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의 김준수 아더와 김소향 기네비어의 이별을 가슴에 담으며. 두 배우에게는 찬사를, 두 인생에는 위로의 눈물을 전하는 날. 한마음처럼 나란히 울어야 했던 아더와 기네비어의 비극에 나의 눈물을 포개며 오래오래 기억할 하루. 

 

“난 이미 용서했어.”

제발 알아달라는 듯이 그가 말했다. 절박한 목소리였다. 지친 육신은 안간힘을 짜내어 그녀의 앞으로 달음질했다. 그는 오로지 하나의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부디 이 마음이 그녀에게 닿기를..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주님을 찾으며 그 안에서 용서를 구할게.”

미안함에 더는 그를 바라볼 수 없었던 그녀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의 시선이 비켜났다. 그는 아이처럼 세차게 도리질을 했다. 나는 이미 용서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푹 숙인 그녀의 얼굴이 그를 더 애끓게 했다. 도통 그녀의 눈을 볼 수 없었다. 어깨를 웅크리고 몸을 굽혀보았다가, 결국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한껏 낮추었다. 땅으로 못 박힌 그녀의 눈을 찾기 위해. 그녀를 향하여 한없이 기울어진 고개에서 애틋함이 묻어났다. 

 

그의 애틋함이 또 한 번 그녀를 울렸다. 무릎을 꿇어서까지 찾아온 그의 눈을 그녀는 더 피할 수 없었다. 애꿎은 땅만을 바라보던 그녀가 그의 눈을 마주했다. 

다시 찾은 눈맞춤에 이끌려, 떨리는 손이 조심스럽게 그의 뺨으로 향하는가 했지만 닿지 못한 채 거두어졌다. 마치 자격 없는 손을 거두어들이는 것처럼 그에게서 화들짝 물러난 손이.. 망설이며 허공을 더듬다 겨우겨우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다 팔을 따라 가슴으로 내려오는 손길이 꼭 눈물처럼 흘렀다. 그녀의 손길을 느낀 그의 마음도 그랬을까. 

“흐르는 눈물로 상처를 씻어낼 순 없나.”

사랑하는 이의 뺨에 흐른 눈물을 장갑 낀 손으로 서툴게 닦아내며 그가 물음했다. 

대답은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 

어느새 이별은 부둥켜 잡은 두 손을 가를 준비를 마친 채 그녀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녀가 천천히 일어섰다. 서로가 서로를 움켜쥔 손에 입을 맞추듯 그녀가 이마를 맞추는 순간에는 저만치 굴러떨어진 심장이 그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정중한 인사를 비수처럼 꽂은 그녀가 뒷걸음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따라 비틀비틀 일어서는 그를 바라보아야 하는 눈이 따끔했다. 어느 사이엔가 빈 틈새로 빠져나가 버린 손이 서글펐다. 마지막 남은 한 손만큼은 결단코 놓치지 않으리란 의지가 엿보이는 팔이 슬펐다. 안간힘 실린 손이 멀어지는 그녀를 따라 저 멀리로 뻗어졌다. 9일보다도, 12일보다도 멀리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나 이별도 운명도 거스를 수 없었다. 끝끝내 손은 놓쳤고 온기는 흩어졌다.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 얼음처럼 멎은 그는 홀로 남은 팔을 내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오도카니 흐르는 눈물의 목격자도 이제는 자기 자신뿐이었다. 

사랑은 한때의 열병처럼 그를 들끓게 한 뒤 ‘지난 역사’를 향하여 몸을 던졌다. 영원히 하나를 맹세하며 함께하였던 시작의 끝은 비극이었다. 

 

*

 

또 한 번의 좋은 공연이었다. 오늘의 배우들에게 박수를 전하며. 

 

“우더 펜드라곤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탐욕과 분노, 복수에 눈먼 짐승이었다는 것뿐이죠!” 

일갈하는 그의 표정이 자꾸만 마음을 친다. 삶의 근간이 송두리째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표정으로 이 좌절을 심어준 멀린을 원망한다. 분노가 위태롭게 출렁댄다. 뿌리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혼란이 격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자, 네 안의 용과 한 번 맞서 봐.”

용의 불길에 맞서는 18세 아더. 오늘은 검 휘두르기를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좌로 우로 동분서주했다가도 잠깐씩 중앙에 멈추어 서서 검을 내리고 숨을 돌리곤 했던 평소와는 달랐다. 힘이 바짝 들어간 어깨로 휙, 휙 내내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했다. 결국은 불길을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졌다. 엎어져 헐떡이는 숨이 가빴다. 마이크의 음량이 조절되고서부터는(12일) 이 숨소리가 무척 또렷하게 전달된다. 덕분에 아더의 혼란이 한층 가까이 온다.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1막의 오늘의 넘버. 곧바로 오늘의 공연이 이미 좋음을, 쭉 좋을 것임을 예감한 순간.

