 가〉. 랜슬럿의 비아냥을 듣던 얼굴이 오늘도 피식, 멋있게 웃었다. 그리고는 지도를 테이블로 툭 던지는데, 박력이!

박강현 랜슬럿과는 늘 조마조마하게 될 정도로 아름다운 칼싸움을 보여주는데, 노래적인 합도 참 좋다. 어/릴/때/처/럼 다/시/붙/어/봐의 합창 스타카토의 카타르시스 오늘도 대단했어. 

참 시작부. 박강현 랜슬럿이 대사를 저는 바람에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오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기다렸다. 달려오는 드럼의 두다다다다, 에 맞추어 탕! 웃긴데.. 좀 중독성 있어..

 

아버지와의 관계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를 잃고 용의 불길을 해방해버린 아더가 유난히도 쓰린 오늘. 필요하다면 널 막아서라도, 뼈가 있는 랜슬럿의 대답에 “날.. 날?” 되묻는 얼굴이 무척 서글펐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아더의 외로움이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너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잖아.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이해는 커녕 괴물로 바라보고 있구나, 너도.. 그렇게 고립되어 무너지는 얼굴을 향해 기네비어가 말했다.

“야만인들과 다를 게 없어.”

아내마저도 그를 궁지로 몰고 있었다. 대번에 그녀 앞으로 다가선 그가 울분을 토하듯 말을 뱉었다. 

“감히 왕 앞에서 이야기할 때에는.”

잠시 문장을 맺은 그가 검지를 그녀의 입술 가까이로 세워 들며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기네비어의 시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그의 눈에서부터 입술을 가리키는 검지로 떨구어졌다. 

“..좀 더 조심해야 할 텐데.”

나직한 음성이 경고했다.

문장을 통째로 뱉어냈던 이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검지를 세워 그녀의 입술 가까이로 가져가 경고하는 동작도, 화를 내는 대신 나직하게 물어뱉는 음성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였다.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심장의 침묵〉. 그간의 모든 시도와 변주를 종합하여 이룩한 완성형의 노래였다. 기술적으로 완벽했으며 감정적으로도 절정이었다. 1절의 처창함과 2절의 치솟는 절정. 소리를 뒷받침하는 음향. 두말할 것도 없는 오늘의 넘버였다. 

 

〈눈에는 눈 리프라이즈〉에서 오늘처럼 웃는 얼굴은 처음. 다가올 색슨족을 노려보는 눈매가 날렵하게 휘는가 싶더니, 아주 잠시, 픽 웃었다. 날카롭게, 멋지게, 잘생기게.

 

〈이게 바로 끝〉. 청각적 절정은 ‘저어주 받았어’부터 마지막까지.

시각적 충격은 시작부ㅡ배신을 알아버린 그의 뒷목과 목덜미 위로 은은하게 감돌던 녹빛 조명에서 비롯되었다. 마치 모르가나처럼 그의 뒷목을 감싸 쥔 녹빛이 ‘모두 거짓말, 사실 아냐’ 외면하려는 그를 끈질기게 쫓았다. 결국 주저앉은 그가 모르가나의 손을 잡고 일어섰을 때, 한 차례 크게 넘실이는가 싶더니.. 랜슬럿과 기네비어를 발견하고 두 눈을 치켜뜬 얼굴은 녹빛 물결로 가득했다. 정면의 얼굴을 잠식한 녹색은 그 자체로 모르가나였고, 나락을 밟은 아더였다. 

 

〈왕이 된다는 것〉. 어제의 아름다우리만치 명료하였던 기승전결을 이어간 노래. 느린 시작의 걸음, 서글픈 되물음, 스며드는 울음, 번져가는 흐느낌, 하지만 울음이되 결코 울음이 아닌 노래. 무너져도 결코 나락이 아닌 음성. 울음에 잠식 당하는 대신 흐느낌을 밟고 일어서며 정면을 향하여 우직하게 서서는 터트려내는 각오. 의지. 끝내는 두 손으로 주먹쥐는 스스로의 천명.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샤아더 사랑해. 

 

*

원하는 게 뭡니까. 

저 엑스칼리버 앞에 나 맹세하리

있다고 들었습니다. 

궁합도 볼 줄 알아요?

멀린, 여기 있었네요

신은 날 택했어

감히 왕 앞에서 말할 땐, (검지) 좀 더 조심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