“용기를 내.” 각오의 소절에서는 오랜만에 등 뒤에 객석을 돌아보았다. 의지 서린 어깨로 몸을 틀어 홱, 힘차게. 일전과 같이 주먹까지 쥐지는 않았지만.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바위산에 오르기 직전에 있었다.

“의심 따윈 갖다버려. 길은 하나 나의 운명.”

두 팔을 벌려 운명을 마주하는 그의 뒤로 태동하는 황금빛 햇살이 어스름 속에서 성스러이 반작였다. 까맣게 내려앉은 어둠을 헤쳐내는 새벽의 여명 아래로 바위산의 형상을 한 운명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위, 신이 이끄는 운명, 밝아오는 햇살, 이 모든 것 앞에 선 단 한 사람. 한 시대의 막이 곧 오르게 되리란 강렬한 예감 속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어서 엑스칼리버를 뽑은 후에: 검을 연신 들여다보다, 신기한 나머지 칼날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트려 보았던 순간도 또 하나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가 지금 여기 있다면〉. B의 각도는 사랑입니다. 듀엣이 되는 순간, 그와 그의 너머로 바위산의 그녀가 대각선으로 나란한 이 시야가 너무 좋다. 매번 이 각도로 보고 싶어.  

그리고 귀여웠던 것. 민망함에 호다닥 자리를 뜨는 기네비어를 쫓아가다, 그녀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자 눈썹 위로 손차양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발끝을 콩콩 세워, 어깨를 좌우로 기울이며. 

 

〈이렇게 우리 만난 건〉. 노래의 마지막에 다시금 그의 가슴 위로 향하는 그녀의 손을, 오늘도 보았다. 이번에는 피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으며, 다만 조심스럽게 온기를 느끼는 손이 말해주었다. 이 노래의 끝에 그와 그녀가 한마음이 되었음을. 

 

〈이렇게 우리 만난 건 리프라이즈〉. 김소향 기네비어가 12일에 들려주었던 ‘사랑해요’의 톤을 다시 만나 기뻤다. 

 

〈왜 여깄어?〉. 멀린과 모르가나의 사이를 가르며 그가 누이의 한 손을 쥐었다. 그녀가 정말 자신의 누이가 맞는지, 카멜롯으로는 대체 어떻게 왔는지 무엇 하나 따져 묻지 않으며 모르가나를 자신 쪽으로 이끌었다. 

“우리 함께 있을래, 울지 않게 해줄게.”

상냥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음성이 굳이 굳이 누이의 나머지 손을 찾아 잡았다. 두 손을 마주 잡은 남매의 시선이 만났다. 염려 가득한 동생의 눈과 오랜 상처로 딱딱하게 굳은 누이의 메마른 눈이 마주쳤다. 오늘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기억해 이 밤〉. 갈색 눈동자, 투명한 눈동자. 곧바른 눈썹과 의지 어려 강직한 입술. 많은 왕을 대신하여 온 하나의 왕의 얼굴. 

두 번째의 “네 그러겠습니다!” 는 계속 강해지는 중인데 오늘은 그간의 공연 중에서도 가장 강했다. 어디서 끌어올리는 소리인가 갸웃할 만큼 빈틈없이 단단했다. 

 

〈오래전 먼 곳에서〉. “한 잔 더~?” 신이 난 얼굴을 향하여 기네비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곧장 새 잔을 받아들기 위해 몸을 트는데, 세상 귀여운 임금님을 보았다. 의자 팔걸이에 두 손을 나란히 얹어둔 채로 허리를 한껏 곧추세워 아버지가 잔 건네주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대형견이었다. 사랑스러움의 끝판. 

이어서의 흐뭇한 순간. 오랜만에 아버지와 함께 셋이서 건배를 나누었다. 세 명이 되니 행복도 세배. 화목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나와의 춤이 아쉽게 끝난 후엔 늘 그랬듯 쪼르르 누나를 따라간다. 오늘은 아쉬운 마음에 연신 “누나, 누나..” 부르는 동생의 입 모양을 보았다. 사랑스러운 동생, 사랑스러운 아더..

 

엑터의 죽음. ‘너도 나가’는 오늘은 모두 “나가.”가 되었다. 

기네비어에게는 격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가!”

멀린에게는 화를 눌러 담는 음성으로 “나가.”

 

〈눈에는 눈〉. 그림의 각도는 멀린의 목소리를 듣고 무릎 꿇은 그가 안간힘을 다해 버틸 때에. 살짝 왼측의 각도에서 검으로 땅을 부득불 집고 버티는 얼굴이 새하얀 빛을 받으며 화하는 모습이 너무나 그림이었다. 

또 하나는 펜드라곤 남매가 나란히 선 모습. 두 명의 사람, 하나의 분노, 하나의 용, 하나의 파멸을 보았다. 

 

〈혼자서 가〉. 그가 대사를 밀어 드럼의 인트로와 노래의 도입부를 맞추고자 하는 시도가 오늘도 빛을 발했다. 박수 짝짝. 

“어릴 때처럼 다시 붙어봐.” 요즘의 그는 기사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온몸을 격하게 떨어댄다. 격렬한 상체가 음절을 토하듯 뱉었다. 

그리고! 찰나의 스파크를 보았다. 랜슬럿이 검을 가로로 눕혀 방어하고, 그가 내려치는 순간에 튄 주황빛 불꽃이었다. 엄기준 랜슬럿과의 합부터가 오늘 무척 좋았다. 역시 박수 짝짝.

 

이어 오늘도 본 아름다운 서정시의 배경. 검은 어둠의 장막을 희끗희끗하게 수놓은 잎사귀는 역시 분노와 눈물로 얼룩진 그의 마음을 보는 것만 같다.

 

“너 때문에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야.”

비수를 꽂는 아더의 말에 김소향 기네비어는 요즘 울음을 터트리곤 한다. 무너지며 달려 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그, 오늘은 흠칫 따라가 보았다가 돌연 멈추어 서더니..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몸을 웅크렸다.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야..”

깊은 자괴감이 굽은 몸에서 느껴졌다. 

 

〈이게 바로 끝〉.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해?” 가 달라졌다. 어리둥절하여 되묻는 순진한 동생이 아니었다. 기함할 소리를 들은 얼굴이 한 손을 내밀며 따져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뭐지?

 

바람대로 무너지는 아더, 동생을 지켜보는 모르가나의 웃음을 보았다. 그의 뺨을 감싸 쥐기 전이었다. 남매가 서로를 마주보기 직전이었다. 아더에게 그림자처럼 달라붙은 누이의 얼굴이 불길을 부추기며 웃고 있었다. 잔인하게. 

 

으아아아ㅡ 배신을 향하여 칼을 치켜 달려드는 서러운 외침은 오늘도 길었다. 끝없이 끊어지는 마음처럼, 끝을 모르고 무너지는 꿈처럼. 달려드는 그 앞으로 엄기준 랜슬럿의 표정이 눈에 들어와서 더 마음 아팠다. 냉정하기 그지없는 얼굴. 온 얼굴로 온 마음으로 비통하게 우는 그와 전혀 다른, 그 얼굴..

 

“너희 둘을 카멜롯에서 영원히 추방한다.” 는 근래 계속 서글퍼지더니, 오늘은 결국 울음이 되었다.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던 박력은 사라지고 서글픈 목소리만이 남았다. 사랑과 우정의 배신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다, 버거운 나머지 모든 감정을 일시에 놓아버린 사람 같았다. 

 

오늘 얼마나 격노하고, 좌절하고, 울음 했는지는 그의 분노를 따라 춤추던 머리칼이 끝내 흐트러지며 다 말해주었다. 한 가닥 흘러내린 앞머리가 꼭 그의 짓이겨진 심장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어 왕이 된다는 것에서 그 머리카락 한 가닥을 채 정리하지 못하여 그 얼굴 그대로인 모습의 그는 눈물의 기폭제였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제 몸보다 큰 갑옷을 입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을 삭이는 청년왕의 모습에 눈이 따가웠다. 

 

〈이야기 되는 이야기 리프라이즈〉. 모르가나에게 정확하게 가리는 바람에 보이지 않았지만 기록용으로: 대단히 미묘하게 웃었다고 해. 처음으로 알쏭달쏭 웃음인 듯 아닌 듯 입꼬리를 올렸던 그때와 같이.

 

〈평원에 날 묻어〉. 망자의 빛, 멀어져가는 행렬, 뒤따르는 산자의 눈물. 

고요한 송별가에 눈물이 났다. 더 이상 희생이 없는 땅을 이루어낸 곳에서 그들의 왕은 전부를 잃은 채 서 있었다. 

 

〈기억해 이 밤 리프라이즈〉. 새벽의 여명을 보았다. 시작하던 때와 같은 빛이었다. 늘 그의 눈앞으로 자욱한 어둠을 보느라 인지는 하고 있어도 마음으로 와닿지는 못하였던 황금빛이 그의 뒤에서부터 찬찬히 다가오는 모습이 오늘은 보였다. 

내 앞에 펼쳐진 이 길에서 서서히 솟아나던 햇살, 그때와 같은 아름다운 일출이 바위산 너머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운명의 부름을 들으며 그가 쓰게 웃었다. 그간에 보여주었던 여러 웃음의 단계 중에서도 오늘은 분명한 쓴웃음이었다. 삶의 무게를 절감한 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었다. 

 

샤아더 사랑해!